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단순히 날씨뿐만 아니라 먹거리, 주거환경, 건강 분야도 기후 변화 대응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변화시킵니다. 당연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여러 분야에서도 변화가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의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후가 바뀌면 잘 발생하는 질환도 달라집니다. 평균 기온이 낮을 때와 높을 때 생기는 질환이 다르고, 기존 질환도 형태가 변화합니다. 이미 2021년에 The Lancet, NEJM과 같은 유수의 의학저널들이 산업화 이전보다 평균기온이 1.5도 올라가면 보건상에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공동 사설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폭염으로 인한 발열, 식량부족, 전염병 창궐, 정신건강 문제가 대표적입니다. 기온이 상승하면 만성콩팥병의 빈도도 높아집니다.
한의학은 천인상응이라해서 사람의 건강은 자연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오래전부터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한의학의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수많은 학설이 등장했는 데, 특히 온병학에 이르면 기존의 학설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내경, 상한론 등 같은 한의학 기본 이론을 공유하고, 약재도 몇 가지 특이한 것을 제외하고는 기존에 알려져 있던 것들인데, 질병의 인식과 대응이 확연하게 달라지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중국의 양자강 이남, 특히 광동성까지 개발이 되고 사람들이 더운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적응하는 과정으로 인식하는 시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온병학은 태동지가 양자강 이남 더운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만주족이 있는 북경과 청나라 황실에서도 쓰일 만큼 보편적인 이론이 되었고, 현대 중의학의 뼈대를 이루는 이론 중 하나입니다.
한의학의 주류 이론의 변화는 단순히 인적 이동이 원인이라는 설명에 한계가 있어서 더 큰 요인을 찾아보았습니다. 인적 이동을 유발하는 여러 요소 중 기후에 주목해 지난 5천 년간 중국의 기후 변화를 추적한 그래프를 바탕으로 각 한의학 이론이 나타난 시점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2005년도에 국내에 번역본이 출간된 '기후의 반역'에서 언급된 중국 기후의 변화 그래프입니다. 그래프의 0도는 지금 기온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0도 이하는 지금보다 한랭기, 0도 이상은 온난기로 규정했습니다. 위 그래프에 중국과 우리나라의 주요 한의학 서적의 출간시점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임상서적이 나오기 전 환자를 보는 기간이 2~30년 정도가 필요한 것을 감안해서 보면 됩니다.
주요 한의학 이론이 등장할 때는 평균기온이 변곡점을 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한론이나 화제국방, 동의보감, 경악전서는 평균기온이 떨어지는 시점에서 임상을 거쳐 출간이 되었고, 온병조변과 동의수세보원은 한랭기라도 평균기온이 올라가는 시점에 등장했습니다. 특히 금원사대가와 같이 짧은 기간에 다양한 이론이 등장했을 때에는 평균기온의 변화폭이 컸습니다.
화제국방이 한랭기에 유행했지만, 기후가 조금 온난해진 시점에 국방의 처방이 조열하다고 비판하는 국방발휘가 나온 것으로도 보입니다. 되려 기온이 상승하거나 하락하는 도중에는 새로운 이론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온병이론이 태동한 양자강 이남~광동성 지역의 날씨가 지금은 열대기후로 느껴지지만, 온병학이 태동할 때만 해도 평균기온이 2도 정도 낮았기 때문에 사람이 살만했을 것입니다. 1300년대 초부터 1700년대 초까지 전 세계적으로 소빙기(Little ice age)였고, 기후 변화는 인구 이동을 동반합니다. 양자강 이북 지역은 급격한 기온 하락으로 농사가 안 되고 식량이 부족해 사람들이 농사가 잘 되는 곳으로 이전하면서 광둥 지역으로의 이주가 늘어났습니다.
위 자료를 놓고 정리하면 1) 평균기온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점에 한의학이론이 새롭게 등장하거나 발전한다 2) 앞으로 평균기온은 상승하기 때문에 온병학 또는 이에 대응하는 이론의 발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를 언급한 그래프 하나와 제가 기억하고 중시하는 서적들의 출간 시점만을 대비해서 도출한 결론이라 좀 더 학술적인 접근을 해주시는 분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지구의 평균기온이 올라가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만큼 급격하게 변화할 줄 몰랐던 것도 사실입니다.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여러 요소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과 사람사이의 일에만 관심을 많이 가집니다. 가장 큰 다툼은 전쟁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한 데 싸울 수밖에 없는 데 기후가 원인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특히 변화가 시작될 때 사람들은 당황하고 두려워합니다. 코로나가 막 시작되었을 때와 1년 여가 지났을 때의 느꼈던 감정을 생각해 보시면 이해가 빠르실 것입니다.
지금 기후변화를 모두가 피부로 느끼는 이 순간, 한의학도 이론의 새로운 발전이 필요합니다. 온병학이 하나의 디딤돌이 되겠지만, 한의학 이론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사회 체제 내에 녹아들어 실질적이고 광범위한 역할을 하는 것도 같이 논의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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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특히 온병학), 사회문제, 경제경영 분야에 대해 글을 쓰는 한의사입니다.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펼쳐놓는 공간입니다.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