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 원두에 관심을 가진 것은 15년 가까이 된 것 같습니다. 커피라고는 믹스 커피 말고 다른 것을 생각하기 힘든 시기였고, 원두커피라는 이름으로 가끔씩 카페에서 나오는 정도였습니다. 커피는 그냥 커피였고, 커피 원두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사람들이 관심을 거의 가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커피 소비량은 적지 않았습니다. 그 형태가 믹스커피, 가루커피, 캔커피의 형태로 지금의 커피 전문점이 없이 나머지는 다 있었던 것 같습니다.
드립 커피가 알려지고, 커피 원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생소한 커피 원산지의 이름을 듣기 시작합니다. 커피가 나오는 국가들이 정해져 있지만, 우리하고 친숙한 국가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브라질이나 에티오피아, 하와이 정도가 그나마 들어본 지역이고, 엘살바도르, 자메이카, 탄자니아 같이 들어봤나 하는 국가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국가를 넘어 커피 산지를 중심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예멘 모카나 에티오피아 하라르, 브라질 산토스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10년 전만 해도 구할 수 있는 원두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각 국가별로 스페셜티나 컵오브엑설런스(Cup of Excellence)도 쉽게 들여오지만, 유명한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은 꽤 오랫동안 일본이 차관제공의 반대급부로 독점 수입을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보기 힘들던 블루마운틴이 오사카 구로몬 시장에서 볶아서 판매하던 것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지금이야 독점이 풀리고 우리나라 커피 시장이 커져서 블루마운틴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좋은 커피는 다 구할 수 있습니다. 되려 일본에서 원두의 종류가 줄어든 느낌입니다.
커피 원두를 생산지별로 즐길 때는 크게 아프리카, 중남미, 남미, 아시아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나라별로 원두의 품질이나 관리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소위 커피 벨트(Coffee belt)라 불리는 적도를 기준으로 북위 남위 각 25도까지의 생장 가능 지역에서만 커피가 생산되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커피맛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케냐의 강한 산미나 탄자니아의 훈제향, 에티오피아의 고구마향처럼 아프리카 원두들은 고유의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예멘 모카는 커피의 산미가 거의 없으면서 고유의 고소한 맛으로 유명합니다.
남미커피는 브라질이나 콜롬비아처럼 유명한 산지들이 많고, 딱 우리가 아는 커피맛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맛입니다. 물론 거대한 커피 산지다 보니 그 안에서도 고유한 품종이나 재배법을 통해 꽃향기나 과일향 등 다양한 개성을 여지없이 드러내기도 합니다. 아시아는 베트남의 로부스타, 인도의 몬순 커피, 인도네시아 만델링처럼 산미보다는 쓰고 쌉사름한 맛들이 많습니다. 커피 원두 자체보다는 커피를 가공하거나 마시는 방법을 다양하게 가져가면서 커피의 개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베트남의 연유커피나 몬순의 커피 숙성이 이에 해당됩니다.
만약 커피 맛을 잘 모르지만 좋은 커피를 눈 딱감고 정하고 싶다면 저는 중남미 커피를 추천합니다. 특히 카리브해를 끼고 있는 국가들의 커피가 좋습니다. 유명한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을 시작으로 파나마 게이샤,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안티구아에서 최근 많이 알려지고 있는 엘살바도르 커피까지 중남미 커피는 산지도 다양하지만 고온다습한 기후의 특징과 산뜻하면서 과하지 않은 산미가 있어 별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이 균형잡힌 맛으로 유명하지만 가격이 높아서 부담된다면 가까운 주위 국가인 파나마나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커피를 선택해도 가성비로는 만족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페셜티 등 고급커피도 해당 지역에서 나는 경우가 많고, 국가에서 커피 원두를 잘 관리하는 편이라 들쑥날쑥한 원두를 접하거나 결점두가 원두의 3분의 1이 되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아쉬운 것은, 중남미 원두의 가치가 계속 알려지다 보니 가격이 꾸준히 오르는 점입니다.
식량과 달리 기호식품은 산지를 많이 가립니다. 거의 매일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을 먹더라도 산지가 어디인지는 거의 신경 쓰지 않습니다. 있더라도 커피 산지를 신경 쓰시는 분들의 비율보다는 낮을 것입니다. 식품은 많이, 품질차이가 거의 없는 식물을 재배하고, 개량해 왔습니다. 기호식품은 다릅니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의 입맛이 천차만별인 것 같아도 맛있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는 정해져 있습니다. 맛있는 것을 만드는 산지도 정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스키는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 스페이사이드가 대표적이고 중국 바이주는 쓰촨 성이나 구이저우 성이 유명합니다. 와인은 프랑스의 보르도와 부르고뉴가 대표적입니다. 대만의 우롱차, 쿠바산 시가, 안동 사과, 나주 배도 하나의 예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그 아성을 도전해 보려고 끝없는 시도를 하지만 성공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습니다. 사람의 노력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의 도움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커피에서는 중남미에서 생산된 커피가 여기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부지런한 농부들의 손길과 천혜의 환경이 같이 만드는 커피 같습니다. 블루마운틴 등 유명한 커피도 많지만 엘살바도르나 온두라스 등 조금은 낯선 중남미 커피도 즐겨보시길 권유드립니다. 원두커피를 즐긴다는 느낌을 온전히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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