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은 영어로 Korean medicine이라 불린다. 중의학은 Traditional Chinese medicine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차이가 나지만 한의학의 근간은 중국에서 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반대로 분명히 차이를 드러내는 분야도 있다.
한의사들이 보는 대부분의 책들은 중국에서 나왔거나 동의보감과 같이 그 이론들을 다시 집대성하고 정리한 책들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일부에서는 사암침법, 사상의학을 한의학만의 고유한 이론과 임상 체계라고 반박한다.
사상의학은 중국에서 생기지도 않았고 중의학에서는 매우 생소한 개념이다. 일단 체질의학자체가 낯선 개념이다. 9종 체질이 있긴 하나 중국 정부가 의료체계를 개편하면서 치미병을 포함하는 예방개념을 도입하면서 기존 변증 체계를 체질로 확장한 것이 현재 중국에서 쓰이는 9종 체질이다.
이에 비해 사상의학은 한의사 중 20% 정도가 임상에서 쓰고 있다. 적은 숫자는 아니다. 사상체질을 쓰지 않더라도 체질 이야기는 환자와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주제인 것은 분명하다. 사암침법도 오행침법을 바탕으로 확장을 했고 중국에서는 안 쓰고 있으니 고유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중국에서는 무척 중요한 개념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도외시되는 이론이 있을까?
온병(溫病)이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온병을 한의과대학에서 배우지 않는 것도 아닌 데, 온병의 활용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거기에 대해 큰 반론이 없는 것 같은데도 임상에서의 관심은 영 신통치 않다.
되려 상한론이면 만능이라는 임상가도 많으며, 업데이트가 400년 넘게 안 된 동의보감을 끊임없이 학습하면서 깨우치지 못한 것이 없나 살피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도 저도 아니면 사상의학이다. 온병은 찬밥도 이런 찬밥이 없다.
아마도 온병 처방에 대한 선입견, 이론체계의 난삽함 등이 이런 상황을 불렀을 것이다. 상한론만 해도 원전을 시작으로 기라성 같은 의가들이 상한론에 대해 연구를 하고 주석을 달았다. 주석을 달지 않아도 상한론에 입각해 새로운 처방을 연구하고 만들었고 남긴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에 비해 온병은 기껏해야 2-300년 전에서야 별도의 이름을 달고 분리가 시작되었다. 온병이라는 이름은 한참 오래전에 있었지만 그 실체를 만드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역사적인 배경도 있다. 명나라 때까지는 조선과의 교류가 있어서 의서들이 수입되었다. 그 사상을 받아들여서 체화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청나라 시기는 소위 중화의 정수가 조선에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모든 청나라의 문화를 배척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문화 수준이 낮은 오랑캐들이 힘으로 중원을 차지했다는 인식에 양대 호란을 거치면서 적개심도 커졌으니 이해가 될 만도 하다. 사상의 교류 전체를 막는 풍조가 있다 보니 실용적인 의학도 같이 막혔던 것 같다.
동의보감 이후로 사상의학까지는 동의보감의 재해석에 조선의 의가와 학자들이 시간을 쏟은 것도 사실이다. 제중신편이나 방약합편처럼 동의보감의 요약본을 만드는 데 애를 쓴 것이 대표적이다.
물론 청나라도 온병학이 보급되기 직전까지는 기존의 처방을 썼다. 청궁의안이라고 청나라 시기 역대 어의들의 처방을 모은 자료를 보면 잘 나타난다. 청나라 초기까지는 동의보감에도 나오는 익숙한 처방들이 등장하다가 온병학이 보급된 이후부터는 처방이 상당 부분 교체되고 바뀐다. 황궁의 생활이나 환경이 크게 바뀐 것이 없음에도 주로 쓰는 이론체계가 바뀌면서 보수적으로 처방을 운용하는 황궁에서도 처방 체계가 바뀐 것이다.
온병을 발전시킨 의가들은 여럿이 있다. 온병조변을 쓴 오국통이 대표적이다.
