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커피 원두에 매료된 15년의 시간

상계동백곰 2025. 4. 10. 14:58

커피 원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지 벌써 15년 가까이 된 것 같습니다. 당시만 해도 커피라고 하면 믹스커피 외에는 떠올리기 힘든 시기였습니다. 원두커피는 카페에서 가끔 맛볼 수 있는 정도였고, ‘커피’라는 음료 자체에 대한 인식도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커피 소비량은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믹스커피, 인스턴트 커피, 캔커피 등 다양한 형태로 이미 많은 이들이 커피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전문 커피점이 없었을 뿐입니다.

 

드립커피가 대중화되고, 커피 원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커피 원산지의 이름들을 접하기 시작합니다. 브라질, 에티오피아, 하와이 정도는 들어봤지만, 엘살바도르, 자메이카, 탄자니아 같은 나라는 생소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국가 단위를 넘어, ‘예멘 모카’, ‘에티오피아 하라르’, ‘브라질 산토스’처럼 특정 산지 이름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원두 종류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스페셜티 커피나 '컵 오브 엑설런스(Cup of Excellence)' 수상작을 쉽게 접할 수 없었죠. 특히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은 오랫동안 일본이 차관 제공의 반대급부로 독점 수입하면서 국내에서는 보기 어려웠습니다. 오사카 구로몬 시장에서 블루마운틴 원두를 볶아 판매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은 독점이 해제되고 국내 커피 시장도 커지면서 블루마운틴은 물론, 대부분의 고급 커피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일본에서는 원두 종류가 줄어든 듯한 느낌까지 들기도 합니다.

 

커피를 생산지별로 분류할 때는 보통 아프리카, 중남미, 남미, 아시아 지역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나라별로 품질과 관리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커피는 ‘커피 벨트(Coffee Belt)’라 불리는 적도 주변의 특정 지역(북위·남위 25도 이내)에서만 재배되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일정한 맛의 특징을 공유합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케냐는 강한 산미, 탄자니아는 훈제향, 에티오피아는 고구마향이 특징입니다. 예멘 모카는 산미는 거의 없지만 고소한 맛이 뛰어나죠.

 

남미 커피는 브라질이나 콜롬비아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지가 많습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기본적인 커피 맛’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들 국가도 다양한 품종과 재배법으로 꽃향기나 과일향 등 독특한 개성을 가진 커피를 생산합니다. 아시아 커피는 베트남의 로부스타, 인도의 몬순 커피, 인도네시아의 만델링처럼 강한 쓴맛과 쌉싸름한 맛이 특징입니다. 산미보다는 커피 가공 방식이나 음용 방식으로 개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베트남의 연유커피나 몬순 커피의 숙성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만약 커피 맛에 익숙하지 않지만 좋은 커피를 마셔보고 싶다면 저는 중남미 커피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특히 카리브해를 끼고 있는 국가들의 커피는 매우 뛰어납니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을 비롯해, 파나마 게이샤,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안티구아, 그리고 최근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는 엘살바도르 커피까지. 고온다습한 기후 속에서 자라난 중남미 커피는 산뜻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산미를 지녀 부담 없이 즐기기 좋습니다.

 

블루마운틴은 균형 잡힌 맛으로 유명하지만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그 인근 국가들의 커피도 훌륭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파나마,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같은 나라의 커피는 가성비가 좋고, 품질 관리도 잘 이루어지고 있어 결점두가 섞인 원두를 접할 확률도 낮습니다. 다만, 중남미 커피의 가치가 널리 알려지면서 가격이 꾸준히 오르고 있는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기호식품은 식량과 달리 산지에 따라 품질 차이가 크고, 소비자들도 산지를 더 많이 따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거의 매일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을 먹지만, 밀가루의 산지를 따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반면, 커피는 산지를 꼼꼼히 따지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는 기호식품이 단순한 식량을 넘어 ‘맛’과 ‘취향’의 영역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위스키의 경우 스코틀랜드 하이랜드나 스페이사이드, 중국의 바이주는 쓰촨성이나 구이저우성, 와인은 프랑스의 보르도와 부르고뉴가 대표적입니다. 대만의 우롱차, 쿠바산 시가, 안동 사과, 나주 배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지역이 이 아성을 넘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해왔지만, 성공 사례는 극히 드뭅니다. 그만큼 맛있는 기호식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고, 하늘과 땅의 도움까지 필요하다는 뜻이겠지요.

 

커피에서도 중남미는 바로 그런 지역입니다. 부지런한 농부들의 손길과 천혜의 자연환경이 어우러져 최고의 원두가 만들어집니다. 블루마운틴처럼 이름난 커피도 좋지만, 엘살바도르나 온두라스처럼 조금 낯설지만 품질 좋은 커피도 즐겨보시길 권합니다. 원두커피의 진정한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