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약의 처방은 약재의 조합으로 결정된다.
개별 약재의 발견과 전파, 한의학 체계로의 편입 또한 많은 시간 소요와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진행된다. 이 과정 또한 중요하지만 몇몇 사람의 인력으로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 또 기존에 알려진 약재만 해도 상당히 다양하기 때문에 일선 임상현장에서는 잘 알려진 약재의 활용에 주력하는 것이 피부에 와닿는 것이다.
요즘처럼 약전에 등록되어 있거나 적어도 식품재료로라도 올라가 있어야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는 분위기에서는 좋은 효능을 가진 약재 하나의 힘보다는 최적의 조합을 찾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약재 조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쪽은 아무래도 상한론을 위시한 고방에 있다.
후세방은 기본방 단위로 조합을 하다 보니 약재를 한 20가지 정도로 구성하고 나면 딱히 걸리지 않는 적응증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치료 범위가 넓어진다. 약재 하나의 존재감이 약해지는 것이다.
그에 비해 고방은 약재 하나하나가 대응되는 적응증을 가지고 있다. 약징처럼 매우 좁은 범위의 적응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약재 하나를 넣을 때는 그에 상응하는 징후가 포착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처방 방법은 변증을 세밀하게 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은 있으나 약재의 개수를 줄이고 약량을 늘려 일정 수준 이상의 약물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임증지남의안도 상한론의 정신을 계승하였고 처방에도 약재 하나하나의 의미가 잘 살려져 있다. 한 가지 약재가 하나의 처방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복령과 반하는 둘다 담음을 제거하는 약이지만 상한론에서는 적응증이 구분된다. 후세방에서는 이진탕 자체를 가미해서 담음에 대응하기도 한다.
유형의 담이 있으면 반하를 넣고, 없고 징후만 보이면 복령을 쓰는 방법은 후세방의 처방 단위 가미 개념에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그러나 약은 곧 독이기도 하고 부작용이 있다. 약을 소화시키는 것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나의 원인을 먼저 확실하게 해결하는 것이 여러 원인을 다 한 번씩 건드리는 것보다 결과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인체도 하나의 약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절차를 나눠서 하나씩 처리하는 것이 좋다고 보는 것이다.
화학적인 관점에서는 약재 한가지와 여러 가지 약재 모두 수많은 물질들의 조합이다. 단일 물질(Single compound)이라는 개념은 식물이나 동물, 광물의 원형에서 크게 변형시키지 않는 방식의 약재 제조법에서는 성립하기 어려운 편이다.
여러 가지 약재가 들어가면 성분 A와 B의 조합의 개념이 아닌, 복잡성의 증가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하나나 여러 개나 복잡한 존재고, 우리가 주로 쓰는 식물 기반의 약재들은 기본적인 항염증, 항산화 등의 효능에서는 아주 배타적인 관계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고방은 약재의 작용방향의 복잡성을 줄이고 선명성을 강조해서 접근하는 것이고, 후세방은 복잡성을 수용 가능한 만큼 최대한 늘려서 다양한 적응증에 걸치는 것이다.
선택은 처방하는 임상가의 몫이지만 임상가도 사람인지라 복잡성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사상의학이 이런 틈을 잘 파고든 이론체계이고, 꼭 특정 체계가 아니더라도 임상가 각자가 시간과 경험이 쌓일수록 고유의 체계를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구축하게 된다.
一味一方은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염두에 둬야 한다. 수 많은 기본방의 조합에 휩쓸리다 보면 속칭 '약장을 다 삶아 먹는다'는 딜레마를 마주하게 된다. 작은 것에서 시작하면 늘릴 수 있으나 큰 것부터 시작하면 결국 쪼개고 발라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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