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대한 반응이 뜨겁습니다. 의사협회와 환자 모두 만족하지 못하는 내용들이 있으며, 가장 쟁점인 의대정원 문제는 증원 원칙만 확인하고 구체적인 숫자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정책 내용은 의대 정원 증원을 전제로 나름 정부에서 의사들을 대상으로 채찍과 당근을 같이 섞어 놨습니다. 대부분은 이전부터 논의되던 내용을 대통령이 직접 확인한 정도입니다. 당근이라고 하면 의료사고 과실 경감이 대표적입니다. 의사들은 실효성을 문제 삼고 있지만 의료계의 숙원임은 분명합니다. 졸업 후 일정기간 수련을 의무화한 것은 기존 의사들과 신규 의사들의 입장이 갈릴 부분입니다. 기존 개원의 입장에서는 공급을 줄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의료는 의료만의 문제가 아니라 온 나라가 골병이 들고 있는 수도권 집중화 부작용 중 하나입니다. 일제시대부터 한지의사제라 해서 의료 자원이 부족한 지역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의사제도를 만들었을 만큼 의료 불균형은 오래된 문제입니다. 의료진도 사람인지라 인프라 잘 갖춰져 있는 곳에서 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에 대한 대책 마련도 오래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수도권 과밀화라는 더 큰 사회문제에서 파생된 것이라 의료문제로만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역의사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의지가 아니고서야 의료 자원의 집중은 막기 어렵습니다.
제가 관심이 갔던 부분은 필수의료의 수가 인상 재원에 대한 것입니다. 보상체계 공정성이라는 목적으로 10조원을 투자해 필수의료 수가를 올리고, 실비를 근간으로 커졌던 도수치료 등 비급여 진료를 혼합진료 금지로 제한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피부 미용 시술은 아예 자격 범위를 개방하는 정책을 내놨습니다.
필수의료 수가인상은 일본의 사례를 따라갈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그 재원이 의문이었습니다. 일본은 국가에서 건강보험료의 30%까지 지원하는 데, 우리나라는 15% 정도만 지원했고, 그마저도 세수부족으로 늘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었습니다. 정부는 20조 가량 쌓여있는 건강보험 적립금을 사용한다고 발표했고, 몇 년간 흑자였으니 괜찮다는 식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 적립금 소진은 오래전부터 예정된 미래입니다. 낼 사람은 적고 받을 사람은 많은데 건보료는 함부로 못 올리니 의사들에게 주는 수가를 줄이고 적립금을 사용해서 메꿔 왔습니다. 적립금은 2030년 정도에 고갈될 것으로 예측되는 데, 정부 정책을 보니 어차피 고갈될 거 필수의료에 몰아줘서 의료 체계를 바꾸는 데 쓰기로 한 것 같습니다. 이 정책이 실제 어떻게 시행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이대로라면 건강보험 적립금 조기 소진은 확정되었습니다.
적립금만으로 필수의료가 얼마나 개선될지도 의문입니다. 건강보험 전체 규모가 80조 약간 안 되는 데, 5년간 10조를 쓴다고 했으니 1년에 2조 정도를 나눠서 쓸 것입니다. 80조 규모에서 2조 더해서 쓴다고 필수의료가 충분히 보충될지는 의문이지만, 2조로도 부족한 돈은 소위 '비필수의료'에서 빼야 할 것입니다. 제일 먼저 동네의원 수가부터 건드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각종 경증 질환에 대한 수가를 줄여 필수의료에 밀어 넣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는 쓰러지거나 그 정도로 아파야 병원에 갈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일부 부유한 환자들은 개인 보험을 들거나 비급여 치료비를 내면서 여유 있게 예약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증상에 따라 알아서 약국에서 판매하는 약으로 버티거나 지독한 대기를 감내하면서 급여 치료 전문 병원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민영화라는 표현만 안 썼지 보험회사와 제약회사의 규모가 커질 것입니다. 동네병원들도 양극화될 것입니다. 혼합진료까지 금지하면 아예 공장식으로 대규모로 저렴하게 빨리빨리 치료를 하는 소수의 병원과 완전 예약제로 의사와 직원 몇명으로 구성되어 비급여진료로 꼼꼼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나뉠 것입니다. 동네병원 숫자 자체가 줄어들 것입니다. 필수의료를 담당할 대형병원에 수가를 올려주면 개원의들은 경영 리스크를 지고 개인 병원을 하느니 속 편하게 적당한 급여를 받고 해당 병원 봉직의를 선택할 것입니다.
어디서나 저렴한 비용으로 충분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시대는 한때의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지금은 가벼운 질환을 치료할 때는 동네병원을 선택할 수 있는 대신 치명적인 병을 고치지 못하고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고, 응급실을 전전하고 소아과 오픈런을 하는 게 현실입니다. 앞으로는 치명적인 질병은 어떻게 병원으로 실려가서 처치를 받겠지만 동네에 편하게 갈 수 있는 병원은 보기 힘들어 질 것입니다. 선택의 문제입니다. 후자를 가야 할 방향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지금,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과 궁금증이 같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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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특히 온병학), 사회문제, 경제경영 분야에 대해 글을 쓰는 한의사입니다.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펼쳐놓는 공간입니다.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