나는 섭천사를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오국통보다 한 세대 앞서 살다 간 의가로 본인이 직접 쓴 저작은 거의 없다. 여러 명의가 그렇듯이 환자 보기 바빠서 책 쓸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개인이 쓴 의서가 정밀할수록 해당 의가의 임상실력은 명성과는 부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실력 있는 임상가는 이래저래 바쁘고 무엇인가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받아 적은 내용이 전해 지거나 의안이 전해질뿐이다.
물론 깊이 있는 연구를 해서 그게 의미 있는 처방이 될 수도 있지만 송나라 때 황제의 명으로 각 의가들의 비방을 모은 태평혜민화제국방의 처방이 동의보감을 거쳐 첩약으로, 제제로도 잘 쓰이는 것을 보면 연구 이전에 잘 낫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신약이 의도치 못한 부작용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섭천사가 어떤 처방을 썼는지 잘 남아있는 것이 임증지남의안이다. 제자들이 섭천사 사후 처방집을 모아서 편찬한 이 책은 당대에도 명성이 높았고 여러 의사들이 앞다투어 구해 읽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임증지남의안은 친절한 책은 아니다. 의안이니 당연히 체계적으로 이론이 정리되어 있지도 않다. 환자의 상황을 읽는 사람이 재구성해가면서 써야 한다. 물론 계속 읽다 보면 약 쓰는 법칙이 살포시 얼굴을 비친다.
임증지남의안을 보면 온병의 모습과 진가를 알 수 있고 그동안의 편견을 깰 수 있다.
온병은 상한론을 배제하거나 독립적이지 않다. 온병조변 처방의 2/3가 상한론과 금궤요략에서 나온 것이다. 오히려 상한론을 존중하면서 그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온병조변에 계지탕이 먼저 등장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임증지남의안도 상한론의 처방이 상당수가 쓰인다. 사심탕, 산조인, 복맥탕, 건중탕 등은 법(法)이라는 글자를 써가면서 상한론을 존중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동시에 상한론의 처방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려고 했다. 대표적인 것이 진액과 음액의 보존이다.
상한론의 처방들은 진액 보존보다는 사기를 내쫓는 데 중점을 뒀다. 강제로 발한시키거나 위장관의 사기를 설사로 내보내는 것들이다. 온병에서는 간(肝)의 음액을 공격한다고 사용을 꺼렸던 시호제도 많이 사용한다.
급성 발열질환은 지금도 쉽지 않다. 수액과 항생제가 등장하면서 좋아진 것이 이 정도다. 하물며 2천여 년 전에는 바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가지고 있는 약재로 효과를 봐야 하니 진액보다 사람을 구하는 데 집중했을 것이고 그 결과가 상한론의 상세한 관찰과 처방, 그리고 예후 판단이다. 죽엽석고탕처럼 진액 보존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치료 이후에 정리단계에서 활용된다.
후세로 갈수록 상한론의 처방의 부작용을 줄이는 데 노력을 한다. 마황과 계지가 강활, 독활 등으로 대체된다.
같은 신온지제지만 발한이나 조열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면서 효과를 내고자 한 것이다. 시호와 대황도 후세로 갈수록 쓰임이 많이 줄어든다. 후세방에서 시호는 보중익기탕이나 소요산에 조금씩 들어가는 정도로 바뀐다.
그 대신 허로(虛勞)에 대응하는 처방들이 늘어난다. 인삼, 황기, 백출, 숙지황 등 상한론과 금궤요략에는 있긴 했으나 그 개념만 제시되어 있던 처방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온성 약재의 보양과 보음 처방이 선호되었고 그 결정판이 경악전서다.
청나라 시기가 되면서 강남이 크게 개발되고 기존의 처방으로 듣지 않는 환자들이 발생한다. 이때 상한론의 정신을 이어받으면서 상한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된다. 후세방은 모듈단위로 처방이 구성된다. 약재 하나하나의 성질보다는 보기, 보혈, 치담, 거어제의 기본 처방을 합방하는 개념이 강했다. 심지어 가감을 기본방 단위로 한다. 이진탕에 혈허가 있으면 사물탕을 가미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약재의 개수가 많아지고 부작용을 줄어들었지만 약효도 완만한 상태가 된다. 상한론은 적은 약재수, 개별 용량은 많고 약재의 특성을 하나하나 살려서 처방한다. 계지탕에 계지를 더 넣으면 계지가계탕이 되는 것이 상한론이다.
