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처방을 위해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때는 맥진, 복진, 설진으로 확인한다. 다만 각 진단이 보는 목적이 조금 다르다.
복진은 허실을 판별하는 데 유용하다. 복근의 탈력(脫力) 유무, 긴장감으로 허실을 확인한다.
복근에 탄력이 없고 푹 꺼진다면 허증(虛證), 탄력이 있거나 반발감이 심하고 복만이 있다면 실증(實證)으로 보면 무리가 없다.
허증은 인삼을 포함한 보제(補劑)의 적응증이고, 실증인 경우 사하제(瀉下劑)를 고민해야 한다.
사하제를 반드시 다량의 대황이나 파두와 같이 강한 약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차전자피, 센나엽 등 설사를 유발하지 않고 대변의 양이 늘어나는 정도로 사하를 시켜도 충분하다.
환자에 따라서는 부드러운 사하제가 듣지 않는 경우가 있으며 이 때는 사하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
복진에서 확인해봐야 할 부위는 심하(心下)라 불리는 검상돌기 아래 부분과 중완혈(中脘穴), 양측 장골능과 배꼽 아래, 양측 늑골연이다.
심하에 압통이 있으면 위염이나 식도염으로 보고 황련, 황금 등을 고려한다. 열상을 띈다면 상초열과 대응시킬 수 있다. 복부가 전반적으로는 크게 반발이 없는 데 심하에만 반발이 있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는 무형의 기가 뭉친 것으로 보고 진피, 지각, 지실을 사용한다.
중완 압통은 위가 늘어난 경우가 많으며 백출을 쓰는 경우가 많다.
양측 장골능과 배꼽 아래는 탄력이 있거나 압통이 있으면 어혈, 압통이 없고 처지면 소위 신허(腎虛)라고 하는, 숙지황 등 육미와 팔미의 적응증으로 본다.
양측 늑골연은 흉협고만(胸脇苦滿)을 보는 데, 흉협고만이 명확하면 시호를 적용한다. 흉협고만은 늑골연에 손가락을 모아서 밀어 넣었을 때 들어가지 않고 저항이 느껴진다. 압통까지 호소하거나 현맥(弦脈)까지 확인되면 시호를 쓸 것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시호가 부담스러울 경우 향부자, 천련자 등을 쓸 수 있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아프다는 자각증상이 있으면 흉비(胸痹)로 보고 과루제를 적용한다. 흉비는 심장질환일 수도 있고 흉부 작열감(Heartburn)을 포함한 역류성 위식도 질환까지 포함할 수 있다.
배꼽 아래 가만히 손을 대고 있을 때 복부 대동맥의 박동이 느껴지면 정충(怔忡)으로 본다. 정충을 잡는 약은 다양하게 있지만 계지와 감초의 조합만으로도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다.
맥진은 부침지삭활삽현긴대세(浮沈遲數滑澁弦緊大細) 정도만 봐도 무방하다. 28맥이 있지만 앞서 언급한 기본맥의 조합으로 나타난 맥상이 28맥이다.
지삭(遲數)이 중요한데, 지삭은 맥진으로 보는 것보다 객관적인 측정기구를 쓰는 것이 좋다.
맥파검사기를 쓰거나 간단히 손가락 끝에 물리기만 해도 맥박수를 알려주는 PPG 검사기를 쓰는 것을 추천한다. 안정시 맥박수를 기준으로 하며, 내원 후 10분 정도 지난 후 안정된 상태에서 측정한다.
병리적으로 문제없는 맥박수는 통상 60-100 정도로 본다. 전통 맥진에서도 90 이상을 삭맥, 60 이하를 지맥으로 본다. 호흡과 맞물려 계산하는 거라 일률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이것을 좀 더 확장해 90에 가까울수록 삭맥, 60에 가까울수록 지맥으로 보고 한열을 정할 수 있다.
기존 연구에서도 정상범위의 맥박수라 할지라도 맥이 빠르거나 느린 것이 건강상태에 영향을 준다는 보고도 있다.
저자가 보는 범위는 안정시 맥박수가 65 이하를 지맥, 66부터 75까지를 평맥, 75 이상을 삭맥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번열, 피부색 등 여러 지표를 더 살펴야겠지만 맥박수를 기준으로 한열을 찾아나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
기존의 의서에서도 음극사양, 양극사음, 한열착잡 등 음양이 불문할 때 음양을 확정 짓는 것은 맥진임을 언급했다.
맥진 시 손가락을 어디에 대야 하는지 논쟁이 있다. 특히 관맥이 문제인데, 고서의 고골(高骨)의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기준이 달라진다.
고골을 요골의 경상돌기로 보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경상돌기의 경우 혈관이 타고 넘어가는 부분이나 활맥과 같이 힘 있게 잡히는 경우가 많다. 중초맥이 허하다는 의서의 서술이 무색해지는 느낌도 있다.
