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주요 포털을 통해 신문을 소비하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신문은 한 달에 얼마간 신문값을 내고 보는 것이었습니다. 판촉을 위해 우유를 같이 주거나 3개월치 신문을 무료로 주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신문을 보다가 구독중단을 해도 계속 배달이 돼서 문에다 '신문사절'을 붙여놓기도 했습니다. 아침마다 아버님이나 어른들이 방바닥에 신문을 펼쳐놓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아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다 네이버 등 포털을 통해 신문을 접하기 시작하였고, 돈 내고 보는 신문을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결국은 실패했습니다. 예전에 테이프나 CD로 통째로 듣던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들으면서 노래 한곡한곡으로 나눠서 듣게 된 것처럼, 신문기사도 관점을 가지고 정리된 종이신문에서 개별 기사로 원하는 내용만 보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극적인 제목을 누가 빨리 올리는 지가 신문 기사의 클릭수와 광고비를 결정합니다. 심지어 제목만 있고 내용은 없는 기사도 속보라는 형식으로 최대한 빨리 포털에 올리기 경쟁을 합니다. 특히 정치인들의 일거수일투족, 말 한마디한마디는 연예파트의 아이돌 기사보다도 더 빨리 실시간으로 올라옵니다.
당연히 부작용이 생깁니다. 무엇보다도 깊이 있는 신문기사를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과 같은 유수의 신문들은 신문기사의 길이가 깁니다. 체계적인 글의 구조를 사실에 근거해 보도하고 이해 가능한 예측을 도출합니다.
물론 해당 신문들도 정치와 같이 주요 사안에 치우치는 경향은 있지만, 포털이 아닌 자사 사이트를 통해서 기사를 내기 때문에 종이신문과 같은 편집의 일관성이 담보됩니다. 우리처럼 무료로 단편 기사를 보는 것이 아닌, 돈을 내고 정리된 신문을 해당 사이트에서 보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해외 주요 일간지들이 이처럼 유료 구독모델입니다. 일론 머스크가 X(구 트위터)를 인수한 이유로 사회관계망을 통해 돈을 내지 않고 신문을 보는 효과를 만들어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끌어내려는 목적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누구보다도 신문사들이 잘 알고 있기에, 예전의 구독 모델을 다시 살리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중앙일보의 더중앙플러스가 대표적입니다. 처음에는 무료로 신문 보는 것에 익숙해졌으니 누가 이걸 보겠냐고 했지만, 의외의 성공에 논조가 다른 신문사들도 유료 모델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런 유료 모델이 성공하려면 몇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1. 정성들인 기사
일단 기사 한편이 길어야 합니다. 내용도 체계적이어야 하고, 다른 신문에서 다루지 않는 주제도 중요하지만 일단 길어야 합니다. 긴 기사만큼 채워 넣어야 할 내용이 많기 때문에 그만큼 취재를 많이 하게 됩니다. 더중앙플러스의 기사를 보면 기자 3~4분이 함께 작성한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기자의 사진을 기사 끝에 넣어 해당 기사의 책임제를 운영하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가장 정련된 글이 신문기사입니다. 정련된 글의 길이가 2배 길어지면 들어가는 노력은 4배 이상 증가합니다. 그동안 짧은 기사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 처음에는 접근이 어렵겠지만 길어진 기사만큼 충실한 내용이 들어있다면 충분히 비용을 지불할 것입니다.
2. 적절한 비용
아직은 무료로 신문기사를 읽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유료 신문 모델에서는 페이월(Paywall) 또는 로그인월(Log-in wall)을 써서 신문기사의 앞부분만 보여주고 나머지는 구독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 때 고민하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사를 더 읽고 싶은지와, 더 읽고 싶다면 비용은 적절한지입니다. 기사를 쓰는 데 들인 공을 생각하면 한 달 몇만 원도 비싸지 않겠지만, 무료에 익숙해져 있어서 당장 결제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당분간은 한 달에 만원 이하, 가능하다면 5천 원선에서 구독료를 책정하는 것이 유료모델을 확산시키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3. 한상 차림과 같은 신문기사
유료 신문을 읽는 독자들은 무료 단편 신문기사 소비자와는 다른 선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사 한편 한편의 질도 중요하지만, 이왕 한 달에 얼마를 냈으니 신문 전체를 소비한다는 개념이 있습니다. 예전 신문이 1면 헤드라인부터 마지막 생활의 팁이나 TV 편성표까지 다양한 분야를 다뤘고, 독자들도 거기에 익숙하게 신문을 소비했습니다. 지금은 신문이 온라인으로 옮겨왔지만, 유료 신문을 읽는 독자들이 가진 소속감은 신문 구성의 독창성 또한 소비의 기준으로 설정합니다. 같은 한정식이라도 어느 집은 고기 요리를 잘하고, 어느 집은 국과 찌개를 잘하는 것처럼 유료 신문의 개성을 드러내야 독자를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을 골고루 다루는 것이 기본일 것입니다.
사회가 여러가지 의미로 고도화되고 있습니다. 고도화의 끝은 단순화입니다. 우리 사회는 간접적인 주고받음이 많았습니다. 무엇을 해주지만 바로 대가를 주기는 어려우니 다른 형태로 돌려서 전달되는 형태입니다.
신문은 돈을 안 내고 보는 것 같지만, 실상 구독료는 광고료에 전가되었습니다. 의료에서 부족한 치료비를 실비나 비급여로 받는 것이 있습니다. 공무원들은 지금의 박봉을 장래의 산하기관 고연봉이나 공무원 연금으로 보상받으려 했습니다. 세금마저도 조세 저항을 우려해 직접 부과하는 세금보다는 상속세나 법인세처럼 사람이 직접 내는 느낌이 적은 세금이나, 4대 보험료나 국민연금, 건강보험료처럼 준조세 성격으로 사람들에게 걷었습니다.
앞으로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직접 주고받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어느 집단에 소속은 되겠지만, 그 집단 속의 익명성을 쓰지 않고 자신의 이름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교환하게 될 것입니다.
신문의 유료모델도 그 흐름 중 하나입니다. 신문사의 기자님들이 결코 실력이 부족하거나 좋은 기사를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유료 신문을 읽으면서 알게 됩니다. 남은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변화입니다. 좋은 것을 받고 싶다면 그것을 만든 사람에게 직접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렇지 않은 현실 속에서 바꿔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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