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은 과학적으로 규명될 수 있는 것인가?
바꿔말해, 한약의 효능은 과학적으로 기전이 명확하게 밝혀질 것인가?
90년대 한약분쟁에서부터 한세대가 바뀌는 30여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하지 않다.
침이 처음 미국과 유럽에 소개되었을 때 미신이라고 치부하던 인식이 최근 30년 내에 MRI 등 다양한 연구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통증을 치료하는 유효한 수단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한약은 침보다는 사정이 나았던 지 일제강점기에도 경성제대에서는 한약이 꾸준히 연구되고 있었다. 한계도 명확한 편이다.
짚어두고 가야할 것은, 의료는 유효성과 안전성이 우선이라는 점이다. 환자가 어떤 증상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데 여기에 대해 어떻게 하니 낫고, 부작용도 많지 않더라 하는, 매우 단순한 지식 구조가 의료의 기본이다.
의학은 이를 체계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다. 그 언어가 음양오행일 수도, 척추의 정렬일 수도, 생화학이나 분자생물학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론 체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한약은 한의학의 체계내에서는 기미론, 귀경 등으로 체계화되어 있다. 그 체계도 수천 년간 지난한 경험과 논의를 거쳐 나왔고, 중간중간 기존 이론을 극복 또는 폐기를 해가면서 발전해왔던 것이다.
생물학을 기준으로 지금의 과학적 연구를 통해 한약을 연구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시도인 것이다. 처음에는 한의학의 체계를 생물학적으로 이해해보려고 했었고, 그 과정에서 일부는 과학적인 당위성을 획득하고 일부는 거부당하고 상당수는 회색지대에 편입되어 있다. 대부분 이런 식이다.
'A 약재는 항산화, 항염증 효능이 있고 전통적으로 담음을 치료했는 데, 실제로 동물실험을 해보니 소화기의 점막 생성을 조절한다.'
여기까지 보면 A 약재의 한의학적 효능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으로 보인다.
연구를 하다 보니 기존 의서에서 언급되지 않은 새로운 A약재의 효능이 동물실험에서 나오기도 하고, 반대로 기존에는 매우 중요시되었던 효능들이 실험 연구단계에서는 도통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한약은 과학적인 체계로 들어갈 수 있을까? 일단 현재까지 알려진 지식으로는 부족하거나 적용이 어렵다. 한쪽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한약 자체의 특성이 그렇다.
한약은 수많은 물질의 결합체이다. 단일 물질로도 연구를 진행하기가 어려운데, 수많은 물질들이 작용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게다가 동일한 약재명이지만 전혀 다른 식물이나 동물들이 동일한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면 이 자체부터가 연구를 어렵게 한다.
무엇보다도 한약이 작용하는 기전을 밝히는 것이 현대 과학적인 연구방법으로는 접근이 어렵다. 한약은 상당수의 성분이 섬유질과 전분이고, 약용 성분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적다.
유효성분을 추출해 적절한 양을 설정해 약을 투여하는 방식은 한약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약량 자체가 1돈 4g을 기준으로 되어 있는 데, 같은 약재라도 성분 구성이 계절따라, 산지 따라 다른 현실에서 약물의 양은 정확한 수치라기보다는 이 범위에서 약의 용량을 결정하라는 가이드라인에 가깝고, 중국 약전에도 개별 약재의 용약 용량을 5~10g 이런 식으로 범위로 지정해놓았다.
거칠게 말해서 시대마다 다른 기준인 첩당 4g보다 약을 많이 넣느냐 적게 넣느냐가 용량을 정하는 주 관심사 인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한약의 기전은 이렇다. 수많은 약재 중에 항산화, 항염증, 항균 효과가 있는 약재들을 찾는다. 해당 효능은 한가지만 있어도 복용 시 몸이 좋아진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부작용이 적은 약재들은 좀 더 많이 쓰인다. 여기에 특정 증상과 질병에 효과가 있는 약재들이 추려진다. 즉 한약의 구조는 기본적인 인체 기능 증진+약재만의 특수 효능이 결합된 형태이다.
기본적인 인체 기능 증진도 일부는 항산화, 항염증 효과가 있는 수용성 섬유질의 효과라는 생각도 한다. 물론 그 안에서 세부적인 기전들이 밝혀질 수도 있다. 특정 성분이 특정 장내 세균의 성장을 유도해서 인체 대사에 영향을 미치는 식이다.
많은 연구들은 약재만의 특수 효능에 주목하고 이를 추출해 단일 성분으로 만들어 약으로 만들겠다는 시도가 대부분이다. 이 시도는 여전히 의미는 있지만 과연 이런 방법이 한약을 과학적으로 해석해 온전히 쓰는 방법인지는 의문이다.
양약도 이렇게 복용자체가 수명 연장 등 건강 상태를 전반적으로 개선하는 약이 없지는 않으나 일부일 뿐이다. 그나마도 합성약보다는 생물자원에서 추출한 약재들이 이런 특성이 강하다. 당뇨병 치료제인 메트포민(Metformin)이나 아스피린이 대표적이다.
이러다 보니 한약의 효능을 잘 보고 있으면 큰 약물 범주로 묶이고 나면 그 안에서는 세세한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냥 효능이 좋다 안 좋다에 가까운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부작용을 대응하기 위해 1차 약물에서 2차 약물로 변경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전통적인 약물 분류체계를 무시하고도 치료효과가 나기도 한다.
사상의학의 처방이 다른 체질에도 꽤 잘 듣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사상의학만큼 기미론에 근거해 체질별로 약물의 특성 분류를 엄격하게 구성한 의학체계가 드문데, 정작 사상의학을 하는 사람들도 다른 체질 약을 먹어도 낫는다고 하는 것을 보면 한약이 생물학 기반의 과학 분류가 적절한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한약의 기전이 해석이 되려면 장내세균, 뇌신경 이론 등 현재 진행형인 학문 뿐만 아니라 지금은 개념조차 안 잡힌 새로운 학설이 등장해야 할 수도 있다. 욕심같지만, 한약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발견이 있길 바랄 뿐이다.
한약은 그 자체로서 한의학 체계 내에 완결되어 있다. 이 체계의 발전은 그 나름대로 진행이 되어야 하고, 생물학 기반의 과학적인 해석 또한 의료의 향상과 특히 산업영역으로 진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과정에서 두가지 체계는 상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약 기전의 상당수가 이 시대의 과학적인 언어로 풀어 나오기를 나는 누구보다도 바란다. 이 과정 속에서 기존 한의학 이론의 상당수가 폐기될 우려도 있다.
이 방향을 지지하는 것은 한의약의 우수성이 과학의 이름으로 아름답게 밝혀질 것이라는 기대가 아니다. 보편적인 과학으로 해석되는 한약은 곧바로 전 인류에게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ICD-10에 중의학의 진단체계가 들어갔을 때 일부 학자들은 천산갑 등 희귀 동식물의 절멸을 걱정을 했다. 이를 좀 더 확장하면 ICD에 들어가는 것은 의학체계를 인정받는 것이고 이는 곧 활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 과연 전통적인 한약은 전 인류의 질병 치료에 대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이 단계까지 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지만, 화학 합성으로 저렴한 가격에 일정한 품질의 약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은 한약이 아직까지는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분명한 한계이기도 하다.
전 인류가 아플 때 황기를 먹어야 한다면, 얼마나 많은 땅이 황기 재배지로 바뀌어야 할 것인가? 그런 모습이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는 아니더라도 많은 약들이 과학적인 해석 범위내에 들어온다면 기존에 이해되던 특성을 잃더라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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