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가 전면 허용된 지 4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기 때 전면허용 되었다가 코로나 종료 후 제한된 형태의 시범사업으로 끌고 가던 비대면 진료가 의대증원 이슈와 맞물려 다시 전면 허용이 되었습니다.
의대증원이 끝나고 의사협회와 타협을 하는 과정에서 비대면 진료를 의제에 올릴 가능성은 있지만, 이미 의대증원과 같은 큰 이슈를 통과시킨 마당에 비대면 진료가 예전처럼 제한된 형태로 돌아갈 확률은 낮을 것으로 보입니다.
비대면진료의 허용으로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 비대면 진료 중계 플랫폼 회사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스타트업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비대면진료 플랫폼 회사들은 코로나 시기 호황을 누렸다가 사실상 비대면 진료를 막는 조치인 초진 비대면진료 금지 조치로 한 때 강남거리 한복판에서 플랫폼 회사들이 모여서 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비대면진료는 여전히 제한적이고,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의사들의 집단행동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의대증원 이슈에 가려져 있는 경증 환자 민영화 수순에서 비대면 진료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미 작년 4월에 대통령이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했을 때 비대면진료 플랫폼업체 대표가 같이 갔습니다. 그리 큰 기업이 아니었고, 비대면진료가 제한되던 시점이라 일부에서만 왜 비대면진료 플랫폼 회사 대표를 데리고 갔는지 의아해했습니다. 이미 미국은 비대면진료가 폭넓게 허용되고 있어서 시장 진출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는 데, 의대증원 정책이 가시화되고 나니 의미가 선명해졌습니다.
현재의 비대면진료는 의원급 병원만 참여하고 있으며, 혈압, 감기, 소화기 등 동네의원에서 많이 보는 질환의 급여치료와 탈모, 무좀 등 비급여 치료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처방전을 발급하면 그 처방전의 약을 조제할 수 있는 약국을 찾아서 방문수령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입니다.
한마디로 지금은 일부 아는 사람들만 비대면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의료 비상사태라 공식적으로는 비대면진료가 한시적 허용인 점도 있고, 처방전에 있는 약을 온전히 받아줄 수 있는 약국이 많지 않거나 직접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기 때문에 탈모나 식욕억제제 등 처방전과 약제비가 일정하지 않은 특정 질환을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가 대중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대면진료 플랫폼 회사들도 다른 배달음식 플랫폼들이 하는 광고나 상위노출로 매출을 일으키는 것은 아직 엄두도 못 내는 것 같습니다. 당장 원장님들에게 가는 진료콜만 잘 받아줘도 상위 노출이 된다고 하니 비대면진료는 산업의 입장에서는 이제야 싹이 트고 있는 맹아기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비대면 진료가 어떻게 바뀔까요? 비대면진료는 플랫폼을 근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고, 플랫폼 발전 단계에 대해서는 몇가지 모델이 있습니다. 진입-성장-도약으로 정리한 경우가 있어 이에 맞춰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1. 진입
어떤 플랫폼이 시작될 때에는 기존 방식의 불편함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시작합니다. 비대면진료 플랫폼은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진료비나 약제비의 비교를 용이하게 하며, 대면으로만 알 수 있었던 의료진에 대한 평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점도 있습니다. 모든 질환에 대해 비대면진료가 어렵고, 대면에서는 확인하기 쉬운 환자의 특징, 예를 들면 체격, 음성특성, 자세나 피부 등의 사항을 비대면진료에서는 확인이 어렵습니다. 동네의원 가면 바로 진찰받고 1층 약국에서 약을 받을 수 있는 데, 비대면진료 플랫폼을 쓰면 주위 약국에 처방전을 보내보고 안 된다고 하면 다른 곳에 또 보내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의료진 입장에서도 기존 대면 진료에 맞춰진 전자차트나 마케팅 수단, 의료기관 구성 등을 비대면 진료에 맞게 바꿔야 합니다. 아직은 전자차트와 같은 편의성은 고사하고 진료과 특성에 맞는 비대면진료 시스템 구축도 안 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플랫폼은 단순히 좋은 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 플랫폼이 가진 락인(Lock-in) 효과를 벗어나기에는 필요성을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대면 진료라는 키워드 하나를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데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이런 특성은 꼭 비대면진료 플랫폼 뿐만 아니라 다른 플랫폼들도 겪는 문제입니다. 카카오톡은 처음에 유료 문자를 대신해서 무료로 보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었지만, 앱을 깔아야 했기 때문에 한동안 문자와 경쟁을 해야 했습니다. 택시앱도 기존에 구축된 콜택시 체계와 경쟁을 하면서 자신들의 점유율을 높이기 전까지는 앱도 깔고 전화 한 통이면 될 것으로 폰에서 일일이 목표지점을 찍어야 하는 등의 단점을 노출시켰습니다.
