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호(辛苦, 寒)
시호의 효능은 소요열(逍遙熱)을 식히는 것이다. 소요열을 포함한 여러 열상은 상한론에서 구체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크게 나누면 발열과 조열이 대표적인 데, 발열은 표증을 조열은 리증을 전제로 나타나는 열상이다.
발열(發熱)은 체온이 일정 온도 이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지속적이다. 예전에는 이 열 자체를 처리하는 데 애를 먹었던 것 같으나 소염진통제의 대중화로 열 자체는 쉽게 떨어뜨린다.
다만 열이 발생하는 다른 기전까지 건드리는 것은 아니고 해열 작용에 집중되어 있어 그 부분은 한의약 치료가 개입할 수 있다.
조열(潮熱)은 위장관에 사기가 결취되어 있을 때 나타난다. 변비와 조시(燥屎) 등 사기가 결취되어 있을 때 발한 등을 동반하면서 밀려드는 발열을 조열이라고 한다.
이 두가지와 달리 발열이 특정 상황에 따라 나타났다 숨었다 하는 경우가 있다. 여성의 갱년기증후군에서 나타나는 안면홍조가 대표적이다.
상한론에서는 이것을 한열왕래(寒熱往來)라고 했고, 다른 말로는 소요열이라고도 표현한다. 노닐듯이 열이 오고 감을 말하는 것이다.
소요열을 잡는 약이 소요산(逍遙散)이다. 시호가 이 소요산의 군약이다. 흉협고만, 맥현, 홍조 등 증상이 있고 열상이 상존하지 않고 오고 감이 나타나면 쓸 수 있다.
맥은 빠른 경우가 많으나 소요열인 만큼 열이 숨었을 때는 맥상도 그리 빠르지 않을 수 있다. 주의가 필요하다.
여러 본초 중 시호만큼 역대 의가들이 분분한 논쟁을 벌였던 약재도 드물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시호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학파의 특색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상한론에서는 계지와 더불어 다빈도로 쓰인 약재 중 하나다. 소시호탕을 시작으로 각종 시호제의 가감방을 보면 현란하기 그지없다.
흉협고만이면 무조건 소시호탕이라고 할 만큼 진단기준이자 표준치료 수단이었다. 그러던 것이 후세방으로 가면 그 역할이 매우 축소가 된다.
시호가 들어간 처방이래봤자 소요산 정도가 대표적이고 보중익기탕의 시호는 원방의 용량마저도 절반 이상 줄이고 그것도 주세를 해서 약성을 크게 줄여서 사용한다.
이제마는 소시호탕을 쓰는 증은 소양인병에 속한다고 하면서도 시호를 쓰지 말고 형방도적산, 형방사백산 같은 생지황이 군약인 처방을 제안했다. 섭천사는 시호가 간음(肝陰)을 겁(劫)한다고 해서 사용례가 거의 없었고 일부 보중익기탕이나 소요산 정도에 쓰는 정도였다.
시호는 대표적인 고한지제(苦寒之劑)로 황금이나 대황과 같이 음액을 말리는 작용이 있다. 이 때문에 후세로 갈수록 시호의 주치증을 여러 약재로 나눠서 처방하려는 시도들이 보인다.
협통에 백개자나 천련자, 소요열은 생지황, 소간작용은 향부자 등으로 나누는 시도들이다. 이제마도 소시호탕증에 지황제를 쓰면서 흉격의 울열 등의 표현을 썼지만 결국 진액을 보존하면서 열을 제거하려는 온병의 개념과 동일하다.
시호는 급성병이나 소요열이 심한 경우에 효능이 좋은 약이다.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써야 할 경우도 있다. 모든 의료행위는 Risk와 Benefit을 고려해야 한다.
시호의 정증이 분명하다면 시호가 군약인 약을 써야 한다. 그러나 주증이 아니라면 감한지제를 먼저 시도하는 것이 좋다.
저자는 여자 환자의 소요열에는 시호를 고려하는 편이다. 여자는 음체이니 좀 더 음액의 손실에 잘 견디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소요열을 잡는 데 시호만한 약이 없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시호는 약전의 기원에서 시호와 그 변연종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여러 종류의 시호가 유통되고 있다. 큰 차이는 없지만 주성분인 사이코사포닌(Saikosaponin)의 수치가 일정 이상 확인된 것을 쓰는 것이 좋다.
참고로 각 약재는 지표물질이 있다. 다른 약재에는 없는 고유한 성분으로 지표물질을 삼는 데, 지표물질 자체가 그 약재의 효능을 나타내는 활성물질은 아니다. 일치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다만 지표물질의 수치가 높다는 것은 충분한 성장을 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대황(苦, 寒)
사하(瀉下)를 통해 위장관의 적체와 어혈을 제거한다.
복진시 중완부터 제하까지 전반적으로 반발력과 압통이 있고 변비 소견을 보인다.
변비소견은 두 가지로 보는 데 하나는 매일 변을 보는지, 다른 하나는 변이 굳어서 배변에 어려움을 겪는지이다. 며칠 동안 안 봐도 괜찮다고 하는 환자들이 있다. 불편함이 이미 익숙해져서 그럴 수도 있고, 반대로 장의 활동이 저하되어서 변을 건너뛸 수 있다.
복진을 통해 복부 압력을 확인한다. 제하의 압통은 어혈의 소견이기도 하다. 목단피나 작약, 아출, 울금과 같은 거어(祛瘀)에 치우친 약도 필요하지만 사하를 통해 제하의 어혈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보통 10일에서 15일정도로 탕약을 처방하는 시스템에서 다이어트 처방 같이 지속적으로 사하를 해야 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일반 탕약에 대황을 처방하기가 난감할 때가 있다.
탕전을 하더라도 사하력을 유지하려면 후하(後下)를 해야 한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대황이 들어간 제제를 활용하면 편리하다.
탕약을 처방하고 환자한테 달여서 나가기 까지 2-3일 정도의 시간이 있다. 이때 대황이 들어간 사하제를 매일 저녁에 복용하게 하면 그다음 날 여러 번 대변을 보면서 사하를 한다.
대황이 대표적이지만 센나엽, 차전자피와 같이 사하력이 조금 완만한 제제로 시작해도 좋다. 이게 듣지 않을 때 대황이 들어간 제제를 처방한다.
사하가 반드시 물설사를 유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변을 원활하게 배출할 수 있으면 그 목적은 다한 것이다.
되려 물설사가 나타나면 복용을 중지시켜야 한다. 배출해야 할 사기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하만 지속하면 진액이 소모되고 치료 과정에도 불리하다.
대황은 온병체계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약재이다.
온병은 보통 습을 끼고 있는 경우가 많은 데, 이를 사하하면 진액까지 배출하게 된다. 진액의 모손을 꺼리는 온병에서는 사용이 어려운 약재다.
온병자체가 변비보다는 대변불상(大便不爽)이라 해서 시원하게 대변을 보지 못하는 증이 두드러진다. 대변이 잘 나가지 않는다면 행인 등 윤장제를 쓰는 경우가 많다.
대황을 사용하더라도 술에 담그거나 포제를 하고 1돈 아래로 쓰는 경우가 많다. 보름씩 처방하는 경우에 참고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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