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는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사회의 변화에 선제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COVID-19 사태에서 목도했듯이, 사회 구성원의 생명에 위해가 가해지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의료는 전면에 나서게 된다.
이마저도 경제, 사회, 정치 등 다른 분야의 우선순위에 밀려 의료 본연의 주장을 내세우고 관철시키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더욱 높은 단계의 봉쇄를 주장하나 자영업자들의 경영난 가중 등으로 인해 이를 쉽게 수행할 수 없는 것이다.
감염병을 줄이는 것도 의학적인 시술과 처치가 위주가 아니라 몇백년전부터 사용해온 격리와 사람 간의 접촉을 줄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쓰이고 있다.
한의학과 중의학, 일본의 한방의학이 갈라진 분기도 의학 자체의 특성보다는 제국주의의 물결 속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선명해지고 그 과정에서 피지배자가 향유하던 모든 것들이 평가절하 당하는 과정이었다.
한 때 침이 부두술사의 주술과 별차이가 없다는 과학자들의 비판은 지금에서야 맹목적이고 오만한 발언임이 드러났지만 이렇게 되기 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다시 말해, 의학은 외부의 환경에서 이끌려 다니면서 발전을 했다. 현대의학은 세균학, 화학, 생물학의 발전에 힘입어 그 성과를 드러냈고, 한의학 또한 임진왜란과 각종 역병 등 사회적인 변화에 따라 발전해온 것이다.
평균 수명의 증가는 의학의 역할보다는 건축기술, 사회구조, 위생인식의 발달에 말미암아 좋아진 것이며, 농업기술 발달로 인한 반복적인 식량부족 사태의 해결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의학자들이 스스로 발전을 도모하려고 여러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나 그 속도는 외부의 변화에 따라 끌려온 것과 비교가 어렵다. 의료는 예전부터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분야였다.
한의학은 내생적 변화를 시도한 적 있는가?
한의학은 동의보감 이후로 중국의 온병과 중서의회통에서 일어났던 논의 중 일부가 교과서에 실려 있었고 임상현장에서는 치열한 논의가 없었다.
되려 양진한치니 사상의학과 사암침법이 한국의 고유한 이론이니 하는 원조론과 학문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시도만이 소모적으로 반복되었을 뿐이다.
사상의학이 독창적이라고 의미를 두는 임상가들도 있다. 지금으로 치면 뇌과학과 생리, 병리를 연결하는 시도이며, 그 시도 자체는 의미가 있으나 이런 이론 하나만으로 내생적 혁신을 이루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한의학의 내생적 혁신의 목적은 무엇인가?
답은 간단하다. 인류의 수명을 연장하고 질병 없는 삶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으면 된다.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한의학을 포함한 전통의학이 이러한 역할을 일부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전 세계적인 현상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보편적인 치료법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항생제는 감염으로 죽어나가던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다. 항생제의 발견도 중요하지만 대량으로 낮은 가격에 생산이 가능한 것이 주효했다.
지금 과연 어떤 한의약의 치료법이 암과 치매처럼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질환의 치료에 힘을 보탤 것인가?
효과가 없어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고, 있어도 대량으로 보급할 수 있는 체계가 될 것인가?
예를 들어 사향 10그램을 하루 2번씩 복용해서 치매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고 하면, 그것은 좋은 치료법이 될 것인가? 특허와 연구비용으로 인한 고가의 화학약물과는 다른 고민이 있는 것이다.
단일물질(Single compoud)은 한약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뛰어넘어야 하지만 넘기 힘든 딜레마다.
약재에서 어떤 성분을 추출해서 효과가 나타나면 그 물질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떤 작용을 하는 지 다 밝혀내야 한다. 단일 성분으로 해도 쉽지 않은 데 복합물질인 한약재는 더더욱 난관에 부딪히는 것이다.
하나씩 후보 비활성물질을 쳐내가면서 수많은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한의계의 내생적 혁신을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과 정책적인 방향은 다음과 같다.
먼저 정묘, 병자호란을 이유로 단절된 온병과 중서의회통의 논의를 내부로 가져와야 한다.
