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책의 시대가 올까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이후 서점가와 출판업계는 오랜만에 훈풍을 맞이한 것 같습니다. 잔업을 불사하고 책을 찍어내고, 서점에 책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나타났습니다.
SNS에서는 텍스트힙(Text Hip)이라는 이름으로 독서가 폼나고 멋있는 모습으로 보이면서 유행을 타고 있습니다. 독서하는 모습 자체를 과시하는 목적으로 쓰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읽는다는 대상이 책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간 지 오래되었고 그만큼 독서량의 감소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 되었으니 과시로라도 책을 읽겠다는 것이 반갑기도 합니다.
책을 읽기로 마음먹고 서점을 방문하면 어떤 책이 좋은 지 선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작가가 유명해 이름만 보고 살 수 있다면 차라리 쉬울 수도 있습니다. 보려는 책이 작가 외에도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얼마나 풍부하고 충실한지 평가를 해야 합니다. 책을 볼 때는 그 분야에 대해 잘 몰라 더 알고 싶어 책을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책이 광고판처럼 쓰이는 경우도 적지 않아 평가의 신뢰도가 의심받기도 합니다. 저자가 지식을 알리는 데 전념하고 책을 마케팅하는 데 관심이 없으면 출판사는 책을 알리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아 아는 사람들만 아는 책이 되기도 합니다. 서점에서는 직접 책을 펼쳐 들어보고, 인터넷 서점에서는 미리 보기를 제공한다지만 이래저래 좋은 책을 찾아내는 방법은 쉽지 않습니다.
경제학적인 방법으로 좋은 책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바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사고 싶어하는 물건은 가격이 오르고, 많이 팔려는 물건은 가격이 내린다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단순한 법칙을 책에도 적용시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나라는 도서정가제의 영향으로 책값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고책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인터넷 서점 중 책의 중고매입을 적극적으로 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온라인/오프라인 모두 중고책을 취급하고, 인기 있고 유통이 잘 되는 책은 직매입을, 그렇지 않으면 입점 판매자의 형태로 중고책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중고책은 도서정가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중고책의 가격은 절판/품절이 된 책과 아닌 책을 구분해서 가격 수준을 평가합니다. 예를 들어 4만원짜리 책이 있는 데 나온 지 얼마 안 되고 판매 중인 경우 중고가가 3만 6천 원 이상이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중고가가 3만 원 근방이면 새책을 사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절판/품절이 된 책은 말그대로 책의 수요와 가치가 가격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특히 중고책 판매자가 많이 있는 데도 형성된 시세는 그 책의 가치를 상당히 반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주식이나 부동산 등 투자 관련 서적에서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돈을 벌어 줄 수 있을 것 같은 책에 돈을 쓴다고 하면 책 가치가 중고가격에 반영되는 것입니다.
절판/품절이 된 책의 중고가는 책 정가와 차이가 거의 없거나 더 비싼 경우 책이 괜찮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고책의 가격 결정요인은 책의 가치 뿐만 아니라 희소성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책 자체가 적게 유통되었는 데 수요가 있다면 중고책 가격이 정가의 2~3배까지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책 내용이 그런대로 괜찮아도 유통된 책이 많다면 중고책값이 정가와 큰 차이가 없거나 더 저렴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책들의 정가대비 중고가 가격은 판매중인 책의 경우 정가의 80% 선이고, 절판/품절된 책은 3년 이내에는 정가의 100~120% 수준입니다. 3년이 지났는 데도 수요가 있다면 보통 정가의 150%부터 몇 배 수준까지 중고가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판매 중인 책의 정가대비 50% 이하로 중고가가 형성되어 있으면 책을 구매하기보다는 중고로 보시거나 도서관에서 빌려보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을 돈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을 좋게 보지 않거나, 평가 기준 자체가 모호하고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보가 곧 돈인 시대라지만 정보에 가격표를 매겨서 팔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정보 자체보다는 교육이나 컨설팅 명목으로 서비스를 결합해 가격표를 매기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형태입니다.
좋은 책을 찾는 데 경제적인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객관적이면서 의미가 있습니다. 책은 표준화된 지식 전달 도구이며, 서점은 가장 오래된 정보 플랫폼 사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동안은 책의 정가, 판매부수가 책의 가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자본력을 포함해 책의 외적인 부분으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중고가는 이미 책을 본 사람들이 책의 가치를 중심으로 형성됩니다. 꼭 중고를 사지 않고, 새 책을 살 수 있더라도 중고가를 참조하는 것은 이미 책을 읽은 사람들의 평가를 읽는 것입니다.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눈으로 글자를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책을 눈으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발성기관이 책의 내용을 소리내어 읽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납니다. 책만 많이 읽어도 어휘력 향상뿐만 아니라 대화의 유창성과 이해도가 증가하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친다'는 말은 독서가 단순히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것을 넘어 말하는 힘까지 키우는 것을 포함합니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책을 읽어야 합니다. 광고판으로 쓰려고 서점 전면을 특정 서적으로 채우기도 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책을 평가하는 믿을 만한 기준은 사회의 지식수준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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