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의 발전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유료로 사용하던 AI보다 지금 무료로 제공되는 모델의 성능이 더 뛰어나며, 이마저도 곧 낮은 성능으로 평가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만큼 AI는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AI는 이미 우리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았습니다. 과거에는 일부 전문가들만 활용하던 기술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수많은 분야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전화 ARS 시스템은 AI가 대부분의 문의를 처리할 정도로 발전했고, 전자책 시장에서는 AI 생성형 서적이 따로 분류될 정도로 AI 기반 콘텐츠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체가 어려울 것이라 여겨졌던 분야에서도 AI의 활용이 확산되었으며, 특히 코딩이나 정보통신과 같은 AI와 밀접한 산업에서는 이미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AI 시대에는 사람의 능력을 무엇으로 평가할까요? AI에게 물어보니, 통합적 사고, 복합적이고 비판적인 사고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즉,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능력입니다. 결국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AI가 아무리 정밀하게 진단 결과를 분석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수술을 집도하는 것은 의사이며, AI가 모든 판례를 정리해 준다 해도 판결을 내리는 것은 판사입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도 사람이 집니다. 물론, AI가 더욱 고도화된다면 AI의 결정에 대해 회사나 정부가 책임지는 형태가 등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 끝에는 결국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AI 시대를 조선시대에 비유하면, 모두가 양반이 되는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생산성 향상의 역사이며, 이는 기술 혁신과 이에 따른 사회구조 변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석기 시대의 수렵·채집과 유목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 다시 공업화와 정보통신 혁명을 거쳐 이제 인공지능 시대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단위 생산량당 필요한 자본, 노동력, 토지 등의 투입이 점점 줄어들면서 인간은 더욱 자유로워졌습니다. 예컨대, 미국 남북전쟁은 단순한 도덕적 갈등이 아니라, 공업화된 북부와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던 남부 간의 경제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AI가 정신노동을, 로봇이 육체노동을 해방한다면 남는 것은 방향 설정입니다. 조선시대 양반이 아무리 많은 일꾼을 두고 있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시킬지 명확하게 정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듯이, AI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에서도 양반 사이에도 집안의 재산과 벼슬에 따라 수준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특히 양반 가문에서 문집을 내지 못하는 것은 큰 수치로 여겨졌고, 벼슬을 하지 못하더라도 유교 경전 해석서를 집필하는 것이 필수였습니다.
AI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지간한 육체노동은 기계가 대신하며, 일부 고급 기술을 보유한 사람들만 높은 보수를 받을 것입니다. 중산층 이상이면 누구나 국가로부터 중간 성능 이상의 AI와 로봇을 지급받는 사회가 될 것이고, 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는지가 곧 사회적 지위로 연결될 것입니다.
이러한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AI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데 활용될 수 있습니다. 노약자를 돌보고, 청소년을 교육하며, 사회적 분쟁을 조정하는 등 인간적인 가치에 집중하는 사람이 더욱 존경받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교사, 의사, 판사, 정치인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예송 논쟁처럼 AI 시대에도 당위성과 윤리, 철학을 두고 논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말장난처럼 의미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무엇일까요? 저는 답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각광받는 시대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창의성 교육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질문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컴퓨터는 정보를 제공할 뿐, 직접적인 답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1990년대 정보통신 혁명 이후 우리는 궁금한 정보를 검색(Search)하는 방식에 익숙해졌지, 질문을 던지는 능력(Questioning)은 크게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AI는 단순한 질문에는 사람보다 훨씬 자세하고 근거 있는 답변을 제공합니다. 이제는 단순히 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이는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좋은 질문을 하려면 많은 배경지식이 필요하며, 개별 정보가 아닌 큰 흐름을 이해해야 합니다. 고등 교육이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질문을 유도하여 사고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AI 시대에는 질문하는 능력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질문의 수준은 통합적 사고에서 비롯됩니다. 일본 전국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어떻게 이겼는가?"가 아니라 "누구에게 가장 큰 상을 주었는가?"를 묻습니다. 이에 노부나가는 적장을 죽인 사람보다 정확한 첩보를 제공한 인물에게 가장 큰 상을 주었다고 답하며, 이에야스의 통찰력을 인정합니다. 이는 전쟁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질문하는 능력을 키우려면 전통적인 방법인 독서, 체험, 글쓰기, 그리고 토론이 필요합니다. 통합적 사고는 자연현상보다는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더욱 요구됩니다. 인간은 스스로 인간임에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수천 년간 철학자들이 인간과 사회를 연구해 왔지만, 여전히 정답은 없으며 기존의 진리도 시간이 지나면 변합니다. AI가 해결해야 할 궁극적인 문제도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심도 있는 대응일 것입니다. 역설적이지만, AI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래된 지혜로 돌아가는 것도 하나의 해답일 수 있습니다.
공자는 '진정한 앎'을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는 실천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우리는 권위자의 의견, 대다수의 생각, 가까운 사람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고, 이를 앎으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이유를 고민하고 원리를 탐구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무지의 영역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저는 "저는 그것을 모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학자를 존경합니다. 지식이 부족할수록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며, 자신의 의견을 절대적 진리로 여깁니다.
공자의 말이 AI 시대에도 중요한 이유는, 스스로 모르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질문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은 스스로 알고, 모르는 것은 AI에게 질문하여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깊은 지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만, AI가 제공하는 답도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면 여전히 모르는 것입니다. AI는 아직 환각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결국 변화를 준비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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