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다 보면 책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독자로서의 관점뿐만 아니라 책을 만드는 사람의 관점이 생긴다. 수 많은 책들이 놓인 서점에서 어떤 책을 집어서 열어보고, 계속 읽고 싶어서 사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똑같지만 판단 기준이 달라지는 것이다.
대부분 독자들은 서점 입구 바로 옆에 있는 베스트셀러 가판대의 책들을 먼저 살펴볼 것이다. 알만한 사람이 쓴 책이거나 관심 있던 주제면 손길이 가고 한 번쯤 열어볼 것이고, 거기서 매력을 느끼면 좀 더 읽거나 책을 사게 된다.
그 다음에는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이 모인 곳으로 이동한다. 대부분 경영경제나 자기계발 코너가 가까이 있다. 특별한 목적 없이 서점을 찾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분야이기도 하다.
표지는 화려하고 홍보문구는 자극적이다. 저자의 사진을 넣어놓거나 아마존 베스트셀러를 번역했다고 하면 눈길이 좀 더 간다. 어디 신문사나 협회의 상이라도 받았다고 하면 좀 더 관심을 두고 책을 살피게 되고, 대부분 그런 책들이 각 코너의 입구에서 독자들을 맞이한다.
모든 책이 세워져서 책등만 보이게 꽂혀있는 도서관과는 달리 서점에서 책의 앞면이 보이도록 세워져 있으면 그 책은 팔릴만한 책이라고 서점 또는 출판사가 판단한 것이다. 앞면이 보이지만 누워 있으면 서 있는 책보다는 덜 밀어주는 책이다.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책을 내는 데 힘을 다 쓴 책들은 컴퓨터에서 검색해서 개별 서가에서 일일이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책을 쓰기 시작한 뒤부터 달라진 것이 있다. 책이 무슨 목적에서 쓰였나를 보는 습관이다. 세상의 수많은 책을 분류하는 기준들이 있다. 문헌정보학과에서 배우는 각종 분류체계가 그것이다. 나는 간단하게 분류한다. 광고목적인가 아니면 지식전달용인가?
각종 패션잡지나 경영잡지의 앞부분이 광고판으로 기능하듯이, 서점 자체가 어느 순간 큰 광고판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차별점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하나로 책을 쓰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외모도 돋보이고 스펙도 좋은 방송 출연자들이 저자 스펙을 넣기 위해 수천만원을 들여 대필도 아닌 책 쓰기 멘토링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경영경제 쪽은 이런 특성이 뚜렷하다.
강의 초빙을 노리거나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체를 광고하고 크게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아 사업을 하는 데 활용한다. 이런 책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지식전달이 목적이다. 소설과 같은 문학은 읽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어떻게 광고책과 지식전달 목적의 책을 분류하는가? 책 한권을 온전히 만들려면 A4 200장 정도의 원고가 필요하다. 이 정도의 원고가 있어야 손에 잡힐만한 크기의 책 300페이지 이상을 만들 수 있다. 저자가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300페이지를 채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보다 적은 원고로는 잡지나 노트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책처럼 만들기가 어렵다.
책을 광고목적으로 내는 사람은 꼼수를 쓰기 시작한다. 책의 여백을 많이 둔다. 여백이 너무 많으면 보기 싫기 때문에 별 의미 없는 그림이나 사진을 넣는다. 굳이 표가 없어도 될 것 같은 부분도 여백이 잔뜩 들어간 표를 넣는다. 그래도 내용이 없기 때문에 책의 크기를 줄인다. 책 크기가 핸드백 정도의 가방에 넣기 좋게 나온다면 두 가지다. 잘 팔리는 데 가지고 다니고 싶거나 여행서적처럼 독자를 배려해 새로 구성했거나 그냥 내용이 없는 것이다.
글자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작은 글씨를 넣어야 내용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글씨가 너무 작으면 읽기가 힘들지만 어차피 그런 책을 사는 사람들이 자세히 읽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제목은 있어 보이게 쓰는 경우가 많다. 책의 내용이 아닌 책 그 자체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건드리기 위함이고, 실제 목적은 다른 데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다.
모든 책이 이렇게 딱 나눠지지는 않는다. 광고목적의 책도 나름 충실할 수 있고, 지식전달을 목적으로 쓴 책도 저자가 유명세를 얻어 강의도 하고 사람들에게서 일을 받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처음 목적이 무엇인지에 달렸다. 광고판으로서의 출판과 지식전달을 위한 출판은 태생부터 다르고 형태가 다르다.
의도와는 상관없이 책이 많이 나오면 좋지 않나 생각도 할 수 있다. 양과 질이 모두 만족되는 상황이라면 책이 많이 나오는 것이 좋다. 그러나 대부분의 책들이 광고판으로 전락한다면 지식전달과 같이 책 본연의 역할을 하는 서적들도 도매금으로 나쁘게 평가된다.사람들이 모바일 환경의 글 읽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독서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좋은 영향은 아니다.
출판사는 독자들이 잘 읽는 책을 만들고 찍는다. 독자들이 광고와 지식전달 중 어느 것을 목적으로 나온 책인지 판단하는 능력만큼 확실한 영향력은 없다. 필자의 책도 위 기준에 미달되지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도 좀 더 좋은 책들이 나오기 바란다. 책만큼 경제적으로 세상에 대한 관점을 넓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사회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낡아가는 일본, 슬퍼지는 청춘의 기억 (0) | 2023.01.27 |
---|---|
국민건강보험의 종말 (1) -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 (0) | 2023.01.15 |
세계화의 종말 (0) | 2022.09.06 |
20년전 미국-중동의 관계가 한반도로 옮겨왔다 (0) | 2022.05.22 |
배려의 무게와 결혼 (0) | 2022.05.05 |
한의학(특히 온병학), 사회문제, 경제경영 분야에 대해 글을 쓰는 한의사입니다.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펼쳐놓는 공간입니다.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