온병이 체계화되던 청나라 시기는 새로운 약재가 여럿 발견되고 기존 약재의 적응증도 확장되어 있었다. 섭천사는 이러한 배경에서 상한론의 정신, 즉 환자의 상태에 맞는 하나하나 약재를 선별해서 처방을 구성했던 것이다. 상한론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온병은 상한론의 어떤 부분을 극복하려 한 것일까?
앞서 말했듯이 상한론이 진액의 보존에 약점을 보였기 때문에 진액 보존을 고려해서 약을 처방하는 것이다. 발열 처리를 보면 알 수 있다. 기존에 발열을 처리하는 방법은 발한을 동반한 해표(解表), 사하(瀉下)이고 주로 신온지제(辛溫之劑)나 고한지제(苦寒之劑)가 쓰였다.
문제는 이런 방법이 진액을 소모시키는 데 있다. 진액은 단순한 물이 아니다. 인체에서 음식과 물을 소화시키고 에너지를 들여 만든 것이다. 진액을 소모시키는 치료법은 잠깐 동안은 효과가 날지 모르지만 장기 투여를 하게 되면 오히려 호전이 지체되거나 증상이 악화되고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을 임상에서 경험할 수 있다. 특히 만성병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이 때문에 온병에서는 신온지제와 고한지제를 거의 쓰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시호, 황금, 대황, 마황, 강활, 독활 등이다. 쓰더라도 포제를 하고 소량을 사용한다. 이 자리를 금은화, 의이인, 석곡, 맥문동 등 감한지제(甘寒之劑)를 대용하게 된다.
참고로 시호는 천련자로 대용하나 천련자의 독성이나 독특한 취기(臭氣)로 인해 임상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첨언하자면 보중익기탕의 변천사에도 이런 개념이 나타난다. 이동원의 원방은 황기와 감초가 5푼, 나머지 약재는 3푼으로 동량이다. 시호가 꽤 많이 들어간다. 감온제열(甘溫除熱)로 복잡하게 설명할 게 아니라 시호의 청열 작용을 각종 허증의 발열 처리에 쓰는 것이다.
이후 동의보감에서는 시호의 양 자체가 크게 줄어들고 그나마도 포제를 통해 약성을 많이 완화시킨다. 시호의 부작용에 대한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온병학은 전염병 전문 이론이라는 인식도 있다. 상한론은 내과질환까지 쓸 수 있다고 인식이 확장된 반면에 온병은 처음부터 전염병 전문 이론이 아니었음에도 오히려 전염병에만 쓰인다는 인식이 있는 게 신기하다.
온병이 상한론을 계승 및 극복하면서 발전한 학문이니만큼 전염병과 내과질환에 대해서는 같은 기준을 가져야 한다. 다만, 인식이 이렇게 된 것에는 두 가지 정도 짚이는 곳이 있다.
첫째, 최근 50여 년간 전염병이 우리 생활에서 멀어졌었다. COVID-19로 인해 이 말이 무색해지긴 했지만, 이에 대한 전 세계적인 대응을 보면 되려 우리가 그동안 전염병에 얼마나 무감각했었는 지를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천연두가 1977년에 종식이 되었고, 그 이후 장티푸스, 콜레라 등 전염병은 개발도상국, 다시 말해 못 사는 것을 증명하는 질환들로 남았었다. 오죽하면 비만과 암 같은 질환이 전염병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정도로 전통적인 전염병은 우리 손을 떠나 있었다.
그 이전에는 전염병이 일상이었다. 당연히 각 지역의 의학체계는 이에 대응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상한론이 그랬고 온병도 그랬다. 그러나 전염병이 모든 병이 아닌 것처럼 그 당시에도 우리가 앓는 제반 질병에 대한 인식과 치료는 있었고 그에 대한 기록도 풍부하다.
