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ChatGPT)가 널리 알려진지도 꽤 되었습니다. 그냥 '챗'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ChatGPT의 최신 GPT-4 모델은 유료라 돈을 내고 쓰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딥엘(Deepl)도 1년 구독을 시작했습니다. 서비스 자체는 구글 기계 번역과 차이가 없습니다. 구글은 무료지만, 딥엘은 유료죠. 하지만 딥엘의 자연스러운 번역은 기존 기계번역에서 이상한 번역 때문에 원문을 읽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싹 날려버렸습니다. 뉴욕타임즈나 파이낸셜타임즈의 기사들을 번역한 것을 보면 국내 기자들이 썼나 싶을 정도로 깔끔합니다. 일부 신문에서 비문이 난무하는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인공지능이 더 글을 잘 쓰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코딩도 마찬가지입니다. 파이썬을 시작한지는 꽤 되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을 만큼 코딩 실력이 좋지 않아 언제나 머릿속의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챗은 그 아쉬움을 해결해 줬습니다. 그냥 '삼성전자 주식 최근 1년간 그래프 그리는 파이썬 코드 만들어줘' 이렇게 해도 되고, 좀 더 복잡한 코드는 프롬프트(Prompt)라고 하는, 인공지능을 지도해서 원하는 결과를 내어주는 도구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블로그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몇가지 키워드만 주면 한석봉이 병풍에 금색 먹물을 흩뿌린 다음 그걸 다 이어서 글을 써 내린 것처럼, 누가 썼는지 구분이 어려울 만큼 제시한 키워드들을 다 녹여낸 장문의 글을 만들어줍니다. 마케팅 명목으로 해당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돈을 줘가며 시켰던 글 쓰기가 인공지능, 좀 더 정확하게는 생성형 인공지능에게는 1분 내로 나오는 결과물이 되었습니다.
번역, 코딩, 글쓰기는 육체노동에 속하지는 않지만, 사람의 손을 거쳐야 했던 일들입니다. 그런데 생성형 인공지능은 이 일들을 능숙하게 해냅니다. 상업적인 결과물을 내려면 사람의 손이 여전히 필요하지만, 지금도 훌륭합니다. 일자리를 뺏을 수 있다는 우려가 이해되는 부분입니다. (물론, 인간은 그동안 못했던 새로운 일들을 찾을 것입니다.)
인공지능을 쓰면서 이전에는 기술자들에게 맡겨야 했던 일들을 바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처음 든 생각은 '일을 어떻게 잘 시킬까?'였습니다. 챗은 시쳇말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능력이 있습니다. 앞뒤 문맥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도 어떤 일을 할지 구체적으로 정해줄수록 결과물은 정밀해지고 의도한 데로 나옵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이 이런 역할을 해줍니다. 예를 들어 블로그 글을 쓴다고 하면 미리 '너는 유능한 블로그 마케터야. 한국어에 능통하고 검색엔진에 상위 노출될 수 있도록 글을 써'하는 식으로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시킵니다. 이런 과정 없이 무엇에 대한 글을 써줘 하는 것과 프롬프트를 넣어서 글을 쓰는 것은 결과물 차이를 체감합니다. 프롬프트를 돈 주고 사기도 하고, 이미 챗에도 플러그인으로 프롬프트 기능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챗 사용료와는 별도의, 플러그인 사용료를 받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일을 어떻게 시킬까에 대한 고민은 결국 '무엇을 할까'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 있습니다. 기술이 중요한 시점에서는, 또는 기술이 제약이 되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기술의 틀 안에 갇힙니다. 뭐 하나 해보려고 해도 기술자들이 이건 되고 저건 안 되고 하면서 결과물이 달라집니다.
인공지능 덕분에 이런 일들을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고도의 전문적인 기술은 기술자가 필요하겠지만, 기초적인 기술 요소의 가능성 탐색은 인공지능의 활용으로 가능합니다. 저와 같이 한의학을 전공한 사람이 옛 문헌에 나오는 처방의 구성약재 관계를 네트워크로 그리려면 박사급, 최소 석사이상의 인력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은 데이터만 잘 정제되어 있고 약간의 프로그래밍 지식이 있다면 챗에게 네트워크를 그려주는 코드를 짜달라고 하면 됩니다. 데이터 형태도 일부 보여주면 그에 맞춰서 코딩을 해줍니다.
기술의 한계가 사라지기 시작하면 무엇을 만들지에 대한 고민으로 바뀌고, 무엇을 만들지에 대한 고민은 인간에 대한 탐구로 귀결됩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써야 하는지는 데이터로 검증하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데이터는 후향적입니다. 무엇을 해서 생긴 결과로 나온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은 과거를 해석하는 데 유용하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예측은 관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예측에 따라 현상을 바꾸려고 하는 힘이 함께 작용합니다. 1960년대부터 석유는 30년만에 고갈될 것이라고 하던 것이 1990년대에도 고갈이 안 되었고, 셰일 혁명 이후 지금은 더 이상 석유 고갈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기술력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석유 자원을 찾아 나섰고, 전기에너지 등의 대체로 석유 의존성이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로 바뀌는 시대 흐름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는 대부분 객관식입니다. 수용가능한 선택지를 정리하고 결정하면 됩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주관식입니다. 몇 가지 키워드가 있겠지만 너른 백지에 한 자 한 자씩 채워 넣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인공지능이 쉽게 답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어떤 답을 내놨다 하더라도 의견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인간이 받아들여서 그 방향으로 가야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에 대한 탐구가 다시 각광을 받을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탐구는 인문학입니다. 그 동안은 우리가 컴퓨터에 일을 시키기 위해 코딩과 같은 컴퓨터의 언어를 배웠습니다. 이젠 컴퓨터가 우리말을 알아듣습니다. 우리말을 잘 못하면 컴퓨터에 일 시키기도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일을 시키려면 무엇을 할지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아는 사람이 인공지능의 지배자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봅니다.
'사회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봇, 인공지능과 우리들의 미래 (0) | 2023.10.05 |
---|---|
The ability to utilize generative AI depends on an understanding of the humanities. (0) | 2023.09.13 |
전자책 e-Ink 리더기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0) | 2023.07.20 |
비대면 진료, 이젠 솔직해 집시다. (0) | 2023.04.21 |
순리를 따르면 살려는 드릴께? (1) | 2023.04.17 |
한의학(특히 온병학), 사회문제, 경제경영 분야에 대해 글을 쓰는 한의사입니다.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펼쳐놓는 공간입니다.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