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점에서 마주한 변화
간만에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았습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여전히 자기계발서와 경제경영서적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 뒤로 유명 작가들의 신간과 정치인들의 책이 중앙 통로 양쪽에 진열되어 있습니다.
이번 방문에서 유독 눈에 띈 것은 책의 주제나 디자인이 아닌 두께였습니다. 문학 서적 코너의 책들이 예전보다 가볍고 작아진 것 같았습니다. 처음엔 문학 코너만의 특징인가 싶었지만,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나마 두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파이썬이나 노코드 도구 같은 기술 분야와 과학 분야 책들뿐이었는데, 이마저도 300페이지 안팎의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과학서적 하면 벽돌만큼 두껍고 큰 책들이 떠오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책이 점점 얇아지고 작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짧아지는 책의 시대, 난독사회의 징후
이상한 기분이 현실인지 궁금해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니, 베스트셀러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기사를 찾아주었습니다. 영국 더 타임스는 "믿을 수 없이 줄어드는 소설: 왜 우리는 더 짧은 책을 읽는가"라는 기사에서 시간 압박을 느끼는 현대인들과 독립서점의 부상이 짧은 소설 유행을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저는 여기에 몇 가지 관점을 더하고 싶습니다. 최근 10여 년간 성인들의 문해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읽는 것은 책이 아닌 유튜브와 SNS의 동영상이나 짧은 글이 대부분입니다. 최근 성인이 된 사람들은 코로나 시기의 학력 저하와 인간관계 단절로 인한 언어 능력 저하를 함께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 성인의 언어 능력은 OECD 국가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나타났는데, 세계적으로 읽기 능력이 저하된다지만 한국이 유독 그 폭이 큰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효율을 중시하고 입시 위주의 읽기 교육이 주는 폐해뿐만 아니라, 유튜브나 SNS와 같은 단문이나 동영상 위주의 정보 전달이 일상화되면서 생긴 현상입니다.
지능은 정상이지만 글씨가 분해되어 보여서 읽기가 불가능한 질병을 난독증이라고 합니다. 글씨는 보이지만 뜻을 해석하지 못해 읽기가 어려운 현상이 온 사회에 번졌으니 지금의 현상은 '난독사회'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현실로 다가온 문해력 저하
그 동안 MZ 세대들의 문해력 저하를 사회문제 반, 놀림거리 반으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성인들의 읽기 능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졌습니다.
한번은 친구와 고깃집에서 식사를 하다가 주식투자 얘기가 나왔습니다. 옆에서 고기를 구워주던 20대로 보이는 직원이 자신도 주식투자를 한다며 조언을 구했습니다. 제가 투자 고수는 아니지만, 상황을 들어보고 관련 책 30-40권 정도 읽어보라 권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책 읽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했습니다.
이미 30% 가까이 손실이 났고, 적지 않은 돈이 걸린 일임에도 불구하고, 책값이나 내용의 문제가 아닌 '읽는 행위' 자체가 장애물이라는 사실은 문해력 저하가 얼마나 현실적인 문제인지 보여주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 '읽는 능력'이 부의 지도를 바꾼다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인쇄술이 보편화 되기 이전에는 책이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문맹인 신자들을 위한 시각적 성경이었던 것처럼, 이제는 영상이 그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정보통신 혁명을 통해 홍수처럼 오고가는 정보가 일상이 된 것은 불과 반세기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말에서 글로, 책에서 동영상으로 바뀌는 거대한 흐름을 막기는 어렵습니다.
문해력 저하 현상이 아쉬우면서, 동시에 기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글을 많이 본다고 해서 말을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생각만 해도 동영상이 나오는 시대가 온다고 해서 글이 필요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다양한 수단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정보 전달과 이해를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 어떤 수단을 없애는 것은 스스로의 경쟁력을 덜어내는 일이 될 것입니다.
명품이 된 정교한 사고
산업혁명 이전에는 실을 뽑고 천을 짜서 옷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손으로 했습니다. 속도는 느려도 사람의 생각이 온전히 반영된 옷이 나왔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가 그 일을 대체하며 어마어마한 속도로 옷을 만들었지만, 디자인은 단순해졌습니다. 사람들은 기계의 생산성에 자신의 취향을 맞추는 쪽을 택했고, 어느새 정교한 수제품은 명품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읽기'와 '쓰기'도 이와 같을지 모릅니다. 아무리 긴 글도 세 줄 요약이 가능하고, 한 줄 명령어로 그럴듯한 보고서가 나옵니다. 하지만 이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결론을 도출하기까지 저자가 쌓아 올린 수많은 사례와 논리의 연결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결론만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공지능이 내놓은 결론을 비판 없이 수용하게 될 위험으로 이어집니다.
부와 기회의 새로운 분기점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읽기 능력 훈련이 앞으로는 학습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의 핵심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짧은 영상과 인공지능이 내놓은 결론에만 익숙해져 이를 소비하는 사람과,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논리 체계를 이해하는 읽기 능력을 갖춘 사람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전자는 인공지능이 만든 결과물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계층에 머물 것입니다. 반면 후자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증하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독창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자'이자 '선도자'가 될 것입니다. 부와 기회가 어디로 향할지는 명확하며, 그 시작은 바로 읽기 능력에서 갈라질 것입니다.
그 시작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의식적으로 시간을 내어 조금씩이라도 책을 읽어내는 습관, 요약된 영상을 보더라도 글을 통해 맥락을 이해하려는 작은 노력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인공지능 시대에 읽기를 더욱 중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회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MBTI에서 에겐·테토까지, 그리고 사주팔자: 성격 분류의 새로운 흐름 (0) | 2025.06.01 |
---|---|
가장 보편적 예술로서의 사진 (1) | 2025.06.01 |
휴전국가인 한국, 세금체계도 그렇습니다 (0) | 2025.05.14 |
국민건강보험의 종말 (4) - 의약품 관세의 의미 (1) | 2025.05.07 |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사회 (0) | 2025.04.28 |
한의사입니다. 근데 그냥 침만 놓는 사람 아닙니다. 한의학부터 사회 꼬집기, 경제·경영 및 기술까지— 세상이 던지는 말들에 한 마디씩 반사해봅니다. 오신 모든 분들,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