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의 상담은 진료의 중요한 과정이다.
한의원처럼 전통적인 진단 방법이 위주인 경우 환자와의 상담이 단순한 병력 청취를 넘어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환자의 상담은 늘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돌아다닌다. 어떤 원장은 호통을 쳐가면서 진료를 한다느니, 어떤 원장은 꼼꼼하게 듣고 설명을 해줘서 잘한다고 소문이 났다고 하는 식이다.
진료시간이 누적되면서 자신만의 환자 상담 기술은 축적되고 향상되겠지만 좀 더 나은 방향, 특히 장기간의 한약처방과 같이 비급여 시술을 진행해야 할 경우 경험이 상당히 누적되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비급여 치료에서 상담이 중요한 것을 반증하는 것은 여러 피부과 시술에서 상담실장을 별도로 고용하는 것다. 의학적인 설명만 원장이 하고 나머지 비용이나 상세한 과정은 의료인이 아닌 실장에게 맡기는 것이다.
상담이 힘든 것은 환자의 상담에 의학적인 요소 외의 것들이 작용하는 것이다.
특히 용어의 문제가 크다. 아무리 의사가 전문적인 용어를 배제하겠다고 마음먹어도 환자들에게는 생소하거나 낯선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성 위염이나 위통증은 의학용어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관련된 증상을 고치기 위해 병원을 방문한다.
오십견 또한 마찬가지다. 동결견이라고 하는 증후군이고 이마저도 정확한 용어가 아니다. 그럼에도 오십견이라고 말하면 환자들은 쉽게 알아듣고, 오십견으로 알고 진료를 받으러 온다. 상담이 쉽지 않은 이유다.
염증만 해도 의사들에게는 익숙하지만 환자들에게는 생활용어가 아닌 낯선 용어인 것이다.
다른 하나는 환자에 대한 정서적인 지지다. 양방에서는 정신과 진료의뢰의 영역으로 치부하겠지만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심신일여(心身一如)를 전제하는 한의학에서는 진료과정에서 정서적인 부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환자 상담에 체계적인 방법론이 있냐에는 회의적이다. 이 때 쓸 수 있는 것이 BATHE 상담법이다.
감정의 문제가 신체증상으로 나타나는 신체화장애를 치료하는 이 상담법은 정신과가 아닌 다른 진료과목에서 환자의 정서적인 지지를 유도할 수 있는 간략화되고 체계적인 상담 프로세스다. 과정은 다음과 같다.
상담요소 | 내용 및 질문 |
B (Background) | 환자의 전반적인 상황의 이해. 반드시 주소증이나 병력과 관계가 있을 필요는 없다. '요즘 어때요?'라는 질문이다. |
A (Affect) | 감정에 대한 질문이다. '요즘 기분이 어때요?' 정도로 진행한다. |
T (Trouble) | 문제에 대한 인식이다. '요즘 신경쓰이는 거 있어요?', '스트레스 받는 거 있어요?' 등으로 묻는다. 없다고 할수도 있는 데, 다른 증상과 참고해서 본다. 정신과적 문제가 보이는 데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조금 더 캐고 들어갈 필요가 있다. |
H (Handling) | 이야기한 문제에 대한 대응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보다는 환자가 이 문제 때문에 그 동안 해왔던 일들에 대한 서술을 경청하는 과정이다. '그것 때문에 어떻게 했어요?',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었을까요?' 등으로 묻는다. |
E (Empathy) | 환자에 대한 지지와 동감이다. 문제에 대한 반응 자체에 대해 정서적인 지지를 한다. '고생 많이 하셨네요.',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거에요,' 등 환자의 지난 선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말을 한다. |
BATHE 상담법은 간결하고 활용범위가 넓은 편이다. 다만 정신과처럼 아주 체계적이거나 특정 질병을 진단하는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모든 상담 요소를 기계적으로 도입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환자에게서 고민하는 문제를 언어의 형태로 의사라는 타자에게 끄집어 내도록 하는 것이고, 그 과정을 정서적으로 지지해주는 것이다.
언어 표현 뿐만 아니라 환자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거나 표정 등으로 지지를 보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상담은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의사와 환자라는 사람 간의 만남이기도 하다. 침을 놓거나 약을 처방하는 행위와는 달리 패턴화가 쉽지 않고 의사도 숙련도나 몸 컨디션에 따라 흥분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내용을 말할 때가 있다.
상담과정은 환자의 치료를 결정하고, 때로는 환자가 어디까지 돈을 쓸지를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보험 과목을 주로 하는 경우 이런 부담이 적겠지만 비급여가 중심인 진료과들은 중요한 부분이다.
각종 시술은 차분하게 해야하고 돌발 상황에 흥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상담은 그렇지 못한 경우를 꽤 본다. 상담 또한 치료과정의 하나라고 보고, 환자의 의사가 최종 결정될 때까지 상담은 끝난 것이 아니라고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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