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와 사주명리학: 길흉신의 재해석
십신과 전통적 길흉 개념의 이해
사주명리학을 공부하시는 분들께서는 길신(吉神)과 흉신(凶神)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일간(日干)을 중심으로 다른 오행을 음양으로 구분하여 사회적인 관계를 규정한 것을 십성(十星) 또는 십신(十神)이라고 부릅니다. 십신은 부모, 형제, 배우자, 자식과 같은 가족관계를 정의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를 살아가는 수단과 방식을 규정하기도 합니다. 흔히 고위 공직에 순조롭게 오르는 사람에게 '관성(官星)'이 잘 갖춰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십신은 다음과 같이 구분됩니다:
- 비견(比肩): 자신의 동료나 협력자
- 겁재(劫財): 재물을 급하게 취하려는 행위나 투기심. 경쟁자.
- 식신(食神): 보편적이고 안정적인 생산수단
- 상관(傷官): 특수하고 창의적인 생산수단이면서 질서의 파괴자
- 정재(正財): 월급이나 통장의 현금처럼 일정하면서 온전하게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재물
- 편재(偏財): 사업장 매출이나 공적 자금과 같은 자신이 온전히 소유하기 어려운 재물
- 정관(正官): 변화가 크지 않으면서 안정적인 직업
- 편관(偏官): 위험하고 변동이 많은 조직생활
- 인수(印綬): 보편적인 학문과 기술
- 편인(偏印): 전문적이고 특수한 학문과 기예
이처럼 명리학에서는 삶을 영위하는 모습을 다양하게 분류했으며, 이에 맞춰 사주를 해석해왔습니다. 특히 비견과 겁재를 제외한 나머지 8개의 십신에 대해서는 길흉을 나누어 해석했습니다. 흔히 사길신(四吉神)과 사흉신(四凶神)으로 불리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길신은 식신, 재성(정재, 편재 모두), 정관, 인수이고, 사흉신은 겁재, 상관, 편관, 편인입니다.
농경사회의 가치관과 길흉신의 형성
삶을 살아가는 양상인데 길흉을 구분한 것은 인간의 운명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명리학의 특성상 흔한 경우가 아닙니다. 이는 명리학 자체의 본질적 특성보다는 운명을 해석하는 시대의 상황과 사회적 배경에 따라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인류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농경사회를 유지해왔습니다. 육체노동이 일상이었고, 이를 벗어나려면 토지를 많이 소유하여 소작을 주거나 관직에 나아가야 했습니다. 사회구조가 단순하다 보니 관직이 곧 토지를 소유하는 것과 직결되었고, 이는 대부분 타고난 신분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관직에 해당하는 관성을 최고의 길성으로 여겼습니다. 식량을 생산하는 표준적인 수단인 농업이 식신으로 인식되었고, 농사를 지으면 재물과 인력이 모이니 이를 재성으로 보았습니다. 농사짓는 토지의 소유를 증명할 수 있는 도장이 찍힌 토지문서가 중요했는데 이것이 인수의 개념과 연결되었습니다. 이것이 사길신의 배경입니다.
이와 대척점에 있는 사흉신은 사길신을 방해하거나 위협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관직과 같은 질서를 파괴하는 상관, 식신과 같은 표준적인 생산수단을 공격하거나 방해하는 편인, 예측할 수 없는 관재수(官災數)나 급작스러운 변화를 상징하는 편관, 그리고 재물을 해치는 투기성이나 급진적 변화를 나타내는 겁재가 사흉신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사주를 해석함에 있어 이 사길신과 사흉신의 구분은 최근까지도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져 왔으며, 사길신만 잘 갖춰져 있어도 좋은 사주로 평가해 왔습니다.
현대사회의 변화와 길흉신의 재조명
시간이 흐르고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사길신과 사흉신의 해석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사길신이 잘 갖춰진 사주는 지금도 분명히 좋습니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정관이 잘 갖춰져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가정환경에서 태어나기도 합니다. 그만큼 변화를 일으키는 역동성이나 혁신의 힘이 약할 수 있습니다. 평온하고 조화로운 삶이지만, 큰 사회적 변화를 주도하거나 획기적인 성취를 이루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에 비해 사흉신은 변화무쌍하고 역동적입니다. 기존 질서를 깨뜨리고, 보편적인 것을 거부하며, 대립과 갈등이 많고, 자신조차 투기적이거나 모험적인 성향을 보이는데 평화로움이나 안정과 공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이러한 특성들을 새롭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는 평화롭고 조용하게 삶을 영위하는 것보다 탁월한 기량이나 독특함을 보여주는 것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사업 영역에서도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으로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그 자체를 자산으로 삼아 재도전하는 것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특별함을 보여준다는 것은 기존의 질서나 관습을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되니 안정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피곤하고 어려운 삶의 양상입니다. 현대사회가 높이 평가하는 큰 부를 축적하려면 투기심과 모험정신도 있어야 하고, 남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비틀거나 뒤집기도 해야 합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질서를 깨뜨리기도 하고, 적대자나 경쟁자도 많이 생길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흉신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물론 사흉신만 있다고 해서 반드시 좋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전통적인 해석에서도 중시한 것처럼, 사흉신이라도 적절하게 제어되고 조화롭게 배치되면 훌륭한 형태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질서를 부정하는 상관의 경우, 이를 제어하는 인성이 잘 갖춰져 있다면 무의미한 질서의 파괴가 아닌, 발전적 해체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조직의 리더들은 관성도 힘이 있지만, 조직의 안정을 해치는 상관도 잘 발견됩니다. 리더는 없는 길을 찾는 사람이니 조직성만큼이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특성도 필요한 것입니다. 큰 부자들에게서 겁재가 잘 발달해 있어, 큰 재물의 기운이 들어왔을 때 남들보다 훨씬 더 크게 재물을 축적하는 것은 자주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현대에는 사길신과 사흉신의 구분보다도, 사주 안의 모든 기운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공망(空亡)이나 격각(隔角)의 특성이 사회적 성공을 이루는 데 제약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길신의 삶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바람직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고, 할 일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고, 정기적으로 수입이 들어오는 삶을 싫어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각을 나타내야 한다면, 그래서 안정의 테두리를 박차고 나와야 한다면 오히려 사길신은 제약처럼 작용할 수 있습니다. 도리어 사흉신의 기운을 적절히 활용할 때 탁월함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사길신과 사흉신은 안정과 도전, 조화와 혁신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가치를 규정한 것 같기도 합니다. 도전에는 불안이라는 댓가가 따르고, 안정된 삶에서는 의지 또한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의 삶을 살아갈지 알 수 없지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어떤 방향을 택할지에 대한 고민은 인간으로서 보편적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