이론적으로도 온병은 위음(胃陰)학설, 낙맥병, 기경병 등 내과까지 확장할 수 있는 체계가 있다. 상한론이 엄밀히 말하면 전염병을 체계적이고 때로는 기계적일 정도로 대응하는 엄격한 체계가 중심임에도 내과로 확장한 것을 생각하면 온병학이 불합리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둘째, 온병자체에 대한 국내 한의학의 인식이다. 중국 남방의 습하고 더운 날씨가 우리나라 하고 맞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물론 양자강 이남 지역의 기후가 우리나라하고 똑같지는 않다. 그러나 온병에서 중시하는 기후요소는 우리나라도 점점 아열대 기후로 가면서 많이 갖추고 있다. 장마 대신 우기와 건기, 높아지는 평균 온도가 대표적이다. 이미 바다에서는 열대어종이 잡히고 있고 냉온대에서 자라야 할 작물들의 북방한계선이 높아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무엇보다도 온병이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의미가 있는 것은, 지난 수천 년간의 역사에서 지금 현대인들과 가장 가까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치료한 점이다.
근 100년과 그 이전의 가장 큰 차이는 하루에 얼마나 의식주의 마련을 위해 투입한 시간이다. 옷을 짓고 음식을 만들고 집을 짓는 일이 모두 사람이 직접 해야 했다. 자본이 형성되고 인구가 집중되면서 의식주를 자체를 마련하기 위해 직접 투입하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다. 최근 100년이 인류 역사에서 드문 시기라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재 우리의 삶과 가장 가까우면서 한의약으로 치료한 기록이 남은 곳이 바로 온병이 태동하고 발달했던 양자강 이남이다. 자본과 인력이 몰리고,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의식주의 직접 마련이 아닌 현대인들과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임증지남의안을 보면 과식과 과음을 하거나 오랫동안 책을 봐서 생긴 병을 치료하거나 비만인데 기허로 인해 생긴 질환, 분노와 우울같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을 치료한 기록들의 숫자도 많고 다양하게 있다. 요즘 유병률이 높아지고 있는 역류성 식도염과 유사한 증상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하는 내용도 있다.
환자들의 수명도 길어져서 60대 이상의 노인들을 치료한 의안도 상당수 존재한다. 육체노동, 기아, 보온 불량 등을 대응하면서 발달한 기존의 의학보다는 좀 더 범위가 넓은 온병을 활용하면 그만큼 한의약 치료의 무기도 많아지는 것이다.
물론 온병학의 한계도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상대적으로 신생 이론이다 보니 상한론만큼 체계적인 해석론이 없는 것이다.
온병학의 고유 처방은 무엇인가 물어보면 은교산 정도가 대표적이다. 사삼맥문동탕, 삼갑복맥탕 정도면 온병을 그래도 살펴본 사람들이다. 온병학의 한계라기보다는 온병이 가지고 있는 고유 변증 체계가 좀 더 다듬어지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온병조변이 중요한 것은, 일부 의가들의 학문이었던 온병을 최대한 체계적으로 변증시치의 틀 안에 넣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역전심포, 위기영혈 등의 개념을 정립한 것만 해도 온병조변의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할 것이다.
외감의 개념을 강조하다 보니 수십 가지의 외감의 형태와 병인을 가르는 데 힘을 많이 쓴 것은 아쉬울 뿐이다. 상한론이 인체의 증상으로 줄기로 삼아 어떤 형태라도 한사(寒邪)라면 인체가 변화하는 현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정신을 온병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온병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맥문동과 복령, 백출의 처방 활용 (0) | 2021.10.25 |
---|---|
보중익기탕의 임상 활용 (0) | 2021.10.23 |
녹용의 처방 활용 (0) | 2021.10.20 |
시대가 변하면 약의 기미도 달라집니다. (0) | 2021.10.20 |
온병에 대한 오해 (0) | 2021.10.20 |
한의학(특히 온병학), 사회문제, 경제경영 분야에 대해 글을 쓰는 한의사입니다.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펼쳐놓는 공간입니다.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