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병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몇 가지 비슷한 궁금증들이 있습니다.
물론 온병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일부 질문들은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온병은 전염병 전문 이론이다?
A. 아닙니다. 이전 글에도 설명드렸지만 온병은 전염병에 대응하면서 태동하긴 했으나 이론 체계가 구축되고 나서는 내상, 잡병, 부인, 소아 등 다양한 분야에 쓰입니다. 섭천사의 임증지남의안을 보면 전염병에 대한 기술이 있으나 그 외는 불면, 허로, 조잡 등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질환군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위기영혈, 역전심포 등 전염병 관련 이론 체계가 익숙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음이론, 기경병, 락병 등은 내상에도 두루 쓰일 수 있는 이론체계입니다.
Q. 온병은 우리나라 현실에 안 맞다?
A. 지구 평균기온의 변곡점에서 새로운 이론들이 나옵니다.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온보파,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주화파가 나타났습니다. 온병도 기온의 변화와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평균기온이 점차 상승하면서 주위 바다에서 열대어종들이 잡히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특히 온병이 태동한 중국 강남 지방의 생활상은 현대인들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적은 활동량, 정신적인 스트레스, 과식으로 인한 소화기 질환, 야간 활동 등으로 고생한 환자들을 치료한 의안이 꽤 많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온병이 우리나라 현실에서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온병은 구하기 어려운 약재들이 많다?
A. 우리나라에서는 안 쓰는 약재들이 있습니다만 많지는 않습니다. 대부분 약재들도 우리나라 약전에 있습니다.
시장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은 있습니다. 특히 현대 중의학에서 온병학자들이 사용하는 약을 보면 현란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정작 대표적인 온병 저작에서는 상한론처럼 단순하고 간결한 처방들이 대부분입니다. 임증지남의안의 처방은 대다수가 6-8개 약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재 중국에서 약재 가짓수가 많은 것은 정책적인 측면이 큽니다. 그리고 주로 쓰는 약재들도 우리에게 익숙한 약재들이 많습니다. 제가 온병처방을 쓰면서 사용량이 많아진 것이 맥문동, 석곡, 옥죽, 복령, 금은화, 숙지황 정도인데, 다들 익숙한 약재입니다.
Q. 온병은 상한론과 대척점에 있는 학문이다?
A. 온병이 이름과 이론체계가 긴 시간을 두고 나와서 생긴 오해라고 봅니다.
온병이라는 이름은 이미 내경에 등장하나 이론체계는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에 본격적으로 구성되기 시작합니다.
개념은 구분되어 있었으나 실제적인 발전은 최근에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온병은 기존 의학 이론을 포함 또는 극복하면서 활용되었습니다.
온병조변에서 계지탕과 승기탕이 쓰이고, 임증지남의안에서 귀비탕이 자주 쓰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섭천사는 음액을 공격한다고 시호의 사용을 꺼렸지만 보중익기탕, 소요산의 역할도 인지하고 있었으며 사용을 했던 의안들이 있습니다.
Q. 온병은 위기영혈 체계로만 구성되어 있다?
A. 상한학파에서 온병학을 공격할 때 이론체계의 난삽함을 듭니다. 위기영혈 이론이 대표적이지만, 이 이론만으로는 내상잡병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부수적으로 달려있는 이론도 다양합니다.
그에 비해 상한론은 매우 정교하면서 규칙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이론체계입니다. 전염병과 발열이라는 생명이 경각에 달려있는 상황에서는 한치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보입니다. 그러나 내상잡병을 다루는 금궤요략으로 가면 개별 질환들에 대한 대응이 위주입니다. 상한론과 같은 일관적인 이론 체계 보다는 개별적인 처방이 위주입니다.
온병은 기존 체계를 포함 또는 극복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온병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상한을 중시합니다. 그리고 상한론 이후 완성되어온 이론체계도 온병이론 하에서 활용합니다. 다만 이를 정리할 수 있는 체계가 상한론만큼 만들어지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Q. 온병 개념으로만 진료할 수 있다?
A. 아닙니다. 어떤 하나의 이론체계만으로 진료한다는 자체가 위험합니다.
의학은 대표적인 실용 학문입니다. 복잡한 인체 현상을 이해하는 도구로서 이론체계가 구성되어 있는 것이지, 이론체계에 매몰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되어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학자들이 이론체계를 구성했지만 정작 현재 자주 쓰이는 처방들 상당수가 송나라 때 황제의 명으로 비방을 모아 만든 화제국방에서 나온 것을 보면 꿩 잡는 게 매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온병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론체계는 실제 활용에서 얼마나 잘 들어맞고 쓰임이 용이한지에 따라 평가가 이뤄집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온병은 기존 이론을 포함 및 극복하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제가 바라보는 온병은 상한론의 이론 체계와 그 이후 형성된 내상잡병 대응체계를 근간으로 발열을 달고 차가운 약으로 처리하고, 새롭게 알게 된 본초의 효능이 적용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본 글은 이재철연구소에서 2020년 12월 21일에 간행한 글을 재게시했습니다.]
'온병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중익기탕의 임상 활용 (0) | 2021.10.23 |
---|---|
온병을 한국 한의약 임상에 도입해야 할 때 (0) | 2021.10.21 |
녹용의 처방 활용 (0) | 2021.10.20 |
시대가 변하면 약의 기미도 달라집니다. (0) | 2021.10.20 |
한약의 과학적 연구 의의 (0) | 2021.07.13 |
한의학(특히 온병학), 사회문제, 경제경영 분야에 대해 글을 쓰는 한의사입니다.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펼쳐놓는 공간입니다.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