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인연교탕
행인, 연교, 절패모 각 6g, 길경 4g, 박하 3g, 감초 1g
상한론은 표증 또는 표리간 겸병에 대해 상당히 상세하게 기재하고 있다.
온병은 생각보다 표증에 많은 것을 할애하고 있지 않다. 위기영혈 변증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상한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과 극복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상한론으로 처리되는 것은 별도로 기록하지 않은 경우도 많고 상한론 처방을 그대로 쓰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상한론의 약점인 진액 보존의 문제로 인해 새롭게 처방을 구성한 경우들이 있다. 온병조변의 은교산과 상국음이 대표적인 경우고 의안에서 자주 쓰인 행인연교탕도 그중 하나이다.
처방 구성을 보면 알겠지만 은교산과 연결되는 처방이다.
양격산이나 형개연교탕에서 연교, 길경, 박하를 쓰는 단서가 있고, 온병에서 많이 쓰는 행인과 절패모가 추가되면서 위와 같이 가벼운 기침과 감기 증상을 동반하는 증후군에 쓸 수 있는 처방이 구성된 것이다.
위생환경이 열악한 상태에서 걸리는 감기와 지금처럼 위생상태가 좋은 데 걸리는 감기는 차이가 있다. 바로 오한발열의 정도 차이다.
계절 변화, 일교차, 스트레스 등으로 면역력 저하가 나타나면 감기가 쉽게 걸리는 데, 주위 환경에 세균과 바이러스가 많다면 우리 몸도 싸워야 할 적이 많기 때문에 체온을 올리게 된다.
지금은 면역력이 저하되는 원인은 많아졌지만 위생상태가 좋아지면서 예전처럼 발열이 크게 동반되는 감기보다는 잔기침이나 몸살이 주증상인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지난 100년간 미국인들의 체온이 낮아지고 있는 것이 위생상태 개선으로 인한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이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심한 감기몸살이라면 상한론의 갈근탕을 고려해볼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 감기환자들의 가벼운 잔기침 증상에는 위 처방을 기초로 가감한 약을 구성해 상비약으로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향부소요산
당귀, 복령, 시호, 울금, 작약, 향부자 각 4g, 감초, 박하, 생강 각 2g
소요산은 시호가 잘 쓰이지 않는 후세방에서 시호가 군약인 약이다. 온병에서는 시호의 활용이 더더욱 위축되지만 소요산의 효능은 인정해서 쓰임이 한 번씩 나타난다.
소요산의 적응증은 한열왕래이고, 확장해서 신경정신 증상이 동반되는 혈증, 담증이다.
전통적인 소요산은 백출, 작약, 복령, 시호, 당귀, 맥문동, 감초, 박하, 생강으로 구성되어 있는 데, 이 중 백출과 맥문동을 빼고 울금과 향부자가 들어간 처방이 향부소요산이다.
후세방인 소요산은 고방과 달리 가미가 다양하게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이렇게 원방을 수정한 것이 의미가 있나 싶지만 약재 하나를 개별 처방으로 보는 고방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구성을 참고하는 게 의미가 있다.
울금은 서늘한 성질의 중상초 활혈거어약이다. 전통적인 어혈약인 도인, 목단피 등이 하초를 병위로 잡는 데 비해 울금이나 강황은 중상초에 작용한다.
적응증도 도인이나 목단피나 대장이나 자궁의 하혈증상, 소복만통에 대응하는 데 비해 울금이나 강황은 심복결통이라는 다른 부위의 적응증을 가지고 있다.
향부소요산도 시호와 복령, 당귀와 작약을 뼈대로 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진액 소모의 우려가 있는 백출과 열을 끄는 효능이 겹치는 맥문동을 빼고 대신 해울 작용을 강화시키는 향부자와 중상초 혈증 상부 복통에 대응하는 울금을 넣은 것이다.
향부소요산이라 이름 붙이긴 했지만 의안에서는 가미소요산도 많이 처방이 되었고 백출은 상당수 감미하는 경우가 많다.
소요산은 처방 구성이 상당히 느슨한 편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당귀작약산에 시호를 가미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청강의감에도 청간소요산이라 하여 향부자가 군약인 소요산 가미방이 있다.
향부소요산은 처방의 정밀성을 어디까지 추구할 수 있을지에 대해 화두를 던져주는 것도 있으며, 처방은 결국 의사가 결정하기 나름이라는 조금은 무책임한 생각도 들 수 있다.
한약 자체가 효과적일 수 있다. 약재수만 20-30가지씩 처방하고도 명의소리를 듣는 한의사도 있다.
그럼에도 처방의 간결함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자는 처방의 스타일이라고 하기도 한다.
필자는 이미 수많은 건강기능식품과 약에 찌들어 살고 있는 현대인들을 위해서 간결한 약 처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약은 음식이 아니다. 한약도 마찬가지다.
이미 수많은 약 또는 약에 준하는 건강기능식품 또는 음식들을 섭취하고 있는 것이 현대인이다.
소화기능의 한계를 다 쓰고 있고, 예전처럼 약미가 많은 것이 보하는 의미라도 있던 시절과는 다르다.
몸의 한정된 약 처방 용량 내에서 간결한 처방을 통해 치료의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것이 현대를 사는 한의사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처방 구성의 들고남을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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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특히 온병학), 사회문제, 경제경영 분야에 대해 글을 쓰는 한의사입니다.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펼쳐놓는 공간입니다.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