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이슈가 일단락되고 있습니다. 의대증원은 의사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주제지만, 그 이면에는 경증 진료에 들이는 돈을 중증, 간병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현재 병원 중심의 의료개혁 정책 이외에 아직 수면 위로 올라와 있지 않지만 꽤 큰 파장을 가지고 올 정책이 예상되어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의료정책은 어디를 모델로 하고 있을까요? 의사를 공무원처럼 취급하는 유럽모델은 아닙니다. 의료가 민영화되어 있어 사실상 보험 유무가 치료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미국 모델도 아닙니다. 사회주의 국가처럼 의사를 기술자 취급하는 모델도 아닐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것은 일본 모델입니다. 전 국민 건강보험부터 장기요양보험 등 비슷한 사회구조와 고령화 영향으로 일본이 밟아왔던 정책을 보면 우리나라의 의료 정책도 그 방향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작년에 비대면 초진 제한 철폐를 제도화했으며, 2013년에 이미 일반의약품의 배송이 풀렸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있는 진통제(록소프로펜)도 아마존에서 온라인 설문지 응답 몇 번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곧 있으면 설문응답 절차도 없어진다고 합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G7 국가 중 의약품 배송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보건의료 위기상태라는 이유로 전면 허용된 비대면 진료는 의사들이 의대정원 반대에 힘을 쏟는 사이 제도화 수순을 밟을 것입니다. 정부가 경증 진료에 돈을 들이지 않으려면 경쟁을 시켜야 하는 데, 비대면 진료는 이미 전례도 있고 코로나 기간 동안 사실상의 전 국민 시범사업도 완료했습니다. 의사들의 반대 때문에 초진 비대면 제한을 걸었지만, 이미 정부나 의사나 각자 갈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전면 비대면 진료는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여기서 걸리는 것이 약 배송입니다. 아직까지는 약국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는 인식에 처방약 배송을 전면 허용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대부분 가까운 약국에 직접 가서 약을 수령해야 합니다. 그런데 의사마다 같은 성분을 처방해도 제품명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비대면진료로 처방한 약을 가지고 있지 않아 주변 약국에서 수령이 어려운 경우도 많이 발생합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상표가 아닌 성분명으로 조제를 하도록 하거나 일반의약품, 전문의약품 모두 배송 가능한 온라인 약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성분명 조제는 제약회사의 존재 의의를 없애는 거라 온라인 약국이 그나마 정부와 약사가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일 것입니다.
타협까지 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지만, 의사들의 반발도 꺾은 마당에 경증에 투입되는 예산을 경쟁을 통해 줄일 수 있는 정부가 마다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응급실 뺑뺑이처럼 아직까지는 약을 구하기 힘들다거나 약국이 동네에 없는 것이 문제가 안 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처방을 받아야 하는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 모두 배송제한에 걸려있습니다. 의대증원이 끝나고 각종 의료정책 진행이 마무리되고 지방의 인구감소로 인해 기본적인 약품도 못 구하는 일이 발생하면 의약품 전면 배송이 화두가 될 것입니다.
약사회는 이전부터 절대 반대 입장입니다. 온라인 약국을 허용하는 순간 최저가 경쟁에 시달립니다. 이미 오프라인 약국의 약값도 비교해 주는 사이트가 있는 마당에 온라인에서 클릭 몇 번으로 최저가 약을 살 수 있다면 동네 약국 상당수는 문을 닫거나 온라인 약국도 같이 하는 형태로 바뀔 것입니다. 10평짜리 3층 약국에서 온라인 약 판매만 하거나 아니면 제약회사들이 직접 생수 팔 듯 자사몰 만들어서 일반의약품을 팔지도 모르겠습니다.
약물 오남용 때문에 온라인 약국을 반대한다고 하지만, 일반의약품은 되려 관리가 잘 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약국을 돌아다니면서 일반 의약품을 살 수 있는 데, 온라인이면 관리가 더 쉽습니다. 약 살 때 인증 절차만 한번 넣으면 됩니다. 무엇보다도 똘똘 뭉쳐 집단행동을 한 의사들에 비해 약사회가 온라인 약국에 대해 얼마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그동안 의대증원 이슈를 대하는 의사협회의 오만함과 선민의식이 꺾이는 모습에 통쾌함을 느끼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들이대는 잣대는 같은 형태로 자신에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정치가들이 특정 집단을 기득권으로 규정하고 규제하면서 '대의'를 추구한다는 말이 기득권으로 규정된 집단에게는 얼마나 와닿을까요? 자신들이 기득권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으면 억울하기까지 합니다. 그냥 시대 변화라고 넘기면 좋겠지만, 변화에 생존해야 하는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은 냉혹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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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특히 온병학), 사회문제, 경제경영 분야에 대해 글을 쓰는 한의사입니다.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펼쳐놓는 공간입니다.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