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마천의 사기(史記)의 사실상 마지막 부분, 화식열전을 읽었습니다. (사기의 원문과 해석, 그리고 제가 추천하는 화식열전에 대한 전문가 강의 유튜브는 이 글 맨 아래에 링크했습니다)
모든 역사책의 으뜸인 사기는 그 위상만큼이나 엄청난 비난에 시달린 책입니다.
기전체, 편년체 등 중국에서 쓰인 역사서적은 일정한 서술의 틀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조선왕조실록은 날짜에 따라 써 내려간 편년체지만 사기를 비롯해 한서, 삼국지, 구당서, 신당서, 송사 등 왕조의 역사를 기록하는 책은 모두 본기-세가-열전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기는 황제, 세가는 왕 등 제후, 열전은 그 외 인물들을 기록하는 데, 철저히 계급의 구조입니다.
정작 사기는 기전체의 원조로 불리지만 계급 구조를 엄격히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항우와 여태후처럼 왕이 아님에도 천하의 대세를 쥐었다는 이유로 왕과 대등하게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유학을 일으킨 공자와 중국 최초의 농민봉기를 일으킨 진승은 제후가 아님에도 제후의 열전에 실려 있습니다.
사기가 기록된 시기는 기전체의 틀이 고정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후세의 역사가들은 자신들이 만든 틀에 사기를 비교해 역으로 비판한 것입니다.
화식열전도 마찬가지입니다. 후세에서는 대부분 경제 관련 내용으로 대체가 되었지만 그러기에는 화식열전에 나타난 인간의 본성, 부에 대한 열망, 돈이 움직이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습은 2천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이런 본성을 적나라하게 쓴 것이 불편했는지 이후 유학자들은 화식열전을 비판하다 못해 저주하다시피 평가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의리와 이익을 비교하는 유교의 의리론(義利論)에서 이익을 추구하면 소인이고 의를 추구하면 군자라는 논리가 대부분을 차지 합니다. 정작 의리를 입으로 담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비를 거느리고 땅을 소유하고 소작을 부려 자신은 육체노동에 시달리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할 뿐입니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돈에 대해 얘기하는 분위기가 지금도 경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돈이 없다는 말을 스스로 하면 자신의 인생을 부정하는 느낌이고, 남한테 그런 말을 하면 모멸입니다. 아무리 사실일지라도 내가 그런 말을 다른 사람에게 듣는 다면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마천의 화식열전은 인간과 부에 대한 통찰이 빛나는 글이자 이 시대에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할 내용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화식열전을 읽으면서 감명깊었던 문구들을 정리해서 요약해보고자 합니다. 글의 번역은 링크에 걸린 네이버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貧富之道, 莫之奪予, 而巧者有餘, 拙者不足.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은 누가 뺏고 뺏기는 관계가 아닙니다. 세상일 잘 살피는 사람은 부자고 아둔하면 부족할 뿐입니다. 지구의 모든 사람에게 재산을 공평하게 나눠줘도 30분이 지나면 빈부 격차가 생긴다고 합니다. 국가가 부유해지면 국민이 굶어 죽거나 얼어 죽는 것은 막아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를 만들지는 못합니다.
국가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면 어떤 형태로든 권력을 끼고 있습니다.
