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 빠른 속도로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치 타자기로 문서를 작성하다가 워드프로세서로 작업을 처음 했을 때의 심정, DOS의 검은 화면을 보다가 윈도우의 그래픽 환경을 처음 봤을 때의 놀라움을 AI를 통해 오랜만에 느끼고 있습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 녹아들고 있는 AI, 저 역시 당연히 여러 분야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중 최근 가장 큰 도움을 받은 분야는 글쓰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힐들어하는 불안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 이전에도 책을 쓰고 전자책을 만들어봤지만 AI의 도움을 본격적으로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리고 많은 변화를 느꼈습니다.
작업 방식의 혁신
대표적으로 Sigil을 통해 작업할 때, 각종 디자인을 CSS 코드로 바로 만들어주기도 하고, 아예 작업 방식을 마크다운으로 원고를 쓴 후 Pandoc으로 EPUB 변환을 하라고 제안하는 등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까지 합니다. 여전히 질문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방법을 따라가니 시간을 많이 아끼는 느낌이 듭니다.
글을 쓸 때도 초고는 제가 작성하고 AI에게 감수를 맡기면, 처음에는 어색하다가 나중에는 상당히 간명하고 읽기 편한 글이 완성됩니다. AI를 쓰지 않을 때는 문장의 호응이나 뉘앙스의 차이를 일일이 짚어가며 글을 써야 해서, 글의 구조를 짜는 것보다 문장을 다듬는 데 에너지를 더 많이 써야 했던 부담이 해결되었습니다.
한계와 현실
물론 클릭 한 번, 엔터 한 번에 글이 다 써지고 책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결과물은 작가가 책임져야 하고, AI가 써놓은 글이라도 세부적인 내용이 틀리거나 이상한 문장이 나오기도 합니다. 최종 결과물까지 작가가 계속 살피고 고치는 것은 동일합니다.
체감하는 가장 큰 차이는 전반적인 속도의 향상입니다. 책을 쓸 때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원고 작성이고 그다음이 편집입니다. AI 이전에는 원고를 한 땀 한 땀 수작업하듯 쌓아 올리는 방식이었습니다. 계속 글을 써가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넣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AI 시대가 되면서 기본적인 글은 사람이 쓰지만, 이미 잘 정리된 기존 학설이나 설명들은 제가 다 쓸 필요 없이 AI에게 정리를 요청한 후 제가 감수자가 되어 글을 바꾸는 방법이 생겼습니다. 글은 계속 들여봐야 하지만 역할의 변화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문장의 구조 변경, 소제목 등 가독성을 올리는 방법 등 제가 AI에게 배우는 것도 꽤 많았습니다.
건축가에서 조각가로
건축가의 방식에서 조각가의 방식으로 글쓰기가 변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을 쓰는 것을 기준으로, 예전에는 문장이 단락이 되고, 단락이 한 편의 글이 되고, 이것이 모여서 책이 되었습니다. AI는 키워드만 넣어주면 A4 10페이지 분량의 글도 너끈하게 써냅니다. 물론 작가의 문체나 특성을 반영하지는 못하고 말 그대로 기계적이고 건조한 문체지만, 작가가 조금이라도 문장을 넣어주면 훌륭하게 그 문체를 따라합니다. 몇 가지 부족한 점은 다듬으면 그만입니다.
예전에는 하나씩 쌓아 올리는 건축의 방식으로 글을 썼다면, 지금은 AI에게 덩어리 글을 받은 후 스스로 다듬고 깎아내어 글을 쓰는 것입니다.
새로운 방식의 한계
물론 조각가의 방식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닻내림 효과라고 해서 선제적으로 글을 제시한 AI의 흐름에 끌려다닐 수 있습니다. AI의 글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잘못된 정보를 말하기도 하고 논리 구조도 작가의 의도와 다릅니다. 그런데도 훌륭하게 보이는 AI의 구조 앞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펼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속도와 효율을 생각하면 AI를 글쓰기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앞으로 필수가 될 것 같습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본 변화
문득 조선 후기 모내기가 보급될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논에 직접 파종을 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모판에서 벼를 싹 틔워 옮겨심는 모내기는 직접 볍씨를 뿌리는 것보다 뿌리가 얕아 태풍 같은 날씨 변화에 약하다고 해서 금지하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쌀 생산량이 월등해서 모내기가 일반적인 농사법이 되었고, 증가한 생산량은 상업의 발전으로 이어져 신분제가 흔들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미래에 대한 전망
AI로 글을 쓰면 예전처럼 작가들의 문체나 특성이 드러나는 글을 보기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비문학 글쓰기는 특색을 찾기 어려운 AI 문체가 일상화될 것입니다. 문학작품은 수공예품, 비문학은 공산품처럼 대우받고, 생산량도 그만큼 차이가 날 것입니다.
사람의 손길이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일 수 있지만, 더 이상 글을 쓰고 책을 쓰는 것이 특정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장점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오래된 정보 전달 수단 중 하나인 글쓰기가 AI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좋은 일입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의 재미를 느끼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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