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점의 폐해는 경제학을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은 익숙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시장에 공급자가 단 한 곳밖에 없어 공급자가 원하는 만큼 물건을 팔거나 안 팔고, 가격은 당연히 달라는 데로 줘야 하는 상황을 의미하는 독점.
독점의 폐해는 잘 알려져 있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줄이고 사회적 손실을 야기한다. 자원의 배분도 잘 안되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야기한다. 여기서는 이러한 문제 외에도 상대적으로 언급이 덜 되었던, 독점으로 인해 야기되는 생태계 취약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독점의 폐해를 얘기하다보면 독점 기업은 완전 경쟁 시장일 때는 꿈도 못 꾸던 이익을 마음껏 영원히 누리는 식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에너지나 교통, IT 플랫폼 등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시장 자체가 아주 크지 않고 특히 초기 단계의 시장일 때 독점이 바로 형성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 독점기업이나 단체가 내부적인 또는 시장 외적인 문제로 바로 쓰러지게 되면 해당 기업의 존폐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생태계가 사라지는 문제가 있다.
10여 년 전에 각 공중파 방송사에서 운영하던 개그 프로그램들이 없어지고 KBS 개그 콘서트 하나만 남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케이블 방송도 종편도 그리 힘을 쓰지 못할 때고 유튜브도 없던 시절이니 개그 프로그램 독점이라 봐도 무방했다. KBS 특유의 폐쇄적인 분위기 탓이었는지 타 방송국 출신 코미디언들이 개콘에 나오려면 다시 공채를 보기도 했다.
그러다 각종 논란 끝에 개그콘서트가 폐지되었다. 문제는 이게 단순한 개그 프로그램의 폐지가 아니라 공중파 전체에서 코메디 프로그램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부 케이블에서 그 명맥을 이어가긴 했지만 그 이후 코미디 요소를 찾고 싶어 하는 관객들의 수요는 유튜브나 예능 프로그램으로 이전되었고, 속해있던 코미디언들은 본업이 아닌 가수 등 여러 업을 전전하며 지내야 했다.
이런 사례는 꼭 큰 기업 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혹자는 어차피 망할 산업이라면 독점이나 완전 경쟁이나 다르지 않냐고 할 수 있다.
물론 산업 자체가 하향세일 수도 있다. 공급자가 많고 의미 있는 경쟁이 있다면 독점 기업의 폐쇄가 곧 생태계의 종말을 야기하는 사태는 막을 수 있을 것이고, 시간을 벌면서 해당 산업의 구성원들이 타 산업으로 이행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장에 뛰어드는 공급자들은 자신이 독점의 지위를 누리려고 한다. 독점에 가까울 수록 자신에게 주어지는 이익은 많고 영향력도 커진다. 수많은 IT 플랫폼 사업자들이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공급자는 공간, 시간, 재화와 서비스에서 차별화를 통해 독점의 지위를 조금이라도 얻고자 한다. 소비자와 생태계 차원에서는 경쟁이 치열하기를 바란다. 낮은 가격에 좋은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의 독점이 제일 무섭다. 시장경제에서 무한 경쟁 이후 생존을 했다면 앞으로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도전자는 필요하다.
질레트가 남성 면도기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을 이루었고 면도기 날 가격은 계속 올라갔다. 면도기 스타트업들이 들어오면서 질레트의 아성을 무너뜨리는가 싶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기술력 차이는 분명했다.
하나 달라진 것은 질레트 면도날의 단가가 대용량 패키지라는 이름으로 낮아진 것이다. 경쟁의 긍정적인 모습이다.
정책을 입안하다 보면 작은 분야에서도 소위 '민영화'의 고민을 해야할 때가 있다.
독점을 주면 빠르게 민영화가 이행될 수 있다. 알만한 사람이나 기업에 독점권을 줄 테니 정책적인 영향력을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시에 독점 기업이 무너지면 바로 생태계가 사라진다는 사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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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특히 온병학), 사회문제, 경제경영 분야에 대해 글을 쓰는 한의사입니다.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펼쳐놓는 공간입니다.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