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스텔라 장의 노래인 'L’Amour, Les Baguettes, Paris'라는 노래를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파리에서 유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스어로 만든 노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파리하면 생각하는 사랑의 도시, 바게트 이런 것이 아닌 자신에게는 젊은 날의 슬픈 사랑의 기억으로 남는다는 내용입니다. 그냥 들으면 프랑스의 샹송 가수가 불렀다고 해도 믿을 만큼 감미로운 노래니 한번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파리에 대해 떠올리는 음식 중 하나가 바게뜨라는 것입니다. 해당 곡의 댓글로 누가 '사랑, 성심당, 대전'이라고 적은 것이 많은 호응을 얻었는 데, 꼭 재미로만 볼 것은 아닌 게, 도시를 가장 쉽게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음식입니다. 도쿄는 초밥, 오사카는 오코노미야끼, 중국 베이징의 북경 오리, 홍콩의 딤섬, 이탈리아의 피자와 파스타, 독일의 커리부어스트처럼 음식으로 도시와 나라를 기억하는 것은 가장 빠르면서 긍정적입니다.
각국의 수도에 해당되는 도시들은 불리합니다. 어느 나라나 수도는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문화도 섞여서 없는 음식점이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음식 문화가 섞이고, 늘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집니다. 서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의 고유음식이라 해봤자 궁중음식 정도고 설렁탕, 불고기 정도를 굳이 넣을 수 있겠습니다. 서울의 고유한 음식 재료가 되려 드물기 때문에 서울을 상징하는 음식을 따로 집어 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서울을 상징하는 음식을 하나 지명한다면 저는 순댓국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기도 하지만, 순댓국이 서울에 맞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순대는 북쪽 음식입니다. 돼지 내장에 고기와 선지 등 재료를 넣어서 오랫동안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순대 자체는 썰어서 반찬이나 술안주로 먹지만, 순댓국이 되면서 한 끼 식사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김치와 깍두기가 안 나오는 집이 거의 없습니다. 밥과, 국, 반찬의 한식 기본 구성을 충실히 지키는 구성입니다. 소주나 막걸리 등 반주를 하기에도 적절하고, 밥만 먹기에도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빨리 나옵니다. 국물은 늘 끓이고 있고, 삶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선한 돼지고기와 순대만 준비했다 국물만 얹어서 나오면 끝입니다. 오랫동안 따뜻하게 먹으라고 뚝배기에 한번 끓여서 나오면 시간이 좀 더 걸리지만 한식의 패스트푸드라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서울은 바쁜 도시입니다. 빨리 먹는 음식들이 발달해 있습니다. 햄버거나 국수로 끼니를 해결하기 싫다면 국밥이 제일 빠릅니다. 수 많은 국밥이 있음에도 순댓국의 위상은 따라오기 힘듭니다. 특히 서울은 도시 곳곳에 순댓국집이 있습니다. 프랜차이즈도, 노포도 겉보기에는 뚝배기와 밥, 김치와 깍두기, 새우젓으로 비슷해 보이지만 그 맛은 다 다릅니다.
다른 도시들도 순댓국이 없진 않지만 이만한 위상을 가져가기는 어렵습니다. 탕과 국물요리만 보면 각 지역에서 순댓국보다 유명한 음식들이 있습니다. 부산은 돼지국밥이 더 유명하고, 나주는 곰탕입니다. 전주는 콩나물국밥이고 대전은 소고기국밥과 칼국수가, 광주는 애호박찌개가 있습니다.
서울은 설렁탕이 있지만, 설렁탕과 순대국밥은 먹을 때의 분위기가 다릅니다. 순대국밥은 배고프면 편하게 가서 먹는 반면, 설렁탕은 식사로서 의미는 있지만, 좀 더 힘을 내거나 고급스러운 한끼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선호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격이나 순댓국집과 설렁탕집의 숫자만 봐도 대중성은 순댓국을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서울 사투리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1980년대 영상을 보면 나타나는 말끝을 가볍게 올리는 특성인데, 교양있는 사람이 쓰는 서울의 현대말을 표준어로 규정되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서울 사투리가 표준어와 어떻게 다른지 생각도 듭니다. 바꾸어 생각하면 서울 또한 도시로서의 고유한 특성이 있을 것이고, 그에 맞춘 음식 또한 발달했습니다. 다만 자연환경의 특성에 기인한 재료의 고유성보다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더 반영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밥위에 생선회를 올린 초밥은 에도(지금의 도쿄)의 고유한 음식이었습니다. 이전의 초밥은 오사카의 명물인 상자 초밥처럼 틀에 밥과 시간을 들여 숙성된 생선을 넣어서 김밥처럼 만드는 방식이었지만, 바쁜 도쿄 사람들의 특성에 맞게 틀을 쓰지 않고 손으로 쥐는 방식으로, 생선 숙성 대신 식초를 써서 맛을 내었고 도시의 고유한 음식이 되었습니다. 재료가 아닌, 요리방법에서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적 배경이 있어서인지, 일본 어디서나 초밥을 먹을 수 있지만 서민 초밥집부터 고급 초밥집까지 다양하게, 도시 곳곳에서 찾으려면 도쿄만한 곳이 없습니다.
서울의 순대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순대 자체는 북쪽 음식이고 순댓국의 재료는 전국 어디서나 다 구할 수 있지만 서울 사람들의 생활양식에 맞춰 서울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음식은 순댓국 외에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빠르면서 한식의 기본구성을 갖추고 있고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은 음식인 순댓국을 조심스럽게 서울을 대표하는 음식이라고 얘기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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