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약을 처방할 때는 구성하는 개별 한약재의 특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에 대한 학문을 본초학(本草學)이라고 합니다. 효능주치로 대표되는 약에 대한 설명이 존재하지만 최근 연구결과들을 보면 과연 한약이 특정 질병에 특이하게 작용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한약은 항산화, 항염증, 면역조절 효과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개별 성분들이 기존에 알려진 효능을 일부 설명하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이전 서적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은 효과가 실험을 통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는 실험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한의학의 여러 유파들의 존재에서도 나타납니다. 같은 약재에 대해서도 다양한 효능을 이야기 합니다. 다른 약재에 대해서도 같은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어느 학파에서는 부자(附子)의 사용을 꺼리지만 다른 학파에서는 부자를 많이 쓰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사상의학입니다. 사상의학은 체질별로 사용하는 약재가 겹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체질의 약을 먹어도 효과가 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한약이 특정 질환을 타겟으로 하는 지, 아니면 몸 전체의 항상성을 제고하면서 효능을 나타내는지 고민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한약재를 해석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의학입문의 약성가를 필두로 최근 연구결과를 참고하여 약성을 파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최근에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기미라고 하는, 약의 성질과 맛입니다. 이는 한의약의 역사 속에서도 흐름이 계속 바뀌어 왔습니다.
진한시기의 상한론은 방제학의 원류라고 할 만큼 많은 처방의 모태가 됩니다. 여기서 주로 사용하는 약재들은 맵고 따뜻(辛溫)하거나 쓰고 차가운(苦寒) 약재들입니다. 계지, 마황, 반하가 전자에 해당되고 대황, 황금, 황련 등이 후자에 해당됩니다. 달면서 따뜻하거나 차가운 약재, 시큼한 맛의 약재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용빈도에서는 적은 편입니다. 그래도 상당히 골고루 약의 맛과 성질을 활용하였습니다.
시대가 지나 송, 원, 명 시기로 오면 상한론의 처방들을 사용하면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인식합니다. 맵고 따뜻한 약재와 쓰고 차가운 약재가 진액을 소모시키는 부작용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맵고 따뜻한 약재들의 대체제가 개발됩니다. 강활, 독활 등이 계지와 마황을 대신하여 다용되고, 달고 따뜻한 성질의 약의 활용방법이 연구됩니다. 이동원의 내상비위론을 바탕으로 상한론에서 부족했던 비위계통의 약물들의 활용이 급격하게 증가합니다. 쓰고 차가운 약재들의 사용은 줄어듭니다. 상한론에서 빈번하게 쓰이던 시호(柴胡)가 이 시기에는 소요산 등에서 제한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경악전서에서 달고 따뜻한 약인 숙지황의 활용이 극대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용법이 집대성된 것이 동의보감입니다.
청나라 시기로 오면서 쓰고 차가운 약을 대체할 방법을 찾게 됩니다. 임증지남의안을 보면 차가운 약의 활용이 증가합니다. 이는 청나라 궁정 의료기록에서도 나타납니다. 온병학설 이전과 이후의 약물 구성이 확연히 달라집니다. 금은화, 맥문동, 의이인과 같은 기존의 달고 차가운 약물의 적응증이 확대되고 사용빈도가 증가하였으며 노근, 석곡, 옥죽 등 기존에는 거의 쓰이지 않던 약재들이 신약처럼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기존의 연구성과들도 활용됩니다만 발열을 제어하는 부분에서는 상당부분 달고 차가운 약재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됩니다.
참고로 중의학의 처방을 보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주로 쓰는 처방과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약재의 갯수가 많고, 잘 쓰지 않는 약재들이 많습니다. 약재의 갯수가 많은 것은 정책적인 부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잘 쓰지 않는 약재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온병처방과 중서의 회통에서 유래되었다고 보시면 무리가 없습니다.
그 동안 약성의 주축이 매운 맛, 쓴 맛, 단 맛, 그리고 차고 따뜻한 것이라고 하면 다른 오미 중 하나인 시큼한 맛과 짠맛은 어떨까요? 많은 연구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시큼한 맛의 약재 중 많이 쓰는 것은 작약, 오미자, 산수유 정도이고 짠맛은 녹용이 대표적이지만 이런 약들일 수록 기존 논리 체계에서 다 품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약의 구성성분으로 약성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생물활성을 나타날 만큼 많은 양의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성분을 분획한다고 해서 모든 약성을 대표하지도 않습니다. 지표물질이 효능물질이 아닌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약성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직 저의 가설단계지만 항산화, 항염증, 면역조절 효능을 가진 약재 중에서 오미로 대표되는 다당체의 특성으로 한약의 약성을 설명할 수 있는 단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부 연구에서 한약이 항산화 효과는 공통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보음약은 면역조절, 보양약은 사용 에너지 증가 효과를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청열약의 항염증 효과야 워낙 유명하구요.
우리 몸은 복잡한 기전을 가지고 있고, 한약도 다양한 성분이 작용합니다. 장내세균 이전에는 설명하기 어려웠던 한약의 효능들이 지금은 일부 설명되는 것처럼, 한약의 약성을 설명하려면 새로운 이론 체계가 필요할 수도 있고, 기존의 이론에서 주목 받지 못했던 부분이나 아예 새롭게 이론을 짜야 할수도 있습니다. 기나긴 과정이겠지만 지금의 언어로 약성을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본 글은 이재철연구소에서 2020년 10월 15일에 간행한 글을 재게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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