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의 관세전쟁이 점점 그 목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기본 10% 이상의 관세를 전제로 각국과 협상을 시도하면서 그동안 맺었던 미국과의 여러 무역 협정을 종잇장으로 만들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조약 조문 하나에도 수많은 논의와 논쟁이 동반되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었을 텐데, '트럼프'라서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형성되면서 그의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당초 관세를 부과할 때만 해도 미국 내 인플레이션 때문에 관세를 철폐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미국 내 물가상승률은 관세 부과에 비해 크게 오르지 않았는데, 이는 물가를 구성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인 원유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했기 때문입니다. 에너지 비용이 떨어지면서 다른 비용 상승을 상쇄하여 관세로 인한 물가상승을 억제한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몇십 퍼센트에 달하는 고율 관세를 협상 수단으로 사용하다가 각국이 협상을 제안해오자, 구체적인 내용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핵심이 바로 '경상수지 흑자국으로서의 미국'입니다.
미국 중심 세계 경제 구조의 변화 시도
현재 세계 경제 구조는 미국이 소비를 담당하고 중국,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 생산하여 미국 시장에 판매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유럽은 자체 경제권으로 엮여 있지만, 독일 역시 미국에 상당량을 수출하고 있죠. 특히 중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물량이 막대한데, 수출 대금으로 받은 달러로 다시 미국 국채를 구입하면서 동시에 패권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최근 10년간 미국 정가에서는 중국 견제 방안이 초당적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최첨단 기술 위주의 핀셋 견제를 택했다면, 트럼프는 사업가 출신답게 한 번에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듯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제조업 부흥을 통한 미국의 경상수지 흑자국 전환 시도입니다.
만약 미국이 물건을 만들고 중국과 한국, 일본이 이를 구매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트럼프가 "미국 물건을 많이 안 사주니까 이렇게 한다"고 할 때마다 사람들은 '물건이 싸고 좋으면 사지 말라고 해도 산다'라고 반박합니다. 이는 결국 미국 제품이 비싸고 그만큼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한때 '미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말이 있던 시절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 제조업 부활의 복합적 과제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을 뒤집어 미국 제품을 세계 시장에서 많이 판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미국은 제조업 경쟁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관세나 환율 정책만으로 이루기는 어려운 과제입니다. 노동력, 기술력, 공급망, 인프라 등 복합적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작용해야 하며, 특히 자동화와 AI 시대에는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경쟁력이 요구됩니다.
미국이 중국처럼 경공업까지 포함한 전방위적 제조업 경쟁력을 단시간에 갖추기는 불가능합니다. 한때 세계의 공장이었던 미국이지만, 수십 년간 공장들이 해외로 빠져나간 현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현재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제조업 분야부터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이를 각국에 수출하도록 압박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이 대표적이며, 미국 브랜드의 리쇼어링(본국 회귀)을 통해 자국 내 생산을 확대하고 다시 수출하는 방식도 적극 추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의약품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조업 공장은 일단 건설하면 유휴화하기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수익성이 높은 제품을 중심으로 생산하겠지만,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생산 범위를 계속 확대할 것입니다. 규모의 경제가 제조업의 핵심 경쟁력이기 때문에, 시장이 허락하는 한 생산량을 최대화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잃어버린 경쟁력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높은 노동비용과 낮아진 숙련도는 하루아침에 개선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또한 소비자들의 브랜드 충성도와 구매 습관도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글로벌 공급망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이 단지 애국심 또는 '최강대국'인 미국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비싼 미국산 제품을 선택할지는 의문입니다.
