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이름난 지역요리를 들라고 하면 프랑스와 중국을 빼놓을 수 없다.
3대 요리에 맞추면 이탈리아가 들어가고 4대부터는 터키, 태국 음식이 회자되는 정도다.
우리나라 요리가 최근 급격하게 인기를 얻고 있지만 아직 요리 자체로는 프랑스, 중국, 이탈리아 요리의 위상에는 미치지 못한다.
요리는 문화의 반영이다. 문화를 따라 요리도 같이 퍼진다.
그러나 음식 자체의 풍부함이 받쳐 주지 못하면 문화의 크기에 비해 요리에 대한 인지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
원료나 요리법, 음식을 대하는 태도 등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맛의 다양성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
한의학에서 얘기하는 오미부터 시작해 맛은 짠맛, 쓴맛, 단맛, 신맛이, 자극으로는 매운맛이 있고 최근 연구로 인정받은 감칠맛과 지방 맛이 있다.
20-3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음식은 대부분 짜거나 달고 매운맛이 지배적이었다.
염분 섭취량은 예나 지금이나 세계 상위권이고 멕스코나 스페인과 같이 매운맛을 즐기는 나라 중 하나다.
커피도 고유의 시큼하고 씁쓸한 맛이 아니라 설탕을 잔뜩 넣은 단맛으로 먹는 것이 꽤 최근까지 일이었다.
10여 년 전부터 식후 아메리카노가 일상화되면서 쓴 맛을 즐기기 시작했고 지금은 에스프레소 데미타세에 원액 그대로 즐기는 것이 유행이 되고 있다.
감칠맛은 MSG에 의존하다가 최근 여러 재료를 활용해 자연적으로 내는 방법을 쓰고 있다.
아예 MSG를 쓰면 안 된다는 인식에서 좋은 재료의 맛을 살리는 의미에서 조금씩 가미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처럼 짧은 시간 내에 맛에 대한 선호도가 급격하게 바뀌어 왔다.
맛의 선호는 재료의 선호를 결정하며 다양한 맛을 선호하면 요리법도 같이 발전하기 때문에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선뜻 활용되지 않는 맛들이 있다. 바로 신 맛과 지방 맛이다.
이탈리아 요리에서는 신맛을 맡는 것이 발사믹 식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식전 빵을 찍어 먹는 정도로만 생각하지만 발사믹 식초는 숙성도에 따라 샐러드에서 고기, 아이스크림까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신 맛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우리나라 순창고추장이나 경주 법주처럼 발사믹을 대표하는 모데나 지역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 발사믹 식초는 IGP(Indicazione Geogratica Protetta), DOP(Denominazione di Origine Protetta)라고 한다.
IGP는 재료 정도, DOP는 재료뿐만 아니라 생산 및 최종 포장까지 그 지역에서 해야 한다고 간략히 구분할 수 있으며 DOP 등급의 발사믹 식초는 25년 산이면 거의 30만 원 이상 가격이 붙을 정도로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그만큼 신 맛에 대한 선호가 오래되고 다양하다는 의미이다.
좋은 발사믹 식초는 은은한 신맛과 단맛이 어우러져 요리의 풍미를 한층 끌어올린다.
기름 또한 마찬가지다. 이탈리아는 스페인, 그리스, 터키 등 지중해 연안 국가와 마찬가지로 올리브가 많이 생산되고 올리브 오일도 많이 섭취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마늘 파스타로 유명한 알리오 올리오도 사실 질 좋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의 산뜻하고 부드러운 맛이 마늘과 함께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좋은 올리브유는 각종 음식의 향을 풍부하게도 하면서 잡내를 눌러줘서 음식의 수준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포화지방산이 많은 동물성 지방과는 달리 불포화지방산과 항산화 물질이 많고 지방은 포만감을 빨리 주기 때문에 칼로리 조절에도 도움이 된다.
중국요리에도 식초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오래된 중국집에서 군만두를 시키면 같이 찍어먹는 간장에 새콤한 맛이 도는 데 중국 전통 식초가 들어간 것이다.
중국은 식초를 흰 식초, 향식초, 숙성 식초, 쌀식초로 구분하며, 지역별 4대 식초라 해서 산시라오천추, 전장샹추, 바오닝추, 용춘라오추가 유명하다.
중국음식에 대한 통념 중 하나가 기름지다는 느낌이 있을 정도로 중국요리에는 기름이 많이 들어간다.
주로 유채기름(카놀라유)이 많이 쓰이기는 하나 그 외에도 땅콩기름, 면실유 등도 있다.
재료의 특성에 따라 기름을 활용하는 노하우는 중국 요리만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요리는 조금 다른 형태로 지방 맛과 시큼한 맛을 활용한다. 바로 버터와 와인이다.
프랑스 요리도 느끼하다고 많이 하는 데, 상당 부분 버터로 맛을 낸다.
달팽이 요리로 유명한 에스까르고가 버터의 풍부한 지방 맛을 활용한 대표적인 요리 중 하나다.
식초도 사과식초나 와인식초도 활용하지만 식사마다 빠지지 않는 와인의 시큼한 맛이 음식에서 전체적인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식초는 상큼한 신맛보다는 시큼한 맛을 내는 데 특화되어 있다. 좀 심하게 말하면 빙초산의 희석액이라 볼 수 있다.
신 맛은 맛있고 기분 좋은 것이 아니라 상하고 맛없는 것을 표현하는 맛으로 인식된다.
밥이 쉬었다, 술이 쉬어 빠졌다, 나물반찬이 쉬었다와 같이 상해서 먹을 수 없다는 표현이 대다수이다.
지방은 그동안 다이어트의 원흉으로 천대받아 왔다. 대신 탄수화물 중심의 식단이 되면서 중성지방이 많이 쌓이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공중파를 통해 지방이 건강에 좋다는 프로그램이 나가고 나서야 방탄 커피니 케토 다이어트니 하는 지방 중심의 식단이 알려졌다.
음식은 문화고 문화에는 우열이 없다. 그러나 문명에는 우열이 있다.
요리의 수준은 문화이면서 문명의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요리의 수준은 재료로부터 시작하고, 재료를 얼마나 다양하게 잘 활용하는지가 중요하다.
소고기에 대한 요리법은 우리나라만큼 다양한 곳이 드물다.
버리는 곳 없이 모두 사용하며, 부위를 다양하게 구분하며 요리법도 다양하다.
맛의 풍부함은 그보다 더 상위의 개념이다.
시큼한 묵은지나 우리가 부쳐먹는 전과 같은 요리에 이미 신 맛과 지방 맛이 잘 나타나 있다.
김치와 된장, 고추장의 발효음식 문화는 당연히 식초에도 있다.
국산 참깨로 저온 압착 방식으로 짜낸 참기름은 바로 먹어도 될 만큼 고소하고 맛있다.
다만 지금 대중의 관심이 그만큼 크지 않을 뿐이다.
다행인 것은 맛있는 맛은 빠르게 퍼지고 사람들이 찾는다.
한국 음식의 수준을 높이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맛있고 풍부한 신 맛과 지방 맛을 찾아서 요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요리를 좋아하고 남에게 밥을 해주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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