2. 성장
진입 단계에서 계속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기회가 옵니다. 이 순간부터는 운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이 지닌 장점이 극대화되고 단점은 감춰지는 단계입니다. 비대면진료 플랫폼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보는 성장의 기회는 건강보험의 경증 환자 축소로 인한 동네병원의 감소로 생각합니다.
2천 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에서 비대면진료를 포함한 각종 헬스케어 서비스의 가능성을 논의할 때 결국은 '동네병원이 많은 데 왜 귀찮고 정확하지도 않은 앱을 써야 하냐'에 더 이상 진척을 이끌어내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미국에서 앱에다 20만 원짜리 간이 심전도계를 쓰면 심장전문의의 진단을 원격으로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해당 서비스는 규제 문제도 있었지만, 설령 규제가 풀려도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건강검진을 하고, 심전도가 보험이 되어 있어 동네병원에서 손쉽게 심전도 검사를 받을 수 있으니 필요성이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어지간한 대도시에서도 동네병원을 찾기 어렵고, 대부분 질환은 약국 약으로 버티거나 비대면 진료를 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직은 상상이 잘 가지 않습니다만, 코로나 시기 생필품을 인터넷으로 구입하기 시작하면서 일부의 쇼핑 방식이었던 온라인 쇼핑이 대중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네병원이 줄어들거나 있더라도 저렴하게 보험치료만 받을 수 있는 곳이 줄어든다면 남는 것은 비대면 진료 밖에 없습니다.
이 때쯤 되면 병원 자주 다니시는 분들의 입에서 특정 비대면진료 플랫폼의 이름이 나올 것이고, 비대면 진료만으로 병을 치료하는 사람들의 사례가 소개될 것입니다. 병원 원장님들 중 비대면 진료를 일찍, 잘하신 분들의 무용담이 의사들 사이에 퍼질 것입니다. 비대면 진료 프랜차이즈나 네트워크 병원이 나올 것이고 비대면 진료를 위한 클라우드 전자차트도 개발될 것입니다.
3. 도약
비대면진료 플랫폼이 도약 단계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진료의 20% 정도만 비대면으로 이루어져도 지금과 같은 영세한 플랫폼 회사들이 아닌 차원이 다른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국가 제도가 바뀔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처럼 애매모호한 비대면 진료의 허용이 아닌, 비대면진료를 상세히 규정하고 규제하는 움직임이 있을 것입니다. 플랫폼 간 표준 도입 논의도 나올 수 있습니다.
상상해 볼 수 있는 미래로는 지금처럼 의료진들이 의료기관에 소속되어야만 비대면 진료를 제공하는 것이 풀릴 수 있습니다. 집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것처럼 의사가 병원을 차리지 않고 집에서 통화하고 진료하는 것입니다.
대면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주위 병원을 추천해 주면 됩니다. 이렇게 되려면 약도 배송이 가능해져야 하고, 필요하다면 성분명 조제와 같이 어느 약국에서나 처방전만 들고 가면 필요한 약을 받을 수 있는 제도로 바뀌어야 합니다.
비대면진료가 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려면 새벽배송을 통해서 그 전날 저녁에 약 처방 받아서 다음 날 아침에 약을 복용할 수 있는 시스템도 필요합니다. 이렇게 되면 되려 의료 접근성이 높아집니다. 그동안 약국들이 저녁에 문을 안 열면서도 편의점에는 일반 의약품을 취급하지 못하도록 했는 데, 전문의약품부터 새벽배송이 가능해진다면 일반의약품 대면 판매가 중요한 약국들이 어떻게 대응할지도 궁금합니다.
이 단계까지 살아남은 비대면진료 플랫폼은 네이버 등 대형 포털에 인수합병되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얼마나 플랫폼이 잘 되어 있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몇 천억 원 이상의 가치로 기업인수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플랫폼은 승자독식의 세계입니다. 배달앱을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빠르실 것입니다. 초기 수많은 배달앱들은 지금 1~3개정도만 사람들이 이름을 알고, 그나마도 1위와 2위의 차이가 너무 큽니다. 의료 관련 재화는 배달앱에서 취급하는 재화보다 훨씬 비쌉니다. 지금 수 많은 플랫폼들이 투자 받아가면서 버티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살아 남아서 1등이 되었을 때 거둘 수 있는 어마어마한 결실이 있습니다.
한바탕 상상의 나래를 펼쳐 비대면 진료가 변화하는 방향을 생각해 봤습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예전처럼 초진 제한 등 반쪽짜리 비대면 진료로 질질 끌 수도 있고, 발전된 IT 기술, 경증 환자 진료의 축소, 동네 병원의 변화 등의 여러 요소에 따라 빠른 시간 내 세계 최고 수준의 비대면 진료 체계가 구축될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국민의 몫입니다. 그 전까지는 의사단체가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막아선 감이 있지만, 의대증원을 계기로 뚫리고 한계를 노출한 의사 파업의 결과는 비대면 진료가 전면으로 나서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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