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의 금리인하가 미뤄지고 있다는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이전부터 금리인하가 꽤 오랫동안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이처럼 현실화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금리의 향방은 물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물가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성에 달려 있습니다. 물건과 서비스가 저렴하면 물가는 내려가고 그 반대라면 올라갑니다.
생산성을 규정하는 요소는 자본, 토지, 노동력, 시간, 기술 수준 등이 있습니다. 이 요소들이 풍부하면 생산비용이 떨어지고 생산량이 늘어나니 물가는 내려가고 금리도 내려갈 것입니다. 그러나 금리인하가 상당기간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만큼 왜 그런지 설명하는 시각을 하나 소개하고자 합니다.
런던 정치경제대 찰스 굿하트(Charles Goodhart) 교수는 2019년에 '인구 대역전'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코로나가 오기 전이고, 세계는 20여 년간 저물가와 저금리, 경제성장의 골디락스 경제를 누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인플레이션은 역사책에나 나오는 얘기로 치부되었습니다. 그때 굿하트 교수는 인구 구조의 변동으로 인해 다시 인플레이션을 맞이할 것이라는 예측을 했습니다.
근거로는 인구 구조의 변동을 들었습니다. 지난 200여 년을 보면 3~5%의 금리는 그리 높은 금리가 아니라고 합니다. 지난 20여 년이 인구학적으로 매우 특이하게 노동인구가 대규모로 공급되었습니다. 중국의 농민공, 동유럽의 노동자들, 각국의 베이비붐 세대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했고, 이에 발맞춰 통화량을 대폭 늘렸음에도 인플레이션이 없이 저물가, 저금리를 유지했다고 굿하트 교수는 분석합니다.
일을 하면 대부분 버는 것보다 적게 씁니다. 다시 말해 저축을 하면서 들어오는 돈이 나가는 돈보다 많습니다. 늘어난 저축은 줄어든 통화량을 의미합니다. 시간이 흘러서 노동인구들은 고령화가 되어서 노인이 됩니다. 노인들은 자신들의 저축 또는 국가 복지 체계 내에서 번 돈보다 더 쓰게 됩니다. 일을 못하거나 하더라도 저임금 노동을 합니다. 그에 비해 쓴 돈은 버는 돈보다 많습니다. 의료비가 대표적입니다.
통화량은 쉽게 얘기하면 '돈이 얼마나 돌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통화량을 줄이는 방법은 돈을 폐기하거나, 돈을 쓰지 않고 쌓아두면 됩니다. 높은 금리는 가계, 기업, 정부와 같은 경제주체 모두의 지출을 줄입니다. 가계나 기업은 대출을 받기에도 부담스럽고 투자를 하자니 예금만큼 괜찮은 투자처도 없어 보입니다. 빚이 적은 정부라면 적자 재정을 감수할 수 있지만, 정부부채도 만만치 않아 빚으로 내야 할 돈만으로도 적자폭은 확대됩니다. 돈을 저축하거나 덜 쓰면 유통되는 돈은 줄어듭니다.
소비를 늘리자고 통화량을 늘리는 방법, 즉 금리를 낮추거나 양적완화를 시행하면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고, 그 끝은 해당 통화의 가치 하락으로 인한 폐기 수순입니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사회혼란이 야기되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정부가 전복되거나 혁명, 전쟁을 통해 화폐의 역할을 종결짓습니다. 이보다는 금리를 올려 통화량을 줄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 각국 중앙은행이 하는 일입니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생산 가능인구의 감소와 이에 따른 생산성 저하에 있다면,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 이 문제들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구는 쉽게 늘거나 줄어들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굿하트 교수는 생산성을 높이는 다른 요소들의 투입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토지는 일정하니 쉽지 않고, 자본이 그나마 투입량을 늘릴 수 있으니 로봇을 활용하거나 노동력이 덜 투입되는 원자재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각광받는 이유도 같습니다. 저도 인공지능을 활용해 전화응대를 하거나 홍보 자료를 만들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사람을 써야 했던 일입니다.
기술발전도 중요합니다. 인공지능은 지금 손에 잡히는 기술이지만, 핵융합 발전이나 초전도체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생산인구 감소로 초래된 생산성 감소를 만회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꿈같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금리인하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출로 인해 이자를 내야 하는 사람들이거나 주식이나 부동산의 자산 투자가 늘어나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금리인하를 하려면 물가가 낮아져도 사람들이 소비를 하지 않는 단계가 되어야 합니다. 실업률이 오르고 임금이 감소하는 일이 발생해야 금리인하가 가능합니다. 디플레이션이라고 하는 데, 역사적으로 디플레이션은 대공황이나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같은 큰 이벤트입니다.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일 수도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은 금리인상을 유발합니다. 그 결과 저축의 증가와 소비와 투자의 감소로 이어집니다. 백화점에 사람은 많이 다니지만 손에 물건을 든 사람은 드문 현상이 자주 보입니다. 소비의 감소입니다.
저축액은 다른 흐름입니다. 미국의 개인저축액은 코로나 이전 5~7%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3.6%인데, 이는 1960년 이후 가장 적었던 2005년과 2008년의 2%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코로나 때 155조의 저축액이 지금 100조 원대로 떨어졌습니다. 문제는 이 돈이 대출 상환에 쓰이지 않았고, 저축액이 떨어지는 속도가 상당히 빠릅니다.
저축의 감소는 소비의 증가이니 인플레이션 요인이 되지만, 어느 순간 저축이 더 이상 줄어들 수 없다면 소비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4년 평균 초과저축액이 물가에 선행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최근 4년간은 초과저축액이 상승했지만, 빠른 속도로 저축액이 감소한다면 어느 순간 물가가 뚝 떨어지고, 돈이 없어서 소비를 못하는 상황이 오는 것입니다.
소비감소는 인구 감소와 함께 나쁜 디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총수요 감소의 원인이 됩니다. 인플레이션으로 물건값은 올랐는 데 저축도, 살 사람도 없는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요?
인플레이션/디플레이션의 규정이 아니라 경제의 급격한 변동과 불확실성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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