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산가치 평가절하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찰스 굿하트 교수 등 일부 지식인들은 코로나 이전부터 세계 인구변동에 따라 저금리, 저물가 시대의 종언을 고하고 일반적인 금리와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살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고, 이는 우리 현실에서 실감하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해 우리가 가진 모든 자산과 서비스를 유통되는 모든 돈의 양과 매칭을 시키면 각각의 가격이 나오는 데, 코로나 이전 20여 년간은 베이비붐 세대의 등장, 중국과 동유럽에서의 대규모 노동인력 공급이 있었고 이에 발맞춰 미국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통화가 풀렸습니다. 이처럼 통화량이 많이 풀리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동반되지만 참여한 노동력들이 적게 쓰고 많이 벌면서 일종의 은행 역할을 하게 되면서 인플레이션 없이 성장하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고용 없는 성장'이 새로운 정상이라고 여겼습니다.
시간이 지나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를 하면서 저축을 헐거나 국가 재정을 통해 돈을 쓰는 존재가 되었으며, 세계화의 종말과 코로나로 대규모로 공급되던 노동력도 옛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가정에서 앞으로 금리를 평가한다면, 쉽게 금리를 내릴 수 없을 것이며 그것도 꽤 긴 기간 동안 고금리(이마저도 최근 200년을 봤을 때 크게 높은 수준이 아니라고 합니다.)에 적응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금리가 높아지면 시중의 돈이 은행으로 흡수되고, 대출금리가 올라가면서 자금조달이 어려워집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대출로 자산이 형성된 비율이 높은 경우 이자 갚다가 번 돈 다 쓰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이미 1년여 전부터 부동산과 같은 자산가치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연관된 사람이 많아서 정치인들은 일부 자산에 대해서 하락 저지를 시도 하려고 하지만 가능할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나마 인기 있는, 눈에 보이는 유형자산은 어떻게 할지 논의가 진행이 되겠지만, 지금 제가 걱정되는 것은 각종 무형자산에 대한 평가절하입니다. 무형자산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가 향유하고 있던 삶의 양식을 의미합니다. 무형자산은 좁게는 특허나 상표권 같은 지식재산권에서 회사의 직무만족도, 직원자발성 등을 의미하지만, 좀 더 확장하면 의식주, 정치, 교육, 종교,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노하우, 인적자원, 조직문화, 의사전달체계, 암묵지(Tacit knowledge)를 포함합니다. 유형자산은 실물이 남아 있지만, 무형자산은 실물이 없기 때문에 사람을 통해 전달되어야 합니다. 자산의 가치가 인구 감소와 연동되어 일어나는 현실이라면 무형자산을 향유하는 사람을 줄어들고 어느 순간 잊힐 것입니다.
제가 드립커피를 하는 카페를 간 적이 있습니다. 아파트 상가 지하에 있는 곳인데, 프랜차이즈도 아닌데 특이한 원두들을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사장님은 연세가 꽤 되셨는 데, 얘기를 들어보니 우리나라에 드립이 처음 들어올 때부터 활동을 하셨다고 합니다. 교육도 도맡아 하고 유명인들도 배우러 왔던 적이 있다고 회상하시는 데, 정작 해당 카페나 교육 시설을 물려줄 사람이 없어서 고민하시고 계셨습니다. 요즘에야 드립커피는 소수의 문화이고, 대부분 저가커피나 프랜차이즈 커피를 마시고 아니면 집에서 캡슐 커피를 마시니 손 많이 가고 배울 것도 많은 드립커피가 잊히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드립커피가 커피맛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려줄 사람이 없어서 잊히는 것, 그래서 어느 순간 흔적도 없어지는 것은 이런 무형자산들이 매우 취약합니다. 단순히 커피뿐만 아니라 정치 세력, 기술 노하우 등 사람 사이에만 전달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받아줄 사람이 없어서 잊힐 위험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일부 발 빠른 분들은 유튜브 등을 통해서 기록을 남겨놓기도 하지만, 한계는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어서 더 이상 필요 없어진 무형자산을 굳이 신경 써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행은 돌고 지금 필요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미래의 어느 순간 없어져서 아쉬워할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물건들로 골머리를 썩이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집안 정리 및 간소하게 생활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미니멀리즘이라는 이름이 붙어 유행을 탔습니다. 인플레이션으로 물건값이 올라 물건이 귀해진 지금 미니멀리즘을 반대하던 맥시멀리스트(Maximalist)들이 생활하기에 좀 더 유리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급격한 변화가 수축을 향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다시 어느 순간 팽창을 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가지고 갈 유무형의 자산들이 취사선택을 당할 것입니다. 유형자산처럼 무형자산도 중장년층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청춘이 녹아있는 무형자산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내놓아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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