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이 가장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못하는 대선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 정부의 실책에 대한 발전적 대안보다는 정권교체만 주장하는 야당 후보와, 이에 대해 현 정부의 발전적 계승을 주장하지 못한 채 국민들이 우려하는 정책을 쏟아내는 여당 후보의 모습은 아무리 대선이라고는 하지만 정치를 구성하는 정책과 권력 중 권력 추구의 속살만 드러나는 느낌입니다.
정치란 원래 이런 것인가 싶으면서도 소위 'G7'이라 불리는 민주주의 선진 국가의 정치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가 그 나라에 살지 않으니 잘 모를 수 있지만 각국 주요 신문 1면을 보면 우리나라처럼 정치면이 많은 것을 장악한 나라가 없는 것도 현실입니다. 대선이라고 하기에는 거의 아이돌 수준이 되어버린 정치인의 일거수일투족의 기사들이 불편한 부분입니다.
정치에 더 기대하실 게 있으십니까? 정치가 내 생활의 많은 것을 바꾼다고 생각하시는지요?
87년도 민주화 때는 정치가 많은 것을 결정하던 시대였습니다. 독재를 겪었으니 최고 권력자의 말한마디가 사람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이십여 년간 뼈저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직선제 개헌 이후 국민들은 대통령이 오래하는 것은 안 되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내가 직접 얼굴 보고 뽑겠다는 의지를 헌법에 반영시킵니다.
이렇게 30년이 지나갑니다. 그 사이에 사회는 매우 복잡해졌고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해야할 역할도 커졌습니다. 그 사이 정치 이외 사회, 경제, 문화 분야의 문제를 정치의 힘을 통해 많이 바꿔온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은 정치가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한정적이라는 것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백신을 구하라는 임무를 주면서 대기업 총수를 가석방하고 갖은 핑계를 댄 정부의 모습은 사법 정의를 외치고서 결국 그 중요한 힘을 자신의 무능을 가리기 위해 쓴 것입니다.
시비를 가리기 이전, 정부는 자신 스스로의 능력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선언을 한 것이기도 합니다. 정부예산이 있고 정부가 돈을 댄 연구원이 있는 데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정치 성향을 떠나 정부 능력의 한계가 분명해지는 사건이라고 저는 평가합니다.
이제 선택을 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이제 무엇을 이루는 수단이 될 수 있을까요?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를 추진하던 정부의 역할을 지금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정치체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쪽으로 바꿔야 합니다. 정치는 그 본질이 규제이지 촉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무엇을 촉진하겠다는 말은 그 촉진을 저해하는 규제를 풀겠다는 말입니다.
모든 법은 무엇을 하지 말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혹자는 폭력이라고도 합니다. 권력을 영어로 'POWER'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선진 7개국을 보면 국회는 양원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중한 입법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의원내각제거나 이원집정부제로 대통령 대신 집권당의 총수가 총리를 하거나 연임을 할 수 있는 대통령제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체제들은 무엇을 빨리 결정내리고자 하는 체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견제와 협상을 통해 신중한 정치행위를 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원제의 단임 대통령제인 우리나라의 경우 집권당이 과반을 넘기면 사실상 협상은 불가능하고, 단임제 대통령은 어차피 연임 못하는 거 무리를 해서라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 결과는 다들 아시는 데로 입니다.
정치인들이 무능하거나 욕심이 가득차서 정치 불안정이 보이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치체계가 규정하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선수만 바뀌었지 하는 일이 똑같다면 체계의 문제입니다.
양원제와 대통령 연임제로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양원제로 시작했습니다. 5.16 쿠데타로 단원제로 바뀐 후 복원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통일 이후 양원제를 하겠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지금 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역 균형 발전을 정치체계로 녹여야 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지역감정보다 수도권-비수도권의 격차가 더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수도권 쏠림 현상은 부동산 상승 뿐만 아니라 인프라 차이로 인한 각종 생활 수준의 차이를 영속화시킨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균형발전은 모든 정치인이 외치지만 국가의 정치체계에 반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보기 어렵습니다.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양원제가 필수입니다. 대한민국 내 지역균형발전도 제대로 못하는 마당에 빈민촌이나 다름없는 북한을 어떻게 끌어안고 발전시킬 수 있을까요? 현재와 미래의 필요를 위해서 바로 시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만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국회에 대한 높은 불신을 고려해 임기는 3년으로 바꿔야 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국민소환제 기다릴 것 없이 다음 선거에서 바꾸는 것입니다. 양원제는 여러 형태가 있겠지만 하원은 인구비례, 상원은 지역비례로 하되 과다대표, 과소대표를 막기 위해 대표수 상하한을 두면 될 것입니다.
대통령 연임제는 현재 5년 단임을 4년 연임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제왕적 대통령제를 가졌다고 하지만 중앙집권의 역사가 오래된 나라들은 대통령이 가진 권한이 작지 않습니다. 그 제왕적 권한을 단임이니 할 거 다 하고 가겠다는 데서 문제가 생기니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것보다는 4년 연임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속칭 '개헌론'이라고 하는 것은 여야 할 것 없이 그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꺼내는 순간 정치국면 타개라고 매도당하면서 서로 공격하다가 들어간 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국민들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순간입니다.
정치에 더 기대할 것이 있는가? 정치가 많은 것을 해결해 주는가?
정치가 내 먹고 사는 것을, 내 행복을, 내 편안한 노후를 누리는 데 도움이 되고, 그래서 내가 직접 선택해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고 정치인의 말 한마디에 많은 것이 달려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대로 가도 괜찮습니다.
정치가 많은 것을 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정치의 본질인 규제가 나를 옭아매는 것이 싫다면 정치체계는 안정을 지향해야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독재 정치는 정치의 안정을 가져다줍니다. 반대파가 없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 세월을 몇십 년간 겪기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정치의 안정이 아닌, 정치 체계의 개혁을 통해 정치 안정을 추구해야 할 때입니다. 대한민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화된 국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는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국민이 스스로 정치체계의 교체를 통해 민주 정치의 안정화를 이루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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