夫 神農以前,吾不知已。至若詩書所述 虞夏以來,耳目欲極聲色之好,口欲窮芻豢之味,身安逸樂,而心 誇矜勢能之榮。俗之漸民久矣,雖戶說以 眇論,終不能化。故善者因之,其次利道之,其次教誨之,其次整齊之,最下者與之爭。
사람이 재물을 추구하고 좋은 것을 보고 듣고 맛보고 싶은 것은 본성이며 이를 꺾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는 이러한 본성이 인간의 생존본능에서 나왔다고 봅니다. 의식주를 안전하게 누리고 지켜야 생존이 가능하며, 우리의 감각기관 또한 그렇게 발달해왔습니다. 자기가 접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가장 좋은 것을 누리고 싶어 하며, 그래야 생존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마천 또한 이런 본성을 억누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면서, 정치에 있어 이런 본성을 이해하고 순리에 따르는 것을 가장 최고로 치고, 그 다음은 인센티브를 주는 것, 그다음은 가르치려 드는 것이고 그다음은 규제하는 것이며 마지막이 백성들과 더불어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상황에 비교해봐도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주장했고, 한 때 세계의 절반을 지배했습니다. 크나큰 실험으로 끝난 것을 지금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사람의 욕망을 재단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 같이 모여서 하나의 영화와 TV를 보고 음악을 들으면 효율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통제만 남았고 대다수의 공산주의 국가가 봉기로 끝이 난 것을 생각하면 사마천의 통찰이 얼마나 깊은 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人各任其能, 竭其力, 以得所欲. 故物賎之徴貴, 貴之徴賎, 各勧其業, 樂其事, 若水之趨下, 日夜無休時, 不召而自來, 不求而民出之. 豈非道之所符, 而自然之験邪?
아담스미스는 자신의 저작 국부론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慈悲心)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들의 고려 때문이다.'
이러한 이익 추구가 국가의 경제를 굴러가도록 한다는 것이며, 사마천 또한 동일한 이야기를 합니다. 천년의 시간을 두고 두 사람의 통찰이 일치하는 것을 봅니다.
倉廩実而知禮節, 衣食足而知栄辱.
곳간에서 인심난다,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다와 같은 말입니다. 인간은 기본적인 의식주가 완성되지 않으면 예절과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지 않고 고차원적인 것을 논하는 것은 직무유기입니다.
夫千乗之王, 萬家之侯, 百室之君, 尚猶患貧, 而況匹夫編戸之民乎!
왕이나 제후도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일반 백성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권력과 재물은 생각보다 구분이 엄격합니다. 권력을 가지면 재물이 따라오지만 권력을 잃으면 같이 없어집니다. 재물을 얻는 방법이 권력을 얻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반대로 재물로 권력을 얻기도 어렵습니다.
사마천은 부자가 되면 사람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왕이나 황제들과도 대등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번 강조합니다. 소봉(素封)이라는 표현을 쓰는 데, 영지가 없어 작위가 없는 데도 왕과 황제처럼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대통령 취임 초기에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서 같이 밥 한번 먹는 것이 통과의례인 것을 보면 이해가 빠르실 것입니다.
정말 친한 것 같지만 친하지 않은 돈과 권력의 관계입니다.
是故其智不足與権変, 勇不足以決斷, 仁不能以取予, 彊不能有所守, 雖欲學吾術, 終不告之矣.
부자가 되려면 지혜, 용기, 어짊, 강단 이 네 가지가 필요합니다. 지혜는 상황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고, 용기는 중요한 순간에 결단을 하고 어짊은 자기 것을 베푸는 것이고, 강단은 자기 것을 지키려는 의지입니다.
楚越之地, 地広人希, 飯稲羹魚, 或火耕而水耨, 果隋蠃蛤, 不待賈而足, 地埶饒食, 無飢饉之患, 以故呰窳偸生, 無積聚而多貧. 是故江淮以南, 無凍餓之人, 亦無千金之家.
초나라와 월나라는 지금의 양자강 이남입니다. 항주와 소주 등인데, 기온이 온화하고 먹을 것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얼어죽거나 굶어 죽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물자가 풍부하니 재물을 모으려면 더 쉽게 모을 것 같은데, 정작 큰 부자가 없습니다. 결국 재물의 부족함으로 인해 부를 갈망하게 되어야 부자가 됩니다.
然是富給之資也, 不窺市井, 不行異邑, 坐而待収, 身有処士之義而取給焉. 若至家貧親老, 妻子軟弱, 歳時無以祭祀進醵, 飲食被服不足以自通, 如此不慚恥, 則無所比矣. 是以無財作力, 少有鬥智, 既饒爭時, 此其大経也. 今治生不待危身取給, 則賢人勉焉. 是故本富為上, 末富次之, 姦富最下. 無巌処奇士之行, 而長貧賎, 好語仁義, 亦足羞也.
