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출판이 늘어나면서 저술, 편집, 인쇄, 배본까지 다 맡아서 하시는 분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알만한 출판사에 맡기면 정해진 인세를 받습니다. 대신 출판하는 책의 상품가치나 편집 난이도에 따라 운이 좋음녀 권당 1만 원의 원가를 부담하는 정도에서 정말 좋은 책이라면 아예 출판사가 모든 비용을 도맡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대다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1인 출판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이유기도 합니다. 내가 다하면 인세 개념 대신 면세품인 책을 팔아서 얼마를 남길지만 고민하면 됩니다. 출판을 홍보 등 다른 목적을 두고 진행한다면 이마저도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1인출판의 현실은 결국 혼자서 다 해야 하고, 요즘 인기 있는 전자책, 즉 이북(e-book)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종이책이라고 일일이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고 컴퓨터로 하기 때문에 전자 파일로 된 원고를 변환만 시키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현실은 아니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북을 만드는 것은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종이책은 텍스트가 위주라고 해도 종이 안에서의 글자 위치, 글꼴의 형태, 쪽수 등 각 요소의 배치가 중요합니다. 색깔도 1도냐 2도냐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어떻게 구분해 색을 쓸지도 신경이 쓰입니다. 디자인적 요소가 중심입니다.
이에 비해 이북은 홈페이지 만들기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디자이너가 포토샵으로 예뻐보이는 홈페이지 화면을 그려주기는 하지만 결국 개발자가 도구를 쓰거나 코딩을 해서 구현을 해야 합니다. 이북 제작에 많이 쓰는 시길(Sigil)이라는 툴은 아예 코딩 언어가 HTML입니다. CSS라는, 웹 개발을 해보신 분들에게는 익숙한 파일도 만져야 합니다. 단순히 텍스트만 이 프로그램에 옮겨 오면 띄어쓰기도, 줄 바꿈도 안 되어 있는 글자 뭉치를 보게 됩니다. 이를 일일이 코드를 매겨서 줄을 나누고, 서식을 적용해야 합니다.
각 장마다 파일로 나누기 때문에 여러 파일을 건너다니면서 작업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종이책은 디자이너, 이북은 개발자의 업무에 가깝습니다. 이북을 읽는 환경이 이북리더기, 폰, 태블릿, 컴퓨터 등 다르기 때문에 내 컴퓨터 화면에서 보이는 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북 안의 요소들, 예를 들어 본문, 인용문, 제목, 그림 등이 정확히 구분되어서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글꼴을 마구잡이로 쓰거나 그림을 막 넣는 것은 안 됩니다. 용량이 커지기도 하고, 구조적으로 효율적인 이북이 안 될수도 있습니다. 종이책이야 각종 스타일이나 글꼴을 지정하는 방법이 깔끔한 것은 작업 효율의 문제이지 보이는 것과는 상관이 크게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북은 다릅니다. 내 컴퓨터 화면에서 잘 보이게 하겠다고 예외적인 방법을 사용하거나 권장되지 않는 방법을 쓰게 되면 당장 제작 프로그램에서 에러를 내뿜습니다. 워드처럼 보이는 화면 그대로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코드를 넣을 때마다 결과물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깜빡거리면서 알려줍니다.
작년 초에 발간했던 책을 이제서야 이북으로 만들면서 일을 쉽게 생각했던 저 자신에 대한 반성과 함께, 종이책과 전자책이 완전히 다른 구조로 만들어진다는 것만 알면 생각보다 일이 빨리 진행될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꽤 이름 있는 출판사들이 전자 파일로 원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두 이북으로 내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잘 팔리지 않거나 구독 서비스로만 소비되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종이책과 전자책이 나오는 과정 자체가 다릅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출판사에서 개발자를 뽑아야 이북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북은 종이책과는 만드는 것에서 소비까지 다른 경로를 따라갑니다. 종이책이 나오는 숫자에 비해 이북이 턱없이 부족한 것은 단순히 만들 사람이 없어서는 아닐 것입니다. 아직은 종이의 질감과 향기, 가독성을 이북이 따라 오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북이 하나 월등한 것은 있습니다. 그것은 구독 서비스를 통한 독서량의 증가입니다. 종이책은 구독서비스도 없지만, 도서관에 가더라도 일일이 책을 찾고 펼쳐서 내용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북은 종이책에 비해 숫자는 적지만 구독서비스를 이용한다면 바로 다운로드하여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익숙한 내용들은 스크롤해서 쭉 흘려보내고 필요한 부분만 읽을 수도 있습니다. 종이책에서는 어려운 부분이고, 독서량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책을 휘리릭 읽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종이책과 전자책은 책이라는 이름을 공유하는 다른 상품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전자책이라도 한 글자씩 꼼꼼히 읽고 싶으면 전자잉크 리더기로 진짜 책처럼 읽기도 합니다. 기술서적이나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고 싶으면 폰으로 빨리 넘겨 필요한 내용만 찾게 됩니다. 종이책도 할 수 있지만 전자책이 빠르고 편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종이책을 출판하셨다면 전자책 출판도 같이 해보시길 바랍니다. 처음에는 고생을 피할 수 없습니다. 종이책 만들 때 이 잡듯이 찾았다고 자부했던 오탈자는 전자책 편집 과정에서 여전히 중간중간 튀어나와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그럼에도 같은 내용을 새로운 양식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 있습니다. 저만 당할 수 없으니 같이 이 즐거움을 누려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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