플라자 합의의 교훈과 환율 전략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는 타국의 환율 절상을 통한 가격 경쟁력 확보를 시도할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적 선례를 살펴보면, 한때 세계 최고의 제조업 강국이었던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강세로 전환되면서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엔화 부족 현상이 발생하자 일본은 금리를 인하했고, 이로 인해 자산 버블이 형성되었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이 자산을 바탕으로 해외 자산을 대거 매입하는 동안 제조업 경쟁력은 점진적으로 약화되었고, 이 틈을 한국 기업들이 파고들면서 한국의 만성적인 무역적자 해소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현재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는 중국에 대해서도 비슷한 전략이 구사될 수 있습니다. 만약 플라자 합의와 유사한 위안화 환율 절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관세를 계속 유지하겠다고 압박할 경우, 위안화 절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금리 인하를 통해 위안화 유동성을 확대하고, 해외 자산 매입에 나설 것이며, 그중 일부는 미국산 제품 구매에 활용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중국은 단순히 미국의 요구에 순응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내수시장 확대, 제3세계 시장 공략, 기술 자립화 등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위안화 절상이 자동적으로 미국 제품 구매로 이어지리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미국은 또한 각종 시장 규제 해소를 협상 조건으로 내걸 것이며, 이 과정에서 중국 내 자국 기업과 외국 기업 간 차별을 철폐하여 미국 기업의 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효과를 노릴 것입니다. 중국 시장이 개방되고 미국 자본이 중국 자산을 대규모로 매입하게 되면, 중국 정부도 미국에 쉽게 반기를 들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과거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대량 매각해 미국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중국이 판매한 국채를 일본이 대부분 매입했습니다. 반면 미국이 중국 자산을 대량 보유하다가 매각할 경우, 이를 흡수할 대체 시장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
이러한 변화는 우리나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한국 역시 환율 절상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1,400원대의 원/달러 환율이 1,200원대, 심지어 1,000원대까지 하락하는 것은 한국의 수출경쟁력이 약화되지만, 위안화의 절상폭은 더 클 가능성이 높고, 중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크게 약화될 것입니다. 소비자들은 중국산 제품 중에서도 실질적 경쟁력을 갖춘 제품만 구매하고, 단순히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선택하던 제품들은 외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관세전쟁 이후 알리익스프레스 등에서 판매되는 중국산 제품 가격의 상승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위안화 절상까지 더해진다면, 신뢰도가 높지 않은 제품에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지불하려는 소비자는 줄어들 것입니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중국산 제품과의 경쟁 구도에 미국이 또 다른 경쟁자로 등장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가능성도 있지만, 기존 질서의 급격한 변화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중국이 대량 생산하던 제품들은 미국의 대규모 소비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인데, 이제 반대로 미국산을 구매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이 됩니다. 자국내에서 생산해서 소비하는 대신 수입해서 소비하는 식으로 바뀐다면 중국 제조업의 규모 축소는 불가피합니다. 또한 중국에서 자산 버블이 형성된다면 과거 일본의 사례처럼 생산 현장에서 일하려는 인력도 감소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가 중국산 제품이 시장에서 감소하고, 그 자리를 한국산 제품이 채우거나 미국산 제품과의 경쟁 또는 시장 분할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제'의 귀환 가능성
미국 제조업이 실제로 부활한다면, 우리 부모님 세대가 경험했던 현상이 다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바로 '미제'의 귀환입니다. 현재 소비자들이 구매를 고려하는 미국산 제품은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소매시장에서는 CPU나 테슬라 자동차 정도가 대표적이며, 군수물자 등 특수 용도의 제품들만이 우수한 '미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접하는 나이키 같은 스포츠 용품이나 각종 식료품은 미국 브랜드일 뿐, 실제 생산지는 미국이 아닙니다.
제조업이 부활한 미국의 모습은 어떨까요? 제조업은 공장 설비가 확충되면 지속적으로 생산량을 늘리는 특성이 있습니다. 초기에는 대형 고부가가치 제품을 중심으로 생산하겠지만, 점차 생활 속 소소한 제품들로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 제조업 부활의 확실한 신호는 우리가 자주 방문하는 다이소와 같은 생활용품점에서 'Made in USA' 제품들을 흔히 볼 수 있게 되는 순간일 것입니다.
물론 높은 임금 수준, 원자재 비용, 복잡한 규제 환경 등을 고려할 때, 저가 소비재까지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고부가가치 첨단기술 제품이나 특수 산업재 부문에서의 경쟁력 회복이 더 현실적인 시나리오입니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의도한 바를 밀어붙이는 모습을 볼 때, 일상 속에서도 미국산 제품을 더 자주 접하게 될 미래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국제무역의 복잡성과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글로벌 공급망의 견고함을 감안하면, 미국 제조업의 완전한 부활은 결코 쉬운 도전이 아닙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과감한 정책 추진과 이로 인한 글로벌 경제 구조의 변화 가능성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변화하는 세계 경제 질서 속에서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은 분명 중요한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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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입니다. 근데 그냥 침만 놓는 사람 아닙니다. 한의학부터 사회 꼬집기, 경제·경영 및 기술까지— 세상이 던지는 말들에 한 마디씩 반사해봅니다. 오신 모든 분들,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