돈이 많으면 가만히 있어도 돈이 돈을 법니다. 모든 재테크 책은 종잣돈을 만들어 투자하고 불리는 내용을 가지각색의 형용사로 꾸며서 책을 팔아먹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가족들을 끝없이 고생시키는 것에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돈이 없으면 없는 데도, 있으면 있는 데로 돈 버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우고 조금 있으면 머리를 굴려야 하고 이미 많으면 때를 기다립니다.
凡編戸之民, 富相什則卑下之, 伯則畏憚之, 千則役, 萬則僕, 物之理也. 夫用貧求富, 農不如工, 工不如商, 刺繍文不如倚市門, 此言末業, 貧者之資也.
같은 사람인데도 자기보다 재물이 열배 많으면 욕하고 백배는 두려워하고 천배는 일을 해주고 만 배는 노비가 된다는 말입니다.
몇천억 자산을 가진 부자들을 보면 우리가 생각치도 못한 것에 고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족들이 먼 곳에 살아서 1년에 몇 번 보기도 힘들거나 송사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남모르는 협박이나 감시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질병을 가지고 있어 앞날을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돈이 많다는 이유로 그런 것이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같은 사람이지만 가진 돈만큼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부자들은 물건을 사고 파는 사업가가 많습니다. 연봉이 몇십억이어도 부자라고 하기 어려운 것은 자기 사업이 잘 될 때의 큰 흐름이 비교도 못할 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남의 일은 아무리 열심히 해줘도 가져가는 것이 적습니다. 자기 일이어야만 잘 되었을 때의 열매를 온전히 가져갑니다.
夫繊嗇筋力, 治生之正道也, 而富者必用奇勝.
돈을 벌어야겠다고 하면 주위에서 꼭 하는 말이 '지금보다 무엇인가를 더 아껴야겠다'는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아껴 쓰는 것은 정도입니다. 그러나 부자들은 '반드시'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부를 일으킵니다.
富無經業,則貨無常主,能者輻凑,不肖者瓦解。
부자되는 기상천외한 방법은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사마천도 부자 되는 법은 정해진 것이 없고 재물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능력이 되면 돈이 모이고 못나면 흩어진다고 재차 부연합니다.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시도하고 확인해가면서 부자되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참 무서운 말입니다. 방법이 없으니 내가 찾아야 하고, 그 결과는 온전히 자신이 책임을 진다는 말입니다.
사마천은 본업으로 부를 일으키는 것이 제일 좋지만 안 되면 다른 것으로 일으킨다 했습니다. 사기를 치거나 남의 것을 빼앗아도 부자가 될 수 있지만 이는 간사한 부자니 제일 마지막이라고 합니다.
부자도 급이 있습니다. 검은 돈으로 세계적인 부자가 된 사람들도 많습니다. 세계의 경제를 흔들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 영향력을 미치는 부자들도 있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급수를 정하는 것은 번 돈을 어떻게 쓰냐의 문제입니다. 저는 아직 많이 벌지 못했으니 벌고 나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1. 저주받은 걸작이자 신의 한 수 '화식열전' 총정리(3시간 50분)
사마천의 사기는 그 중요도에 비해 전문가가 많지 않습니다. 사서삼경처럼 유가의 경전도 아니지만, 교조화된 유학자들의 눈에는 거슬리는 내용들이 꽤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렇게 많은 한학자들이 있어도 사기를 완역한 것은 손에 꼽습니다.
김영수 교수님의 강의는 교조화된 유교가 세상을 덮기 전의 사기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WLMdVlSEVM
2. 사마천 사기 원문
네이버에서 제공합니다. 원문이 간체자가 섞여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원문과 해석을 그래도 이만큼 공개적으로 깔끔하게 제공하는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979457&ref=y&cid=62144&categoryId=6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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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특히 온병학), 사회문제, 경제경영 분야에 대해 글을 쓰는 한의사입니다.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펼쳐놓는 공간입니다.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