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피 (苦辛, 溫)
진피의 주치는 이기(理氣)이다.
상한론과 후세방의 약물 활용에서 가장 큰 차이를 들라고 하면 크게 두 가지다. 식욕부진, 소화불량을 위주로 하는 비위계 처방과 기울증을 처리하는 이기지제가 후세방에서 훨씬 많아진 점이다.
상한론에서도 이중탕이나 반하후박탕 등 보비약이나 이기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울증에 대해서는 후세방의 처방은 진피에서 시작한다.
진피는 우리나라에서는 두가지, 중국은 변종까지 약전에서 인정하고 있어서 다양한 형태의 진피가 유통이 되고 있다.
임증지남의안에서 신회피(新會皮)라 표현되어 있는 신회진피는 중국 광동성에서 나는 진피로 잘게 절단되어 유통되는 기존 진피와 달리 귤껍질을 손으로 그대로 깐 것처럼 넓게 펼쳐져 있다. 산물을 쓰는 경우도 있는 데, 어떤 것이 좀 더 좋은 지는 연구가 필요하다.
이기제를 쓸 때는 흉완창만(胸脘脹滿)을 확인해야 한다. 심하와 늑골연에 저항이 있는 데 압통은 뚜렷하지 않고 소화기 증상이 있다면 진피를 포함한 이기제를 고려해야 한다. 가스가 자주 찬다거나 복부가 전반적으로 저항이 있으면서 대변에는 큰 이상이 보이지 않을 경우에도 이기제의 적응증이다.
이기제는 방향화습도 겸하는 경우가 많다. 많이 쓰면 위를 자극하고 진액을 소모할 수 있다. 진피는 여기서 자유로운 편이다 보니 빈용 약재가 된 것으로 보인다.
지각 (苦辛酸, 微寒), 지실 (苦辛酸, 微寒)
지각은 행기(行氣), 지실은 파기(破氣)의 주약이다. 증상의 정도차이로 이해하는 것이 편하다.
기를 강제로 움직이거나 뭉친 기를 깨는 약이기 때문에 기운을 소모하므로 장기 복용에 적합한 약재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탱자를 지실로 인정해 지각과 지실의 기원이 다르나 중국은 광귤나무의 껍질을 지각, 열매를 지실로 인정하여 기원식물이 동일하다.
기록에 따르면 송나라까지는 탱자가 지실이었으나 현재 중국 약전에서는 다르게 인정하니 주의가 필요하다. 필자는 속쓰림 등 지실로 인한 부작용을 가끔 경험하는 지라 지실을 쓸 환자라도 지각의 양을 늘려서 처방한다.
이기제는 흉완창만을 목표로 쓰는 데, 완복 주위에만 나타나면 진피, 흉협까지 넓어지면 지각, 그 정도가 심하면 지실을 사용한다.
복진으로 확인할 때 복부도 같이 팽만되어 있으면서 변비 등 대변 이상이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변비를 동반하고 하복이 팽만해 있다면 통변을 먼저 하는 것이 좋다.
향부자 (辛微苦微甘, 平)
향부자는 전반적인 이기를 목표로 할 때 쓴다.
진피, 지각, 지실이 소화기 증상이 동반되어야 쓰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향부자는 '간울'이라고 하는 전반적인 증후군에 쓴다. 우울 경향, 무기력, 신경증상 등 맥진이나 복진보다는 임상 증상 위주로 쓰는 것이 좋다.
필자는 사상의학을 맹신하지는 않지만 몇가지 체질 처방은 쓰는 경우가 있다. 향부자팔물탕도 그중 하나다. 향부자가 군약이면서 안정적으로 구성된 처방을 생각보다 보기 어렵고 대부분 기본방에 가미를 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소음인 향부자팔물탕은 그런 면에서 잘 구성된 처방이라 할 수 있다.
1960년대에 나온 약 처방을 보면 향부자가 대량으로 쓰인 경우가 있다. 적게는 2-3돈에서 많게는 10돈까지도 쓰는 경우가 있다. 동의보감에서 대부분 1돈을 쓰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많은 양이다. 1
향부자도 이기제다 보니 대량으로 사용하면 진액을 손상시키는 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이 사용한 것은 두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전후 불안한 시대상황을 반영했을 수 있다. 전쟁은 끝났지만 사회는 불안정한 세태가 약에도 반영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첩지에 약을 싸주던 문화에서 나왔을 수 있다.
가정용 탕전기는 90년대에서야 보급이 되었고 지금은 당연한 한의원에서 약을 달여 포장을 해주는 것도 생각보다 최근의 일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첩지에 약을 일일이 싸서 묶어 주던 것이 일반적이었다.
첩지에 약을 싸다보면 약의 모양에 따라 첩지가 보기 좋게 포장이 안 되는 경우가 꽤 많은 데, 그때 향부자를 많이 넣어 모양을 맞췄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첩지를 싸는 법을 처음 배울 때 향부자로 연습하는 것을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어느 쪽이든 대량으로 처방된 향부자의 용량은 적절하게 조절해서 처방해야 할 것이다.
- Ref: KMID 114922011019002016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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