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아닌 이유, 전근대적 세금 제도

상계동백곰 2025. 9. 23. 07:14

'근대화학의 아버지' 라부아지에는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위대한 과학적 업적도 '징세청부업자'로서 가혹하게 세금을 착취했던 과거를 덮어주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부터 천국에 가기 어려운 직업으로 언급될 만큼, 국가 권력을 등에 업고 사적 이익을 위해 국민을 압박했던 '세리(稅吏)'는 역사적으로 증오와 개혁의 첫 번째 대상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통해 유럽의 근대 국가들은 세금 징수를 사적 이익이 개입할 수 없는 국가 시스템 안으로 완전히 편입시켰습니다. 징수 과정에서 부당한 이득을 취할 유인을 원천적으로 제거한 것입니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이 악명 높은 세리의 모습이 법 조항 속에서 여전히 발견되고 있습니다.

 

'성과급'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세리의 그림자

 

국세기본법 제84조의3은 '국세의 부과·징수·송무에 특별한 공로가 인정되는 사람에 대하여 포상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명시합니다. 정부는 이를 악성 체납을 적발하거나 공무원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세수 부족이 일상화된 지금 이 조항의 본질은 다르게 작동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세금을 더 많이 걷어오는 행위를 국가가 공식적으로 장려하겠다는 신호이며, 그 구조는 역사 속 징세청부업자의 그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물론 현대 국가에는 행정소송과 같은 구제 절차가 마련되어 있다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형식적으로만 작동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막대한 행정력과 법률 전문성을 갖춘 국가기관을 상대로 평범한 개인이나 중소기업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싸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결국 대다수 납세자에게 징수 공무원의 결정은 법원의 최종 판결과 다름없는 무게를 지닙니다.

 

서류상으로 존재하는 구제책은 실질적인 방어막이 되지 못한 채, 징수 실적에 대한 압박과 포상금이라는 유인이 결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과잉 징수의 위험을 막아주지 못합니다.

 

갑오개혁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 '재정의 근대화'

 

한국이 선진국이라 말하기에 주저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부처별로 흩어진 '잡세(雜稅)'의 문제입니다. 1894년 갑오개혁 당시, 국가 재정의 근대화를 위해 여러 부처에 난립하던 징세권을 탁지부로 일원화하고자 했습니다. 그로부터 130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입니다.

 

물론 국방부가 직접 세금을 걷지는 않습니다. 대신 국민들은 건강보험료, 국민연금, 고용보험료, 환경개선부담금, 전력산업기반기금, TV 수신료 등 100여 개에 달하는 '준조세'를 국세청이 아닌 각 부처와 기관에 납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세금'이라는 이름만 붙지 않았을 뿐, 내지 않으면 재산을 압류당하는 완벽한 강제성을 띱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준조세 대부분이 국회의 예산 심의와 같은 민주적 통제를 벗어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건강보험료처럼 100조의 재원이 국회의 감시 없이 주무 부처의 의지대로 운영되는 현실은, 이 돈이 공공재라기보다 부처의 '쌈짓돈'처럼 쓰일 수 있다는 위험을 내포합니다. 이는 조세 징수처를 일원화하여 투명한 재정을 확립하려 했던 100여 년 전 개혁가들의 꿈을 무색하게 만드는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과거 고성장 시대에는 이러한 부담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성장 고금리 시대에 접어든 지금, 국민들은 과거 무심코 내던 돈의 정체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재정 압박에 시달리는 정부가 눈에 불을 켜고 세원을 찾는 과정에서, 이 전근대적인 조세 제도의 모순은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문제가 될 것입니다.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지금은 문제를 삼지 않고 넘어가기엔 우리 모두의 삶이 너무나 팍팍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