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학의 발전은 사회의 변화와 함께 발생했다. 새로운 이론의 발견은 인류의 이동, 전쟁, 인구의 증가 등 더 큰 흐름 속에서 영향을 받아왔고, 의학의 일부는 다시 그 흐름에 영향을 되돌려주기도 했다.
한의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내생적인 이론혁신이 없지는 않았으나 대부분은 더 큰 변화를 따라간 것이 많다. 기후의 변화 등 사람의 힘이 작용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특히 한의학은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반도에서 그 영향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다시 체계를 굳힌 이론이다. 이 때문에 한의학 발전의 경로에는 허준과 이제마를 꼽는 사람이 많다.
중의학의 아류로서 취급받거나 아니면 아예 티벳의학이나 아유르베다처럼 독자적인 이론체계를 갖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특성에 적응을 하고, 중국의 전통의학 체계와 완전히 이질적이지도 않아 다양한 영향력을 받을 수 있는 장점을 모두 취한 것이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중국의 의학서적을 그대로 참고하는 서술방식을 썼음에도 책의 편제에서 독자성을 드러냈고, 이제마는 내경에 일부 언급이 되어 있던 체질론을 성정이라는 더 거대한 담론과 결합하여 체계를 구성했다. 사상의학의 현실성에는 의문이 있지만 적어도 독자적인 이론체계를 구축한 것에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중의학에서는 여러 의학자들이 이론을 정리하고 의견을 냈지만 가장 중요한 두 사람으로는 상한론을 쓴 장중경과 온병의 시초를 잡은 섭천사를 꼽을 수 있다. 상한론은 실제적인 변증논치와 처방의 조합을 정리했고, 섭천사는 상한론의 체계를 발전적으로 계승한 공로가 있다.
온병조변을 쓴 오국통은 온병의 체계화를 제대로 시도한 공로가 크지만 아직까지는 부족하다. 온병의 이론체계를 구성하는 데 왕숙화의 9종 온병을 쓴 것이 그 이유이다. 이 때문에 온병은 아직까지 변화가 더 필요하다고 본다.
중의학에서 쓰는 온병은 특이한 약재를 많이 쓰는 것이 허용되는 의료보험 정책으로 몇십가지 약물을 한 번에 쓰는 경우가 많다. 상한론의 약재 선택의 최적화 추구를 따라가지 못하는 점은 안타깝다고 할 수 있다.
금원사대가는 그 명성에 비해 실제 임상에서 쓰는 처방을 제시한 것에는 부족함이 많다. 이동원은 보중익기탕이라는 명방을 통해 이를 극복했지만 다른 의가들의 경우 화제국방의 여러 처방보다도 인용이 적게 되는 처방을 제시한 것이 하나의 증거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론적인 측면에서는 기여를 했다고는 하지만 의학의 근간은 안전성과 유효성이 우선이고, 이를 설명하는 이론은 이후에 따라오는 것을 감안하면 그 역할은 대가라는 표현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수많은 논문에서 어떤 중재법이 어떤 질환에 효과가 있는지를 평가하지만 정작 치료의 전 과정은 의사가 담당한다.
이론은 행위의 일관성을 담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새로운 치료법을 만드는 데는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인 현실에 직면해서는 화려한 이론의 무력함을 느끼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한국 한의학의 문제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특히 성리학 위주로 학문이 500여년간 발달해온 역사는 한의학에서도 이론체계가 구비되지 않으면 바로 쳐내는 폐단을 심어놓았다.
이론체계가 그럴듯하면 현실성과 상관없이 높게 보고 이론체계가 빈약하면 유효성 자체를 판단하는 데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도 다른 여러 지역의 의학과 충돌 및 수용을 거쳐가면서 발전해왔고 현대의학, 즉 서의와의 조율도 중서의회통이라는 과정을 거쳤다.
우리나라의 경우 배타적인 다른 학문이 있다면 충돌과 무시만 있고 수용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수용은 일부 선각자들이 세간의 비판과 우려, 시기를 극복하고 하나의 주류를 이루었을 때만 그제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때까지는 기존의 체계를 쉽게 안 바꾸려 드는 것이 현실이다. 보수적인 학풍이라면 학풍이다. 한방과 양방의 충돌도 그 연장선상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적절치 못했던 행동들도 반복된다. 동의보감 이후 온병과 중서의회통의 논의를 우리 내부에 끌어들이지 못한 것은 역사적 실책이다. 그 결과는 한의학 이론의 경직성과 제도적으로는 한양방의 소모적인 싸움이다.
반복을 원하지 않는 역사를 극복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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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특히 온병학), 사회문제, 경제경영 분야에 대해 글을 쓰는 한의사입니다.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펼쳐놓는 공간입니다.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