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기능식품(이하 건기식)은 많은 한의사들에게 애증의 존재이다.
최근 30년간 한의원 보약의 지위를 뺏어간 원흉이지만 상당수의 한약재가 건기식의 형태로 시장에 유통되면서 되려 한약에 대한 친밀감은 높아진 양면성이 있다. 편의점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숙취해소환도 산사, 갈화, 창출과 같이 한약재가 들어간 제품이다.
한의약은 대부분의 역사 기간 동안 양반이나 부유층들의 전유물이었다. 사극에서는 아프면 '의원'을 불러다 진료를 보지만 높은 지위에 있는 양반이 아니면 의원을 보기도 힘들었고 대부분 사람들은 동네에 의학서적 한두권 익힌 지식인들에게 약을 처방받거나 침을 맞던 것이 현실이었다.
지금 약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경옥고 같은 약은 조선시대에는 임금이나 편하게 먹고 양반들마저도 귀한 약이라고 아껴서 먹었던 기록이 있다. 지금은 돈만 있으면 복용할 수 있는 공진단도 20년 전 학부시절에는 사향을 못 구해서 없는 약 취급받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만큼,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시대만큼 한의약이 사람들의 생활 속에 들어온 적은 없을 것이다.
한의원의 보약이 급격하게 줄어든 것은 건기식이 지대한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홍삼을 위시한 건기식 시장이 조 단위인데, 적어도 1조 정도는 한의원 보약에서 뺏어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의원에서 보약이 줄어든 것은 기본적으로 한의사의 숫자가 누적되면서 증가한 것이 크다. 한의사는 정년이 없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은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데 새로 배출되는 인원이 그대로 시장에 투입된다. 환자수는 정해져 있고, 요즘과 같이 인구와 경제성장의 정체기로 접어든 시점에는 더더욱 그 타격이 크다.
10년 전에 잘 나가시던 원장님은 20년 전의 원장님을, 그 원장님은 30년 전에 한의원을 하시던 원장님을 부러워한다. 30년 전에는 5년 만에 건물을 샀는 데, 20년 전에는 10년이 걸렸고 10년 전에는 건물 한 칸이면 다행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다. 지금 졸업하는 한의사들은 모두 생각지도 못할 이야기들이다.
의료는 개인에게는 큰 일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일부이다. 사회의 변화 흐름에서 의료는 주동자가 아니라 피동자의 역할일 때가 더 많았다. 한의학이 근대시기 주류 의학에서 밀려난 것도 그렇고, 사회 체계의 변화 과정 속에서 같이 흘러간 경우들이다.
건기식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이다. 유명 스타들을 기용한 광고만 봐도 쉽게 느끼는 부분이다. 앞으로 신약은 더욱 까다로워지고 건기식도 이제는 일반 약에 근접한 품질을 요구받고 있다.
이와 달리 한의계는 보약이 잘 나갈 때 그 한계를 벗어던지고자 치료의학으로의 변화를 꾀했고, 그 성과들은 추나나 첩약의 보험 진입으로 어느 정도 입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만큼 건기식을 잡으려면 한의원의 틀 안에서는 어려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건기식은 있는 재료만 혼합해서 만들면 제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새로운 재료를 개발하려면 병원을 통해 연구가 필요하지만 이미 있는 재료를 혼합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제조사들이 시설과 재료를 가지고 있다. 제품 원료비와 마케팅에 투입할 수 있는 자본만 만족을 한다면 시장은 진입할 수 있다. 대부분의 의료기술이 정부의 규제, 학문적인 근거 등 자본 이외에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은 것에 비하면 상당히 진입장벽이 낮다고 할 수 있다.
건기식에 대해 한의사들은 두가지 길이 있다. 건기식에 손을 대면 그나마 있던 보약을 버리니까 하지 말자는 한약을 건기식에서 최대한 빼서 처방 범위로 넣자는 주의와, 적극적으로 건기식 시장에 참여하자는 주의이다. 당연히 가야 할 길은 후자이다.
전자는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약재가 예전에 시장에서 유통되던 시기와 지금을 비교하면 약재상을 제약회사로 변화시키고 각종 검사를 추가한 것이다. 큰 변화긴 하나 좀 더 좋은 건조 약재를 쓴다는 의미이다. 정말 의약품용 약재라고 하면 기미(氣味), 성분, 형태 등을 일정하게 공장에서 찍어 나온 것처럼 고르게 하는 과정들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약재들은 스마트팜을 통해 기미를 일정하게 맞추는 거나 방기와 같이 위험 약재들의 혼입이 우려된다면 추출물의 형태로 제약회사에서 판매를 한다거나 하는 방식이다.
태반을 그대로 말려쓰던 자하거와 같은 약재를 지금은 원료의약품으로 가공해서 쓰는 것처럼, 한의원에서 쓰는 약재들이 형태적으로, 질적으로 확실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고서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렵다.
hGMP와 같은 정부의 기준은 최소를 맞추는 것이지 최고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제약회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싼 약재가 아니면 영업을 영위하기 어렵다고 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가격과 상관없이 최상위 품질의 의약품용 한약재나 한약 가공품을 만들어서 국가에 값을 쳐달라고 하거나 적어도 우리 스스로 인정하지 못할 약재라면 쓰지 않는다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
건기식 시장은 거대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나라의 건기식 시장은 다른 나라와 달리 홍삼이 압도적인 1위다. 국부가 새 나가지도 않고 해외 수출도 할 수 있는 홍삼이 시장의 주요 품목이 다행이고 홍삼 때문에 한의약 시장이 위축된다는 점은 불행일 것이다.
홍삼도 한약의 범주이니 한약에 대한 친숙함은 이미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활용해서 한의약이라는 브랜드로 연결시키느냐다.
답은 한의사가 만드는 데 참여하고 건기식의 전문가로서 거듭나는 것이다. 이미 미국의 건기식 시장은 의사들의 이름을 빌려 나온 제품들이 일상화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그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지금 몇몇 제품이 보이기는 하나 한의사가 한약 기원의 건기식을 대다수 사람에게 각인시킨 제품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면 갈길이 멀다.
건기식 시장은 이미 한의사들이 대동단결한다고 해서 어찌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 주식 격언 중 '시장을 이기려고 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다. 꼭 주식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시장의 흐름을 읽고 그 흐름을 현실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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