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5/16) 사법부가 의대증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기각을 하면서 의대증원은 9부 능선을 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원고 측은 바로 재항고를 했고,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여전히 거친 언사로 정부뿐만 아니라 사법부까지 비판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대법원 판결에서 뒤집히기는 쉽지 않고, 그 사이에 합격자가 나오면 돌이키기는 불가능하니 의대증원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우선 의대증원의 여파를 논의하기 이전에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까지 의대증원을 밀어붙이는 이유를 확인해야 합니다. 앞서 제가 얘기한 것처럼 건강보험제도의 유지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는 증가하는 경제활동인구를 전제로 설계된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흔들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과 같은 건강보험제도는 종말을 맞이하고 민영화 또는 그에 준하는 제도로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토록 의사들의 완강한 저항(예전보다는 약해졌지만)을 감수하면서 의대증원을 관철시키는 것은, 국민 건강을 포기하는 정부는 정치적으로도 큰 타격일 뿐만 아니라 정부 역할의 축소를 아직까지는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조만간 이마저도 호기로 판단될 것 같지만, 아직까지는 지키려는 의지를 보입니다.
정부가 가려는 방향은 명확합니다. 경증 치료는 민영화 수순, 중증에 대해서만 보장이 핵심입니다. 소위 '필수의료'를 두텁게 하는 데, 그러려면 곳곳에 종합병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의사 숫자로는 인건비 지출이 너무 큽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저수가로 인해 전문의를 고용하기에 벅찹니다.
해결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수가를 올리던가 아니면 의사 페이를 깎던가. 그동안은 저수가를 비급여나 실손보험으로 수가를 보전하는 효과를 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저금리, 저물가 시대의 논리였습니다. 고금리, 고물가 시대에서는 통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90년대는 병원 가는 것이 큰일이었습니다. 실비도 없고, 건강보험도 보장성이 낮아 병원비의 대부분이 비급여던 시절이었습니다.
다시 고물가, 고금리 시대가 왔고, 손해보험회사들은 실비 손실률을 낮추고 있습니다. 건강보험으로 해결해야 하는 데, 정부도 세수펑크가 나고, 앞으로도 계속 날 것 같으니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마침 의협의 선민의식과 오만함은 국민 모두를 적으로 돌렸고 그 결과 현재 정원의 절반 이상을 증원하게 되었습니다.
의대증원은 증원된 의대 수시 첫 합격자가 나오는 순간 되돌이킬 수 없을 것이고, 늘어난 정원만큼 교원 충원이 필요하니 이를 기회로 전임의(펠로우)들이 임상교수가 되기 위해 병원으로 복귀할 것입니다. 전공의는 전문의가 아니지만 전임의는 전문의입니다. 대학병원을 걸어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않다면 감당할 수 있을 것이고, 정 안되면 전공의들의 사직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공보의 배정을 시켜서 다시 해당 병원에 배치시키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전공의들은 복귀도 못하고 계속 버틸 것이고, 의대생들은 유급불사를 하는 것이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만 끝까지 간다고 해서 정부가 멈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의약분업 때는 전공의, 전임의뿐만 아니라 개원의들도 집단 휴진을 했지만, 지금은 교수들조차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도 할 만큼 했다는 명분을 쌓기 위해 돌아와 달라고 하는 것이라 이 상태 그대로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현실을 마주하게 될까요?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1. 동네의원의 감소 및 양극화
의대를 졸업하고 바로 개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전문의가 되어서 일정 시간을 보낸 후 개원을 합니다. 개원가도 레드오션이 된 지 오래라 지금은 대규모 개원이 아니면 명함도 못 내미는 시대가 되었고, 원장 혼자서 하는 동네의원은 점점 유물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건강보험재정을 필수의료로 넣겠다고 한 이상, 경증에 대한 수가는 물가상승률에 훨씬 못 미치게 설정할 것입니다. 이를 예전에는 비급여와 실손보험으로 메꿨는 데, 이마저도 쉽지 않게 되면 정말 규모를 키운 동네의원과 월세 등 유지비를 최소화한 1인 의원으로 나뉘게 될 것입니다. 필수의료로 수가를 더 줄 것이고, 의사 인건비는 낮아질 것이니 중소형 병원이 많이 생길 수 있습니다.
