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현상

코리아 디스카운트, 구조의 문제일까요? 선택의 결과일까요?

상계동백곰 2025. 4. 21. 08:33

주식시장이 폭락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입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박스권에 갇히는 이유를 설명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표현은, 한국 증시가 구조적으로 저평가되어 있다는 인식을 담고 있습니다.

 

대기업의 분할상장, 주주 권리의 무시, 불투명한 기업 정보, 공매도와 같은 시장 내부의 문제부터 남북대치 상태나 지정학적 리스크 같은 외부 요소까지—주식 시장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리스크로 꼽을 수 있는 건 다 포함된 듯한 느낌입니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이런 문제들은 다른 나라의 시장, 특히 잘 나간다는 미국이나 유럽 주식시장에도 어느 정도 존재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시장이 활황일 때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짜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면 상승장이라도 왜 더 벌 수 있는 데 못 벌었는 지를 따져야 합니다. 주가가 오르면 디스카운트는 조용히 사라지고, 주가가 떨어지면 다시 고개를 듭니다. 마치,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만능 카드처럼요.

 

그렇다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단지 불운한 투자자의 푸념에 불과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PER(주가수익비율)과 PBR(주가순자산비율)이 글로벌 평균에 비해 낮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특히 PBR 1 이하의 기업이 상당히 많습니다. 미국 주식시장에서는 PBR이 1 이하로 떨어지면 인수합병의 유력한 후보가 될 정도로 저평가 상태로 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꽤 규모가 있는 기업들도 이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디스카운트’는 단순히 주식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일까요?

 

외국인 투자자들, 특히 투자은행(IB) 등 기관 투자자들은 종종 한국 시장의 비매력을 이야기하면서 공매도보다는 외환시장의 후진성을 더 큰 문제로 지적하곤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역외 원화시장(offshore KRW market)이 없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한국은 외환 거래를 한국 시간 안에서만 할 수 있고, 외국인 투자자는 그 안에서만 환전이나 자금 운용이 가능합니다.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주식을 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는 것처럼 외국 투자자도 한국에 투자하려면 시간과 구조의 제약을 받는 셈입니다. 다른 선진국들은 대부분 역외 외환시장이 있어서 24시간 외환 거래가 가능한데, 한국은 폐쇄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외환 거래를 하려면 국내 은행을 끼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개별 외국 투자자의 자유로운 환전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주식시장은 개방되어 있지만, 그 아래의 기반인 외환시장은 여전히 폐쇄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럼 외환시장을 개방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가장 크게는, 외국의 거대 투기세력들이 원화를 대상으로 한 변동성 거래를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외환 변동성에서 수익 기회를 찾기 때문에,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로서는 이를 방어하기 위한 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갑니다. 독일이나 일본도 수출 국가이지만, 독일의 유로화나 일본의 엔화에 비해 원화는 기축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외환 투기에 더 취약할 수 있습니다. 특히 IMF 외환위기 때 폭등하는 환율을 겪은 경험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한국도 해외 투자를 많이 하고 있고, 외환시장 개방의 필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국채와 연결됩니다.

 

선진국의 삶은 기본적으로 돈이 많이 듭니다. 개인으로 따지자면, 시골이나 변두리에서 살다가 대도시 고급 주택가나 아파트로 이사 온 것과 비슷합니다. 삶은 풍요로워졌지만 그만큼 유지 비용도 커집니다. 예전 같으면 약국약으로 해결하던 증상도 병원을 찾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사람이 차를 몰게 되고, 집이 커지면서 관리비도 올라갑니다. 마찬가지로 나라가 잘살게 되면 복지, 의료, 인프라 등 국민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재정 지출이 늘어납니다.

 

이때 필요한 자금은 대부분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합니다. 미국이나 일본이 대표적인 예죠. 우리나라도 국채를 발행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지만, 역사적 경험과 인식 등의 이유로 정부는 재정 부담을 국민에게 넘기는 방식—즉, 가계부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전략을 택해 왔습니다.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급증 현상은 단순히 ‘부자가 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빈약한 사회보장 제도를 개인이 부동산 투자로 메우려 했던 결과이기도 합니다. ‘좋은 집에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집과 상가 등 부동산 투자를 선택한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한국은 상대적으로 낮은 정부 부채 비율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를 가정에 비유하자면, 정부라는 가장이 빚을 내야 할 상황에서, 아내와 자녀, 손주 등 가족 각자의 명의로 대출을 받아 쓰게 한 것과 같습니다. 겉보기엔 가장에게 빚이 적어 보이지만, 실상은 가족 전체가 빚더미에 올라앉은 셈입니다.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한 이유는,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국채 발행이 외환시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정부도 국채 발행을 더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문제는 국민들이 국채를 대량으로 사줄 수 있는 여유 자금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국 외국인 투자자에게 국채를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외환시장 개방은 필연입니다. 돈을 넣고 빼기 어려운 시장에 외국인 투자자가 쉽게 들어오려 하겠습니까?

 

과거에는 국채가 귀해서 외국인들이 한국 국채를 선호했지만, 앞으로는 한국이 외국 자금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고, 시장성 확보와 투명성, 편의성이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마케팅이 필요한 시대가 오는 것이죠.

 

이렇게 외환시장 개방이 시작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까요?

 

대표적으로 영란은행을 공격했던 조지 소로스와 같은 헤지펀드가 한국 시장을 노릴 수 있습니다. 국내 종합일간지 1면에 헤지펀드 기사가 등장하는 일도 잦아질 수 있습니다. 반면, 관치금융은 점차 해소될 수 있습니다. 국채를 대량으로 보유한 외국 기관이 “규제 해소 없으면 국채 팔겠다”, 다른 말로 "내 말 안 들을 거면 빚 갚아라"라고 하는 것이니 정부 입장에서는 대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정부가 부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바뀔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외환시장 개방은 국채시장 활성화, 관치금융 해소, 투자 수단의 다양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라는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외환 변동성의 증대라는 위험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 변동성은 참여자 수가 많아지면 완화될 수 있고, 남는 문제는 정부의 금융 통제력 약화일 것입니다.

 

요즘 세태를 보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