특히 온병이 중요하다. 온병은 같은 질환에 다른 성질의 약을 쓰는 예가 많다. 사상의학도 다른 체질약을 써도 낫는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체질 분류가 선명하지 않아 각자 같은 사람을 다른 체질로 보고 약을 써도 좋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같은 질환에도 다른 약을 써도 낫는다면 이는 각 약재의 특성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한약'이라고 분류해놓은 식물과 동물군의 공통된 효능이 있을 수 있다.
침과 뜸, 추나도 마찬가지다. 근신경의 작용에 개입하는 것도 있고, 공통적으로 심박변이도를 안정시키는 효과도 가지고 있다.
실험 결과들도 한약재가 대부분 항산화, 항염증, 항암, 항균 효과를 정도차는 있지만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글루타치온과 소염진통제와 항암약을 같이 사용하는 것이 한약과는 어떻게 다를 것인가? 다르다면 어디서 다를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시작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치료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지표들은 객관화를 해야 한다.
의료기기를 다 쓰자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인 선명성을 드러내는 데 좋을지 몰라도 한의 임상에서는 별 도움이 안 된다.
근골격계 환자에게서 골절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그나마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시다. 혈액검사는 지금 시행하는 데 불법이 아님에도 한약을 먹을 수 있는지 정도를 확인하는 데 쓰고 있다.
각종 혈액 검사 수치가 질병을 판별하는 데 쓸 수는 있어도 한의사의 치료행위를 규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은 못하는 것이다. 백혈구 수치가 높을 때 반드시 처방해야 하는 한약이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그것이다.
되려 맥진과 설진은 치료 방향을 규정하는 중요한 지표지만 여기에 대해서 의료기기를 만들거나 가져오자는 움직임은 적다.
근골격계 질환을 진단하는 데 용이한 초음파기기도 중고는 2천만원 이내로 구할 수 있고, 한의사용 맥진기도 맥파분석기로 현대의료기기지만 천만 원짜리 기기를 들이느니 오백만 원짜리 물리치료기 두어 개 더 들이는 게 낫다는 분위기다.
진단 영역에서 기계의 힘을 빌리는 것이 익숙지 않은 문화가 있고, 이는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이 당위성은 가지고 있어도 피부로 와닿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극복하려면 먼저 한의계 내부에서 기계의 힘을 써서 진단을 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적어도 한의약 분야의 기계를 활용한 검사를 국가 보험에 진입시키고 그게 어렵다면 비급여 항목에라도 진입해 있어야 한다.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높아서 어려운 환경이지만 각종 검사와 한약제제 중심으로 비급여 실손 보장을 이끌어 낸다면 시장이 생기고, 한방 의료기관에서는 활용도가 높아질 것이다.
한의계가 위기라는 말은 몇십년전부터 있었다. 의사가 선망의 대상이던 시절을 벗어나 국가 규제가 강화되고 경제 성장률이 떨어지는 환경이 의료계 전체에 초래한 영향도 있을 것이고, 한의계가 자체적인 경쟁력이 약화된 것도 원인일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냐는 물음이 계속 나오고 있고, 그 길은 간단하다고 본다. 대형화와 체계화다. 이를 위해서는 객관화가 한의계에 녹아있어야 한다. 이는 학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문화의 문제라고 본다.
한의계가 근거 있는 통일된 체계에 따라 진료를 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무엇을 따라야 할지 아직 진행중일 뿐이다. 이는 외부가 아닌 내부적인 혁신에서만 가능하다.
길이 멀더라도 갈 길이 있는 것이 낫다. 길이 멀다고 길이 없다고 여기지 않는 태도가 필요한 시기다.
'사회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큼한 맛과 기름, 음식 문화의 발달 (0) | 2022.04.26 |
---|---|
20대 대선 결과에 대한 소회 (0) | 2022.03.10 |
지식인의 책무 (0) | 2021.12.26 |
20대가 향유하는 문화와 산업의 변화 (0) | 2021.12.23 |
정치에 더 기대하실 게 있으십니까? (0) | 2021.12.14 |
한의학(특히 온병학), 사회문제, 경제경영 분야에 대해 글을 쓰는 한의사입니다.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펼쳐놓는 공간입니다.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