2. 일반의약품와 비대면진료의 전성시대
3분 진료나 실손으로 운영을 하던 동네병원들이 사라지면 그 자리는 약국의 일반의약품과 비대면진료가 채울 것입니다. 일본은 전문의약품이던 일부 진통제와 소화기계약을 약국의 설문을 거치는 조건으로 일반의약품처럼 구매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IT 인프라가 잘 되어 있으니 비대면진료로 그동안 동네의원들이 짧은 시간에 처방하던 약들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이미 닥터나우와 같은 비대면 진료 플랫폼에서는 의사 처방이 필요한 탈모약, 무좀약 등 전문의약품을 전화 한 통과 앱 사용으로 근처 약국에서 수령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3. 개인의 의료비 폭등
의원 양극화와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경증 저수가는 정부가 포기할 수 없고, 지금과 같은 진료를 받으려면 사보험이나 비급여 진료를 감안하고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의사 인건비는 낮아지더라도 운영비 자체가 올라가니 의사 얼굴 보면서 여유 있게 진료를 봤다 하면 한번 내는 돈이 20~30만 원은 드물지 않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생명이 위태로운 질병은 되려 치료비가 그리 많이 들지 않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로 맞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모양을 갖춘 진료를 받으려면 돈이 많이 들 것입니다.
4. 간병 중심의 의료 체계
건강보험 방향은 간병이 더 큰 문제입니다. 고령화가 되면 질병의 치료가 아닌 관리의 영역으로 들어가며, 이때 가장 큰 문제가 스스로 생활하는 능력이 없는 노인들에 대한 간병이 큰 부담이 됩니다. 오죽하면 '간병지옥'이라는 말이 나올 지경입니다. 이에 대한 급여화 요구 목소리가 높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재원인데, 건보료를 올리지 못한다면 결국 의원 등 다른 곳에서 빼서 넣게 되어 있습니다. 의대증원이 필수라고 하는 것도 이 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의사 인건비를 낮추는 데 있습니다.
5. 민영화 수순
안 되는 것은 안 됩니다. 돈 낼 사람은 없고 쓸 사람은 많으니 건강보험은 유지가 안 됩니다. 필수의료와 간병, 1차 의료 일부에서만 국민건강보험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지금처럼 조금만 아프면 동네병원 가고, 응급실 가고, 언제든지 예약 없이 약 타러 가는 것은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의료 수요는 늘어날 것입니다. 그 부분은 비급여가 담당하고 아니면 보험료가 높아진 실손보험이 채울 것입니다. 공공의료기관이 많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개인 의료기관에 맡겼던 공공성을 더 이상 개인이 수행하기 어려워지니 국가가 직접 병원을 운영해서라도 채워야 할 것입니다. 다수의 의사들은 큰 병원에 소속되어 일을 할 것이고, 어지간히 아프지 않은 이상 병원은 가지 못하는 곳으로 인식이 바뀔 것입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예측을 하는 것은 예측 근거에 대한 판단을 통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미리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다 나쁘다는 감정의 영역이지만, 왜 그런가에 대한 설명이 붙으면 논리가 되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27년 만의 의대증원으로 누군가는 피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고연봉의 전문의가 될 꿈을 안고 있던 전공의들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한쪽이 100% 이득을 보는 경우는 없습니다.
국민들도 선택을 했습니다. 지금은 동네의원의 접근성에 필수의료도 더해서 보장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지만, 맞이할 미래는 가벼운 질환은 약국이나 비대면진료로 버티고, 큰돈 드는 위중한 질병은 치료받을 수 있을 거라는 안도감을 가지는 정도의 현실입니다. 우리의 손자세대 때는 병원을 자주 갔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얘기를 들으며 '그때는 아픈 사람이 그렇게 많았어?'라는 질문을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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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특히 온병학), 사회문제, 경제경영 분야에 대해 글을 쓰는 한의사입니다.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펼쳐놓는 공간입니다.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