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출산 시대, 결혼은 더 이상 큰 의미 없는 소수의 관심사일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가족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친한 친구의 아버님마저도 '혼자 사는 것이 괜찮은 것인지 생각해 봐라'라고 제 친구한테 얘기해서 저한테 들릴 정도니 적어도 제가 아끼는 사람들의 바람 중 하나가 결혼이 맞고, 이를 미루거나 포기하면 안타까워할 것입니다.
저는 결혼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좋은 사람 있으면 결혼할 수 있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가졌을 뿐입니다. 그러다 최근 다시 생각을 해 봤습니다. 왜 사람들을 소개받고 만나도 아직까지 결혼을 못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제 나름대로 사회학적인 분석을 해 봤습니다.
결혼식을 하면 신랑신부가 하는 선서가 있습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때까지',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와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제 고찰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결혼은 '둘이 오랫동안 같이 살자'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하는 이유는 두사람의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혼자 살고 싶다고 하면서도 이름도 모르는 다른 사람을 통해 생산된 재화와 용역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혼자 살고 싶다의 다른 말은 '스트레스 안 받는 인간관계만 유지하면서 살고 싶다'입니다. 그만큼 인간관계를 맺어야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이 본능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최근 10년, 길게는 20년동안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출산율이 낮아졌습니다. 코로나가 지나고 인플레이션을 체감하면서 그때가 좋은 시절이라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가도 안정적이고 성장도 꾸준했던 시기였습니다. 개개인의 생존도 상대적으로 용이했습니다.
혼자서 일하고 벌어서 작은 집한칸에 따뜻한 겨울과 시원한 여름을 날 수 있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난방비만 40만 원 이상을 혼자 감당해야 합니다. 끝없이 올라가는 각종 생활비를 고려하면 1억 연봉을 받는 다고 해도 혼자서는 부담스럽습니다. 같이 살면 부담이 줄어듭니다.
'둘이 오랫동안 같이' 살려면 몇가지 갖춰야 할 요소들이 있습니다. 저는 크게 5가지로 정리했습니다.
1. 건강
오랫동안 같이 살려면 두 사람이 건강하게 장수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아프면 되려 배우자가 부양을 해야 합니다. 혼자 살 때보다 생존하기에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간병하다가 가족이 흩어지는 일은 슬프지만 드물지 않습니다. 그만큼 건강이 중요합니다.
2. 경제력
결혼을 해서 일정시기가 지나면 각자 사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고 합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집을 장만하고 직장이 바뀌는 것은 비용입니다. 다른 말로 결합비용이라고 할 수 있는 데, 결코 작지 않으며 집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저출산의 원인으로 높은 집값이 지목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새로운 가족이 생기면 초기에 양육 비용이 들어갑니다. 나중에는 한사람의 몫을 할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계속 돈이 들어갑니다. 경제력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3. 자녀
사랑의 유통기한이 900일정도라고 보는 연구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한 분들은 아이들과 부부간의 정 때문에 살아간다고 합니다. 자녀가 있는 부부보다 자녀가 없는 부부의 이혼비율이 3배나 높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꽤 많은 부부들이 자녀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이혼했다고 말합니다. 둘만의 사랑으로 '오랫동안 같이'의 약속이 이뤄지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자녀가 있다면 때로는 강제적으로, 때로는 사랑의 촉매로서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생존의 연장으로서도 출산은 중요합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생존은 DNA의 보존을 의미합니다. DNA를 자기 몸에 보존할 뿐만 아니라 자녀에게 DNA를 전달하는 것도 생존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유사성
'같이'를 실천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이 한 집에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크게는 사상부터 작게는 일상생활의 습관까지 다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를 극복하는 데 두 사람이 얼마나 닮았냐가 중요합니다. 부부는 닮아야 잘 산다고들 합니다. 닮은 사람들끼리 만나고, 만나서 닮아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치, 종교 같은 무거운 주제부터 취미, 기상시간, 식성과 같은 일상까지 유사성이 확보될수록 서로 잘 이끌리고 관계를 지속하기에 유리합니다.
연애와 결혼의 차이도 여기서 비롯됩니다. '서로 통한다'는 느낌으로 연애를 시작합니다. 개인에 따른 편차가 있어서 사소한 것이라도 비슷하면 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애는 유사성의 확인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결혼도 유사성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시작 단계일 뿐입니다.
10년간 연애를 했는 데 헤어지고 나서 결혼은 다른 사람과 3개월만에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연애에서 스킨십이 어려우면 대부분 관계의 종말을 의미하지만 부부에서는 변변한 스킨십 없이 10년간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연애가 성립되는 조건과 결혼이 성립되는 조건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5. 신뢰와 이해
'같이' 살기 위해서는 서로의 다른 면을 이해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해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신뢰를 통해 극복해야 합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도 둘을 위한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신뢰와 이해는 두 사람의 노력으로 만들어집니다. 만들어지기는 어렵지만 무너뜨리기는 쉽습니다. 외도를 했다고 바로 이혼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연애와 달리 다른 요소들과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가정을 지킨다'라고 표현합니다. 자식이 대표적이고 재산분할과 같은 경제적인 측면이 큽니다. 자식이 장성하거나 경제적인 문제만 해결되면 바로 이혼하기도 합니다. 황혼이혼이 많은 이유입니다.
이렇게 결혼을 시작하고 유지하는 요소를 나열했지만 사람마다 다른 기준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일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제 또래의 지인들 중에는 화려하게 결혼식을 올리고도 신부측의 정신질환으로 결혼을 없던 것으로 돌린 경우도 있고, 가족 중에 아무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는 데 임신한 아내를 폐암으로 잃은 친구도 있습니다.
사실혼으로 살다가 헤어지고 혼자서 딸 키우는 경우도 있고, 제가 사회를 봐준 결혼을 올리고도 재혼한 친구도 있습니다. 부모가 둘 다 전문직인데 아이가 아파서 한달에 몇백을 치료비로 쓰기도 합니다. 물론 별 탈 없이 잘 사는 부부들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입니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알기는 어렵지만, 자신이 원하는 미래가 되도록 노력할 수 있습니다. 알 수 없는 미래와 만들 수 있는 미래라는 둘 사이의 긴장감에서 삶의 원동력이 생기며, 결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직 미혼이니까 생각이 많아 길게 글을 쓴다는 부끄러움과 함께 글을 마칩니다.
'사회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PA 간호사와 의대 정원 증가의 상관관계 (0) | 2023.02.13 |
---|---|
결혼식은 스드메, 장례식은 수관함 (수의, 관, 유골함) (0) | 2023.02.11 |
낡아가는 일본, 슬퍼지는 청춘의 기억 (0) | 2023.01.27 |
국민건강보험의 종말 (1) -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 (0) | 2023.01.15 |
세상의 모든 책은 두 가지 중 하나다 (0) | 2022.12.29 |
한의학(특히 온병학), 사회문제, 경제경영 분야에 대해 글을 쓰는 한의사입니다.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펼쳐놓는 공간입니다.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