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8대 대선에서 논란이 되었던 것 중 하나가 '증세 없는 복지'였습니다. 복지예산은 날로 증가하는 데 현재 세금 규모로 충당이 가능하겠느냐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이 논쟁은 어느 순간 쑥 들어갔습니다. 10년 전 얘기였고 증세가 바로 현실화될 것 같았으나 지금은 더 이상 논의가 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 세수는 롤러코스터를 탔습니다. 정부의 세수 예측이 몇 년 사이에 너무 남거나 너무 부족한 것을 예측 못해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갑자기 나라가 부자가 되어서 세수가 늘었고 그 사이에 돈이 없어져서 세수가 부족한 것일까요? 유동성의 측면만 봐서 거칠게 얘기하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정리하면, 예전부터 세수 부족이 예측되고 있었던 차에 코로나 극복을 위해 풀렸던 유동성이 각종 자산의 가치, 특히 부동산 가치를 크게 올렸고 그 과정에서 세금이 많이 걷혔습니다. 양극화와 함께 이에 대한 반발로 정권교체가 되었고, 부동산 세금을 줄이자마자 정부는 사상 최대 규모로 한국은행에 돈을 꿔야 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증세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코로나와 인플레이션으로 잠시 관심에서 멀어진 것 뿐입니다. 문제는, 앞으로 부동산을 부양해서 거래를 일으켜 세수를 충당하는 것이 가능할지 여부입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부동산도 거래절벽이었고, 코로나가 끝나고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면서 다시 거래절벽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거래를 안 하니 부동산 관련 세금도 줄어듭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출생률은 급락하고 노인인구는 급격하게 증가합니다. 각종 복지예산의 수요 증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당장 최근 5년간 노인 진료비가 15조 이상 증가했고, 연금 개혁은 피부에 와닿는 이슈가 되었습니다. 연금은 더 내고 덜 받는다는 방향성이라도 있지만,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국가 예산을 낼 사람은 줄어들고 받을 사람은 많아지는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방법은 두가지 입니다. 하나는 받을 사람이 많아지더라도 효율적인 정책 집행, 혁신적인 기술 도입 등으로 비용을 줄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세금 낼 사람을 늘리고 더 많이 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별개가 아니라 동전의 앞뒤처럼 같이 갑니다.
우리나라의 세금에 대한 얘기는 부자로 통칭되는 고소득자나 대기업에 대한 증세/감세에 치우쳐 있습니다. 일부에서 40%에 달하는 면세자 비율을 줄여아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동안 대기업, 고소득자, 다주택자 등을 부자로 규정한 후 세금을 늘리는 방향으로 갔습니다. 면세자 비율을 줄이게 되면 바로 표의 손실이 생긴다는 정치적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부자의 숫자는 적고 실질적 면세자는 많고, 부자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신뢰가 높지 않은 환경에서 선호되었던 방법이었습니다.
지금의 인구구조는 부자증세와 면세자 감소가 둘다 일어나야 합니다. 부자들에게만 세금을 더 걷는다고 해서 해결될 성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구감소가 빠른 속도로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부자가 더 내고, 안 내던 사람도 내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효율화는 필수입니다. 일부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으로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은 정부 정책 집행의 투명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증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 선뜻 동의를 못하는 것은 불투명하고 비효율적인 정부의 정책 집행입니다. 한마디로 '돈 쓰는 것을 믿을 수 없다'입니다. 그동안은 세금 부담이 많지 않았으니 정부정책의 비효율과 불투명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각 주민센터에는 민원인들이 납세자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업무부하가 걸리고 있습니다. 근로자의 면세율이 40%이니 실제로는 세금을 안내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도 그렇습니다.
진짜 세금을 만원이라도 내기 시작한다면 납세자의 권리 주장은 단순 민원이 아니라 정부 정책의 비효율과 불투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심판이 동반될 것입니다. 그 시작은 비용이 많이 드는 정치체계의 혁신으로 보입니다. 진정한 시민사회로 가는 길이지만, 사회구조를 규정하는 세금의 체계를 바꾸는 것이니 논란과 진통은 피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정치의 역할이 필요할 것입니다.
결국 증세입니다. 증가하는 복지 수요와 감소하는 세원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당장은 아무도 여기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싫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5~6년 정도 지나면 이 논의를 직시하지 않은 대가를 치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 대가가 너무 커지기 전에 논의가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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