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내년이면 초고령사회로 진입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인구는 줄어드는 데 노인은 천만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사회 여러 분야에서 변화가 감지되겠지만, 가장 큰 것은 의료분야입니다. 단순히 노인인구를 병원에 갈 사람, 안 가도 되는 사람으로 단순 분류하기에는 다양한 분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입원을 하면서 병을 치료한다면 일반병원, 거동이 불편하거나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면 요양병원,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 간병인을 쓰는 것이 현재의 방식입니다. 요양원이나 치매환자를 위한 데이케어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시설들이 있음에도 사각지대는 존재합니다. 노인인구가 증가하면서 거동이 불편하지만 집에서 간병인 고용은 어렵고 그렇다고 요양병원에 가기에는 비용 문제가 걱정되는 분들도 늘어날 것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를 보내고 있는 일본에서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고 있었고 그중 하나가 재택형 의료병상입니다. 이신칸(醫心館)의 사례로도 유명합니다.
2020년대 초반부터 해당 사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관련 서적도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아직은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이 중심이고, 방문진료가 맹아기에 들어서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일부의 관심정도로 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울 정도로 일본의 인구구조를 빠르게 따라가고, 정부 정책도 장기요양보험과 같이 선제적으로 일본을 벤치마킹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이신칸의 사례는 적용 여부가 아닌,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단계입니다.
우선 재택의료, 요양원, 요양병원, 병원의 구분부터 필요합니다. 병원은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하며, 해당 질병의 치료에 필요한 행위가 끝나면 입원이 종료됩니다. 이후 의료적인 처치 필요도와 환자의 경제력에 따라 요양병원, 요양원, 재택의료를 선택하게 됩니다. 요양병원은 의사를 포함한 의료진이 상주하는 병원입니다. 요양원은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가 있지만 의료서비스는 촉탁의에 의해 이뤄집니다. 재택의료는 집에서 간병인이 도와주며, 방문진료 신청을 통해 집에서 치료를 받게 됩니다. 방문진료는 이제 막 시작단계로 각 시군구 단위에서 전담하는 의료기관을 모두 지정하려고 하는 단계입니다.
재택형 의료병상은 재택의료의 특성인 자신이 익숙한 공간에 거주하는 것에 의료진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만들어진 것입니다. 재택의료가 잘 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자신이 살던 공간에서 충분히 의료진의 도움을 받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교통이 불편하거나 의료환경이 좋지 않은 곳에 거주하는 환자들도 있고, 말기환자의 경우 욕창이나 인지장애 등으로 병원치료는 종결되어도 의료처치는 계속 필요합니다.
방문진료 자체에 많은 돈을 투입하기 어려운 것도 현실입니다. 방문진료는 포괄수가제로 설정되어 있는 데, 이는 정해진 비용에 경쟁을 통해 최대한 많은 것을 해주기를 기대하지만 현실은 저수가를 피할 수 없어 의료서비스가 황폐화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현재 시행중인 방문진료도 아파트 단지를 한번에 돌거나 담당지역이 넓지 않아야 교통비나 시간 투입을 고려했을 때 할만하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입니다.
이 지점에서 재택형 의료병상이 작동할 공간이 생깁니다. 도심 근처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자기 집처럼 공간을 꾸미고 간호사들이 상주하면서 의료접근성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도심 근처이기 때문에 의사 등 의료진의 수급도 어렵지 않습니다. 요양원보다는 의료진의 질적, 양적 수준이 높고, 자신만의 공간이 있으며, 요양병원보다는 저렴합니다. 요양병원도 도심에 있는 경우가 있지만, 재택형 의료병상은 훨씬 가격 경쟁력이 있습니다. 환자들도 병원이 아니기 때문에 병원의 각종 제약에서 벗어나 원하는 대로 생활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병원에서 할 것은 다 했기 때문에 나머지는 환자들이 원하는 일상을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적용하기에는 몇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우선 건강보험재정을 투입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정책입안자들이 요양병원보다는 저렴하다고 해도 더 저렴한 요양원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일본은 보험적용이 된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급격한 인구감소를 겪는 환경이 아니어서 동일한 비교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촉탁의 제도의 확대입니다. 재택형 의료병상에 투입되는 의사들은 주위 개원병원 의사 거나 촉탁의여야 합니다. 의사를 늘려서 촉탁 전담 의사를 쓸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촉탁 업무만으로 생계유지가 가능하도록 설계할지는 의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의료제도를 국가 관리 체계로 넣겠다는 정책방향이 이신칸과 같은 모델을 받아들이는 데 장애물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요양원에 대해 수가는 낮으면서 해줄 것은 많이 설정해 놓는 데, 누차 이야기한 것처럼 이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 성장을 전제로 작동하는 제도이며, 저성장 시대에는 수가가 곧 해당 기관의 수입 전부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손보험도 사실상 심사평가원에서 관리하면서 준 공공제도처럼 운영되다가 손해율이 높아지니 아예 없어지는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공공영역으로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방향이 한계에 다다른 시점입니다.
우리나라에 이신칸과 같은 모델이 생기면 요양원보다는 고가이고, 요양병원보다는 낮은 비용에서 시장을 만들 것입니다. 중간시장이고, 일본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시도들이 이어질 것입니다. 그동안은 저수가와 저임금을 바탕으로 요양병원이 해당 수요를 흡수했지만, 의료비 부담이 날로 늘어나면서 요양병원도 고가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미 일본에서는 일상화된 방문진료도 우리나라는 시범사업으로 겨우 이끌고 가는 것이 현실이지만, 빨라지는 초고령사회 진입의 시계는 효과가 있겠다 싶은 제도들을 빨리 도입하도록 우리들의 등을 떠밀고 있습니다.
덧붙여, 한의사들의 역할 확대도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동안 방문진료나 요양병원에서 한의 치료가 역할을 하는 것은 건강과 관련된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병원에서의 질병 치료가 종료되면 그다음은 삶의 질이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한의치료는 여러 연구에서 밝혀진 것처럼 부작용은 적은 데 건강과 관련된 삶의 질을 구성하는 운동능력(mobility), 자기 관리 (self-care), 일상 활동(usual activities), 통증/불편 (pain/discomfort), 불안/우울(anxiety/depression)은 개선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미 요양병원에서 한의과의 설치 유무가 중요한 것처럼, 재택형 의료병상도 한의 치료가 들어갈 수 있는 영역입니다.
방문진료가 안착되면 그다음은 재택형 의료병상 모델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될 것입니다. 한의사들의 역할도 기대되는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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