의약품 주권의 위기, 동의보감에서 해답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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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소화제도 못 살라”…원료 수입 의존 70%의 위험한 현실
문화·스포츠 > 헬스 뉴스: 국내 의약품 원료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져 ‘의약품 주권’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인도와 중국산 원료의약품 수입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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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 의약품 원료의 약 70%가 중국과 인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수입 의존을 넘어, 의약품 주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 신호입니다. 이미 자동차, 반도체 등 주요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이 세계화의 종말과 함께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의약품 원료만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2018년, 고혈압 치료제인 중국산 발사르탄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며 해당 원료를 사용한 국내 의약품 100여 종이 대거 회수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특정 회사의 문제로 여겼고, 다른 원료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발사르탄을 사용하던 처방은 빠르게 로사르탄 등 다른 약물로 대체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과거에는 대체 원료를 세계 시장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반적인 무역 흐름 자체가 끊기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처럼 빠르고 저렴하게 원료를 들여오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미 적자를 기록 중인 건강보험 재정이 비싸진 약가를 감당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입니다.
그 결과는 어떨까요? 예전에 항생제 남용 병원을 문제 삼았듯, 이번에는 ‘고혈압약 남용 병원’, ‘소화제 과다 처방 병원’ 등의 이름을 붙이며 책임을 의료기관에 떠넘기는 방식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정부는 뒤늦게 국산 의약품 원료 사용 시 약가 우대를 해주겠다고 밝혔지만, 약가 우대 수준과 국내 생산 비용 간의 격차를 메우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현재의 약가 체계는 수입 원료 기준으로 책정되어 있어, 이를 국내 원료 기준으로 재조정하게 되면 건강보험 재정은 더욱 빠르게 고갈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 소멸 속도만 앞당기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첫 단계는 비싸진 약가에 대해 처방 횟수나 기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입니다. 과거에는 몇십 일 치 약도 쉽게 처방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처방 기간이 짧아지고 점차 급여 항목에서 제외되는 약들이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전문의약품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원료값 상승에 따라 일반의약품으로 대체가 가능한 약물부터 급여 대상에서 빠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방적인 약가 상승에도 우리는 대안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바로 동의보감의 정신을 되살리는 것입니다. 의약품 수입이 거의 불가능했던 조선시대, 국내산 한약으로 병을 치료하고자 했던 실천적 의학이 바로 동의보감입니다. 오늘날 한약제제를 확대해 수입 원료 의약품의 자리를 일부 대체할 수 있습니다.
현재 보험 적용을 받는 한약제제는 56종에 불과합니다. 이 항목을 늘리고, 가격 경쟁력과 효능을 기준으로 처방을 유도한다면 의약품 수급 위기를 완화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약을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소화기 질환, 통증, 감기 등 일차 진료에서 자주 사용되는 영역에서는 충분히 대응 가능합니다. 또한 한약 처방은 구성 약재를 다양하게 조합할 수 있어 원료 가격 변동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강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은교산 제제를 인후통 치료제로 선호하는 경향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가격 대비 효과가 뛰어나고, 단일 성분의 기존 약물들보다 소비자의 만족도가 높습니다. 일본의 경우, 의사들이 한약제제를 처방한 역사가 오래되었고 보험 적용 범위도 넓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특정 집단의 카르텔로 인해 제도 개선이 늦어졌습니다.
지금은 한약제제가 수입 의약품 원료보다 가격경쟁력이 낮을 수 있지만, 세계화가 빠르게 후퇴하면서 상황은 바뀌고 있습니다. 풍부한 노동력과 글로벌 통합이 가능했던 지난 20년은 인류 역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시기였습니다. 세계화에도 사이클이 있습니다. 지금은 ‘닫히는 세계화’의 시기이며, 재화와 서비스의 이동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습니다. 의약품 원료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제는 의약품 수급 문제를 국가적인 전략 과제로 인식하고, 동양의학과 한약제제의 가능성을 새로운 해답으로 삼아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