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지탕은 상한론의 수방(首方)으로 모든 처방의 모태라고도 한다.
명성에 비해 처방은 단순하다. 계지, 작약, 감초, 대추, 생강 5가지 약재로 이걸로 약이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계지탕으로부터 상한론 내에서만 수많은 처방이 만들어졌고 육계까지 확장하면 온법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다.
계지탕의 계지는 육계 또는 계피로 봐야 한다. 처방 내역에 껍질을 벗긴다는 내용이 있는 데, 어린 계지는 벗길 껍질이 없으므로 계피가 적절하다. 이런 구분도 후대에 와서 정립된 것으로 표증은 계지, 온법을 강조할 경우는 육계를 쓰면 된다.
열상이 있는 데 계지가 들어간 처방을 써야 할 경우가 있다. 이 때는 어린 계지를 사용한다. 어린 계지는 표증에, 육계는 리증에 집중된다고 보면 편하다.
사상 처방에서도 소음인약으로서 계지는 다용된다. 임상증상은 추위를 탄다, 표로 열이 몰려있다 등이다. 이제마는 계지와 관계를 구분해서 사용했다. 효용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계지는 시호와 더불어 상한론에서는 그토록 많이 쓰이다가 정작 후세방에서는 사용이 많이 줄어드는 약재 중 하나이다.
계지가 맡았던 표증의 처리는 신온한 약인 자소엽 등으로 대체를 하는 경향이 있다. 마황이 강활로 대체된 것과 유사한 흐름이다.
계지처럼 신온하면서 향이 있는 약재들은 작용이 뚜렷하다. 통치방 개념으로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봉독이 약침 중에는 소염진통과 근골격계 통증 완화에는 효과가 좋지만 이상 면역반응으로 인한 부작용 때문에 루틴으로 사용하는 데 부담이 있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육계는 비위를 중심으로 온리작용을 하는 몇 안 되는 약이다. 온리제는 많지만 발산 효능이 있으면서 비위를 중심으로 온리 작용을 하는 약재는 그리 많지 않다.
대표적인 온리제인 부자가 신양을, 육계는 비양을 보하는 데 중점이 있고 육계는 발산 작용도 일부 겸하고 있다. 육계는 허한(虛寒), 부자는 한습(寒濕)을 목표로 처방하는 것이 좋다.
육계, 계지가 후세방에는 잘 쓰이지 않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처방이 있다. 십전대보탕과 그 변방인 인삼양영탕이다.
내원 환자들에게 눈 감고 처방할 약이 있다면 십전대보탕을 들 수 있다. 십전대보탕은 사군자탕과 사물탕을 합방하고 황기와 육계, 생강, 대조를 가미한 처방이다.
십전은 약재의 개수가 아니라 100%를 의미하는 것으로 온전함 그 자체를 의미한다. 영어로 굳이 번역하자면 Tonifying decoction of Great Perfection 정도이고, 처방 명명자의 자신감이 묻어나는 이름이다.
처방명이 과한 것이 아닌 게, 십전대보탕은 효능 뿐만 아니라 구성에서도 가감이 쉽지 않을 만큼 꽉 짜인 처방이다. 동의보감에서도 가미 십전대보탕 정도가 있는 데, 열성을 잡을 수 있게 시호와 황련을 가미한 정도이다.
보중익기탕도 쓸만한 가감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십전대보탕은 가미를 하면 다른 처방이 되는 느낌이다.
십전대보탕은 의문췌언에서 언급한 것처럼 상중하초를 모두 보하는 약이다.
황기가 상초, 인삼이 중초, 숙지황이 하초를 보하며, 이를 보조하는 사군자탕, 사물탕이 포함되어 있다.
여름을 제외하면 계절보약으로도 충분히 기능을 하며, 약량을 조절하면 음료수처럼 복용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중국에서는 십전대보주라고 해서 술로도 판매가 되고 있다. 약과 음식의 경계에 있을 만큼 광범위하게 쓸 수 있는 처방이다.
십전대보탕은 만성피로에 1차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 부위별 허증의 특징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에는 십전대보탕을 쓰는 것이 좋고, 소화불량이나 소변불리 등 부위별 허증이 뚜렷할 경우에는 육군자탕, 보중익기탕이나 육미지황탕 등 개별 처방을 쓰는 것이 좋다.
보중익기탕과 마찬가지로 질병의 이환이 오래되어 만성적인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면 질병보다 사람을 보고 이 처방을 쓸 수도 있다.
십전대보탕이 허증에 1차 선택이지만 가감이 어렵기 때문에 실제 처방에서는 인삼양영탕을 쓴다.
인삼양영탕은 십전대보탕에서 천궁을 빼고 오미자, 진피, 원지를 가한 것이다. 동의보감에는 방풍까지 가미했는 데, 표증에 좀 더 대응하는 의미는 있지만 방풍은 빼는 것이 원처방의 의의에 맞다고 본다. 육계 대신 계지를 쓰면 표증에 대응하면서 육계의 약성을 완화할 수 있다.
십전대보탕이 군약이 없었던 것에 비해 인삼양영탕은 작약이 군약이다.
작약의 약성이 약간 차긴 하나 다른 약재가 온성이라 십전대보탕만큼 한열을 가리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인삼양영탕은 처방 운용이 자유롭다.
시작부터가 십전대보탕에서 가감을 한 것이고, 한열을 크게 가리지 않는 처방 구성이다 보니 허로 환자의 상태에 맞춰 가미를 통해 자유로운 운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허로에 녹용을 쓰는 경우 인삼양영탕에 가미하면 기능을 보강하는 개념이지만 십전대보탕에서는 중복된다.
인삼양영탕에 녹용을 가미할 때는 작약을 포함해 백출 등은 초를 해서 한성을 줄인다. 같은 약재가 포함되어 있어도 비율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부분이다.
허로인데 열증인 경우 맥문동이나 황련을 가미할 수 있다. 생작약을 쓰고 다른 약재들도 포제를 하지 않고 사용한다. 같은 약재라도 다른 포제를 쓰면 미세하게 한열을 조절할 수 있다.
약재를 가감해서 한열을 조정하는 것이 큰 톱니바퀴라면 약재의 포제로 한열을 조절하는 것은 작은 미세 톱니바퀴로 비유할 수 있겠다.
연구에서는 인삼양영탕이나 십전대보탕이 갱년기 등 노화과정에서 나타나는 증상을 완화하는 효과들이 보고되었다. 일본에서는 다빈도 처방으로 인삼양영탕이 손에 꼽히고 있다. 무난하게 복용할 수 있는 두 처방이 좀 더 알려지고 쉽게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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