이에 고골을 경상돌기가 아닌, 경상돌기 직전의 요골연을 뜻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이 부분을 잡으면 다른 부위에 비해 가늘어진 맥상을 확인하기가 용이하다.
저자는 경상돌기 바로 아래를 관맥으로 잡고 있지만 환자의 다른 징후와 맥상이 일치하는 지를 확인하면서 적용해야 한다.
활삽(滑澁)은 담음(痰飮)이냐 음허(陰虛)냐를 결정한다.
활맥은 맥상부위가 맺힌 것이 가장 확실하지만 맥 자체가 기름을 머금은 관처럼 흐르는 것도 활맥으로 볼 수 있다.
삽맥은 손가락 끝의 맥관이 고르게 형체가 잡히지 않고 불분명한 부분이 있는 경우이다.
현맥(弦脈)은 주로 가는 맥에서 세 손가락을 줄처럼 치는 맥이다.
현맥은 시호를 쓰는 간울(肝鬱)의 맥으로 유명하지만 금궤요략에서는 허로(虛勞)의 맥으로도 제시를 했으며, 처방은 보법과 시호 등 화해법을 같이 사용한다. 허로니 보중익기탕을 써도 무방하다.
긴맥(緊脈)은 현맥과 달리 혈기가 있는 사람의 긴장맥이다. 요즘 같이 음허가 흔한 시대에는 되려 잡기 힘든 맥이 되었지만, 기혈이 왕성한 가운데 열상이 있으면 나타나는 맥이다. 사하제나 청열제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세맥 중 세맥(細脈)은 맥의 폭이 좁고 가는 것이다. 음허의 맥이다.
대맥(大脈)은 음허의 반대가 아니라 다른 맥과의 조합을 봐야 한다. 홍대맥은 백호탕을 쓴다. 눌러도 푹 들어가지는 않는다. 맥의 폭이 큰데 힘이 없는 것은 허로의 맥이다. 보제(補劑)를 사용한다.
세맥만 있어도 보음제(補陰劑)를 쓸 수 있다.
한열을 가려야 하는 데, 맥이 느리면서 가느다란 맥은 양기(陽氣)도 약하기 때문에 보음제를 쓰면 소화기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높다. 보기제, 특히 보비하는 약물을 군약으로 쓰면서 숙지황과 같은 온성의 보음제를 쓴다. 정 소화가 부담된다면 백수오를 써도 무방하다. 다만 보음력이 숙지황만큼 좋지는 않다.
세삭맥은 약간 찬, 보음제의 원래 속성을 가진 약들을 쓴다. 생지황, 맥문동, 석곡, 옥죽 등 음허의 위치에 따라 보음제를 선방하면 된다. 열상을 띈다고 해도 보음제를 많이 투여하면 니체(膩滯) 하기 쉽다. 그렇다고 비를 보하는 조열한 성질의 약을 쓰기도 어렵다.
이 때는 복령을 대량으로 사용한다. 첩당 3돈까지도 무방하다. 보음제를 넣은 만큼 복령을 쓴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적어도 절반 이상은 넣어야 한다. 보음제의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이다.
설진에서 살펴야 할 것은 설태의 유무와 형태, 설체(舌體)와 설태의 색, 치흔(齒痕), 설하정맥(舌下靜脈), 설체의 갈라짐이다.
설진은 소화기와 음액의 상태를 확인하기 용이하다.
설태가 없이 설체가 말랐다면 음허다. 설체의 색이 붉다면 열증이거나 음허의 상태가 상당히 진척된 것이다.
치흔은 기허를 의미한다. 혀가 부은 것은 허로로 인한 담음으로 본다.
설하 정맥은 어혈 소견이다. 치료를 진행하면 설하 정맥의 색이 빠지면서 바뀌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정맥의 상태를 바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부위이다.
설체의 가운데가 갈라진 것은 비허증이다. 소화기에 작용하는 약을 고려한다.
설체의 끝부분이 딸기처럼 빨갛게 올라온 것은 상초열로 본다.
설진은 몸속 세균의 상태를 바로 볼 수 있다는 의미도 있다. 구강에도 세균총이 있으며 장내 세균과 마찬가지로 몸 상태에 따라 세균의 번식 정도가 다르다.
설태가 두껍게 앉았다면 기혈이 성한 가운데 열상을 띄어 담음이 생겼다고 이해한다.
설태의 색은 대부분 흰 편이나 커피 등을 먹고 다른 색으로 착색되는 경우도 있고, 환자가 습관적으로 설태를 양치질하면서 닦아내는 경우도 있으니 확인을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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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특히 온병학), 사회문제, 경제경영 분야에 대해 글을 쓰는 한의사입니다.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펼쳐놓는 공간입니다.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