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에서 본 인플레이션의 또다른 얼굴, ‘Accessflation’
성수동에 다녀왔습니다. 여전히 젊은 친구들이 모이고, 감각적인 가게들이 자신의 색깔을 내는 곳이었습니다. 예전에 자주 가던 신기한 물건 많이 가져다 놨던 문구점은 이제 건물 전체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는 같은 노트인데도 국산 제품이 일제보다 비싸게 팔리는 저로서는 낯선 장면도 목격했습니다.
이번 방문은 생맥주 팝업 스토어 때문이었는데, 앉는 자리는 없고 서서 마시는 구조였습니다. 인당 세 잔으로 제한되어 있어 금방 마신 뒤, 위스키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에서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흥미로웠던 건 시간대였습니다. 밤 10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거리의 불이 하나둘 꺼지고, 대부분의 가게가 이미 영업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지금이 가장 북적였을 시간이었고, ‘젊음의 거리’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던 곳이었기에, 이 변화는 단순한 운영 방침 그 이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인플레이션’이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물건과 서비스의 가격이 오르니,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돌아다니기 어렵고, 미리 계획해서 빠르게 소비하고 대중교통으로 귀가하는 모습이 일상이 됩니다. 예전 같으면 할증 택시를 타고 귀가했을 거리에서, 이제는 택시들이 손님을 기다리며 빈 차로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교과서가 말하지 않는 인플레이션
경제학 교과서는 인플레이션을 "물가가 오르는 현상"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인플레이션은 훨씬 더 복합적입니다. 단순히 비싸지는 것이 아니라, ‘질의 열화’를 동반합니다.
예를 들어 과자는 재료를 바꾸거나 용량을 줄인 뒤 가격을 유지하거나 소폭 인상합니다. 이런 현상은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라고 불립니다. 서비스 영역에서는 청소 주기를 줄이거나, 사람 대신 기계를 투입해 처리 단계를 생략하는 등의 방식으로 비용을 줄입니다. 이를 ‘스킴플레이션(Skimpflation)’이라 부릅니다. 즉, 우리가 내는 돈은 비슷하지만, 받는 효용은 줄어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물건과 서비스의 질적 저하는 열화(劣化, degradation)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이 광범위하게 진행되면, 단순한 가격 상승보다 훨씬 더 큰 문제를 야기합니다.
열화 다음에 오는 것: 접근의 제한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충분한 효용을 얻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그 결과 선택 가능한 서비스와 제품 자체가 줄어듭니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고정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상품 수를 줄이거나, 서비스를 표준화·자동화하는 방식으로 운영 효율을 높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이상 ‘비싼 건 비싼 대로, 싼 건 싼 대로’ 필요에 따라 고르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선택지가 줄어들고, 몰리는 곳만 몰리며, 소규모 사업자들은 점점 더 도태됩니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물건과 서비스를 고르는 것 자체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결국 ‘접근 자체가 제한되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물건과 서비스는 그대로이고 가격만 오르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가격에 걸맞는 질적 제품과 서비스가 없어지는 환경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Accessflation’으로 정의하고 싶은 현상
AI에게 이 현상을 설명해달라고 했더니, 하나의 조어를 제안해줬습니다. Access(접근) + Inflation(인플레이션)의 결합어, 바로 Accessflation입니다.
이 말이 함축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Accessflation은 가격의 상승뿐 아니라, 품질 저하와 공급의 축소로 인해 소비자의 실질적 접근 자체가 제한되는 상태
이는 단순히 비싸서 못 사는 것이 아니라, ‘쓸 만한’ 것을 찾기도 어렵고, 설령 찾았다 하더라도 시간, 거리, 정보, 비용 등의 제약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접근이 제한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이 개념은 지금 우리가 체감하는 경제적 불편을 기존 인플레이션보다 더 적확하게 설명합니다.
새로운 풍경,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단순한 물가 상승이 아닙니다. 질의 열화 → 선택지의 축소 → 접근의 제한이라는 삼단계를 거치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돈을 들여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덜 만족스러운 상품과 서비스를 접하게 됩니다.
성수동에서의 하루는, 그 변화가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저는 단순히 인플레이션이라 부르기보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이 질적 위기를 ‘Accessflation’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