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학 표준화의 딜레마한의학 연구에서 '표준화'는 오랫동안 뜨거운 화두였습니다. 같은 환자를 진료해도 한의사마다 다른 진단명을 내리는 것이 일상이었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여겨지는 사상체질조차 전문가 간 진단 일치율이 70%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진단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정밀도였습니다.이러한 현실은 한의학계에 양가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한편으로는 연구 대상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근거가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확한 진단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현실에서는 KCD(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기준으로 진단 및 보험청구를 하고, 한의사 각자가 활용하는 이론 체계에 근거해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표준화 미비가 가장 두드러지는 영역은 한약 처방입니다. 심평원의 삭감 정책이 ..

AI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 빠른 속도로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치 타자기로 문서를 작성하다가 워드프로세서로 작업을 처음 했을 때의 심정, DOS의 검은 화면을 보다가 윈도우의 그래픽 환경을 처음 봤을 때의 놀라움을 AI를 통해 오랜만에 느끼고 있습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 녹아들고 있는 AI, 저 역시 당연히 여러 분야에 활용하고 있습니다.그중 최근 가장 큰 도움을 받은 분야는 글쓰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힐들어하는 불안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 이전에도 책을 쓰고 전자책을 만들어봤지만 AI의 도움을 본격적으로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리고 많은 변화를 느꼈습니다.작업 방식의 혁신대표적으로 Sigil을 통해 작업할 때, 각종 디자인을 CSS 코드로 바로 ..

서점에서 마주한 변화간만에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았습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여전히 자기계발서와 경제경영서적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 뒤로 유명 작가들의 신간과 정치인들의 책이 중앙 통로 양쪽에 진열되어 있습니다.이번 방문에서 유독 눈에 띈 것은 책의 주제나 디자인이 아닌 두께였습니다. 문학 서적 코너의 책들이 예전보다 가볍고 작아진 것 같았습니다. 처음엔 문학 코너만의 특징인가 싶었지만,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나마 두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파이썬이나 노코드 도구 같은 기술 분야와 과학 분야 책들뿐이었는데, 이마저도 300페이지 안팎의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 대부분이었습니다.과학서적 하면 벽돌만큼 두껍고 큰 책들이 떠오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책이 점점 얇아지고 작아지고 있는 것..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나와 타인의 차이를 인식하고 분류하려 해왔습니다. 성격 유형에 대한 관심은 시대마다 다른 이름과 개념으로 나타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의 관심사이자 인기 콘텐츠로 자리잡고 있습니다.2000년대 초반까지 유행했던 혈액형 성격론은 과학적 근거가 없음에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MBTI와 사주 일간 등 새로운 개념의 성격 분류가 등장했습니다. 관심의 본질은 동일하지만 접근 방식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MBTI에서 에겐/테토로의 변화MBTI가 한동안 유행하다가 결국 T(사고형)와 F(감정형)의 차이로 분류가 단순화되더니, 최근에는 '에겐'과 '테토'라는 새로운 분류 기준이 등장했습니다. 에겐은 에스트로겐, 테토는 테스토스테론을 뜻하는 것으로, 각각 여성성과 남성..

예술이란 무엇인가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수많은 예술가와 철학자들이 답을 내려고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 중인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서 파생되는 또 다른 의문 중 하나가 '예술은 현실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것입니다.예술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예술을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린다, 노래를 부른다, 춤을 춘다, 조각을 한다 등이 대표적입니다. '고상하고 복잡한' 예술의 정의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행위가 예술이 될 수도, 아니면 하나도 예술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행위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나마 예술은 아닐지라도 예술 행위를 하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물론 무조건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른다고 예술이라고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코인노래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노..

들어가며: 평화 시대의 전시형 세금 체계? 세금과 관련되어 많은 불만이 나오는 가운데, 이를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을까 생각해보다가 최근에 유튜브로 봤던 '영웅시대'에서 1960년대가 전시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기억이 났습니다. 우리나라의 세금 제도가 언뜻 보면 일반적인 선진국의 조세 체계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전시 상황에서 볼 수 있는 특징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왜 평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세금 체계가 전시 상황의 그것과 닮아있을까요? 이 글에서 이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간접세의 높은 비중: 전쟁과 조세 전략 일반적으로 전시에는 국가가 빠르게 많은 세금을 거둬들여야 하기 때문에 소득과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부과할 수 있는 간접세의 비중을 높이는..

‘치료’보다 ‘선택’이 먼저가 되는 시대 한동안 국민건강보험과 관련된 글을 썼습니다. 결론은 단순합니다. 국민건강보험은 유지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은 곧 우리가 아플 때 ‘치료’보다 ‘선택’이 먼저가 되는 시대가 온다는 뜻입니다. 이 결론이 맞든 틀리든, 중요한 건 그런 방향으로 가는 징후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징후들은 점점 더 우리 삶의 아주 가까운 자리까지 침투해 들어오고 있습니다.겉은 조용하지만, 속은 급변하는 의료체계 작년(2024년) 5월부터 지금까지 의료 환경에서 일어난 변화들을 살펴보면, 표면은 조용해 보여도 그 내부는 급속히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의대 증원 문제는 겉으로는 3058명으로 원상복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그 사이 실손보험..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이 있을까요? 짧게는 맛있는 것을 먹고 잘 자고, 활기찬 생활을 하고 싶어합니다. 길게는 재산을 늘리고, 이름을 알리고 싶은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특히 코로나 이후부터, 사람들은 과연 하고 싶은 것이 꼭 있어야 하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사회 전체를 지배하던 목표였던 '선진국' 진입은 2010년대 중후반에 달성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제 강대국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선진국이 되고 나서 보니, 강대국이 되어도 머리 아픈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선진국이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지만, 오히려 양극화, 저성장, 관계 단절 같은 수많은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여기서 더 좋아지기 어렵다"는 집단적 인식이 사회의 역동성을 무너뜨..

우리나라는 법치국가인가?‘우리나라는 법치국가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 망설임 없이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정치권에서는 지난 20여 년간 끊임없이 개헌이 거론되어 왔습니다. 이는 가장 상위법인 헌법조차 시대의 변화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는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이지만, 법률 영역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한국이 아직 선진국이 아니라는 현실을 체감하게 됩니다. 이는 뿌리 깊은 사법 불신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정치인들조차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법을 빈번하게 활용하고, 같은 사안에 대해 정반대의 법률 해석을 내놓는 법학 전문가들은 어느새 일상이 되었습니다. 일반 국민들이 사소한 일에도 쉽게 ‘소송’을 언급하는 현실은 어찌..

커피 원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지 벌써 15년 가까이 된 것 같습니다. 당시만 해도 커피라고 하면 믹스커피 외에는 떠올리기 힘든 시기였습니다. 원두커피는 카페에서 가끔 맛볼 수 있는 정도였고, ‘커피’라는 음료 자체에 대한 인식도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커피 소비량은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믹스커피, 인스턴트 커피, 캔커피 등 다양한 형태로 이미 많은 이들이 커피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전문 커피점이 없었을 뿐입니다. 드립커피가 대중화되고, 커피 원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커피 원산지의 이름들을 접하기 시작합니다. 브라질, 에티오피아, 하와이 정도는 들어봤지만, 엘살바도르, 자메이카, 탄자니아 같은 나라는 생소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